"보조금 받자"…글로벌 기업, 2900억弗 싸들고 미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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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정부, 1년간 투자 유치 성과미국 정부가 자국에서 생산한 반도체와 전기자동차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설비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는 법률을 제정한 지 1년 만에 세계 제조업 지도가 바뀌고 있다. 자국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대만을 비롯한 세계 주요 기업이 2900억달러(약 383조원)가 넘는 자금을 미국에 투자하기로 결정해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관련 협회와 시장 조사회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난 1년간 관련 기업의 미국 투자액(발표 기준)이 반도체 분야에서 2100억달러, 배터리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최소 800억달러 등 총 2900억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11일 보도했다.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가 애리조나주 공장 신설에 4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인텔, 마이크론, 텍사스인스트루먼츠 등 미국 반도체 기업도 자국에 각각 110억~300억달러를 투자한다.전기차 배터리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한국 대기업의 투자가 눈에 띈다. LG그룹은 자동차 배터리 공장으로서는 최대 규모인 55억달러를 투자해 애리조나주에 새로운 공장을 짓는다. 삼성그룹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30억달러를 공동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한화큐셀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최대 규모인 25억달러를 투입한다.
반도체법·IRA 혜택으로 유인
제조업 강화·中견제 '두 토끼'
TSMC·LG·인텔 등 공장 건설
기업들이 대규모 대미 투자를 결정한 이유는 미국 정부가 작년 8월 9일과 16일 통과시킨 ‘반도체 칩과 과학법(반도체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법에 기반해 500억달러가 넘는 보조금을 투입, 자국 내 반도체 제조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IRA는 미국에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공급망을 만들기 위해 4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법이다. 북미에서 생산하는 전기차 한 대당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안도 포함됐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 9일 관련 법이 나온 이후 1년 만에 세계 기업들의 미국 투자 규모가 1660억달러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관련 법안이 확정되기 전에 대미 투자를 미리 결정한 기업까지 포함해 계산했기 때문에 미국 정부 발표보다 투자 규모가 더 크게 나왔다고 설명했다.반도체법과 IRA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자국 산업을 키우려는 중국에 대항하려는 목적이 있다. 이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중국 의존도를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10년 동안 대중국 투자에 제한이 있다. 전기차 또한 중국산 부품과 소재, 광물을 사용한 배터리를 적용하면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주요국 사이 보조금 경쟁이 달아오르면서 세계 시장이 공급 과잉 상태에 빠지고 무역마찰도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산업을 지원하는 데 일본 정부는 2조엔(약 18조원), 유럽연합(EU)은 430억유로(약 62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