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친구 찾기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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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은 강남언니 커뮤니케이션 리더가끔씩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중학생 시절 옆집에 살던 같은 반 친구였는데, 모든 자유시간을 함께할 만큼 친하게 지냈다.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고 난 뒤로는 1년 중 명절에만 보는 사이가 됐다. 그러다 그 친구마저 고향을 떠났고 더욱 서로 연락이 뜸해졌다. 당시 친구는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전화번호 하나였다.
어느날 친구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의 숫자 1이 오랫동안 없어지지 않았다. 함께 친하게 지냈던 다른 친구들에게 보낸 메시지 숫자 1도 사라지지 않았다. 전화마저 신호음만 울렸다. 친구의 가족 소식까지 찾았건만, 아쉽게도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을 갖고 있던 터라 인터넷 흔적을 찾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지금까지도 내가 그 친구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라곤 전화번호 11자리와 생일, 그리고 어린 시절 소중한 추억 정도다.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 있지만, 인터넷에 작은 흔적도 남기지 않은 친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녀가 소셜미디어 가입이라도 해뒀다면, 메일 주소 하나라도 기억하고 있었더라면 영화 ‘서칭’에서 인터넷 검색만으로 사람을 찾아내는 것처럼 명탐정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 걸 보면 소셜미디어가 없던 1990년대 방송 프로그램 ‘TV는 사랑을 싣고’가 누군가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부터 학원, 교회 등 오프라인 흔적을 좇아 어렵사리 사람을 찾아내고 마는 결말이 대중으로부터 감동을 끌어낸 것은 당연했던 것 같다.
어느새 그리운 친구를 찾는 감성은 옛 얘기가 되고 있다. 이제 오프라인에서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인터넷 세상에서는 아는 사람을 넘어 모르는 사람, 심지어 가상의 존재와도 만날 수 있다. 길에서 찍힌 CCTV 장면이나 인터넷 게시글 하나만으로 나의 신상정보부터 일거수일투족을 ‘알려면 알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사람 찾기에 대한 그리움과 답답함은 덜해졌지만, 과도한 온라인 연결은 많은 사람에게 외로움과 불안이라는 새로운 고통을 가져다줬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듯이 1990년대 레트로 감성의 패션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깻잎머리도 돌아왔다. Z세대는 피부 솜털이 보이는 고화질의 스마트폰 카메라가 아니라 저화질의 필름 카메라를 구입하고 있다. 필름 카메라와 레트로 패션으로 옛 시대의 멋과 재미를 재현할 수는 있겠지만, 평생의 은사님과 첫사랑을 간절히 찾아다니는 ‘TV는 사랑을 싣고’의 감성을 되찾기에는 이미 다른 세상에 와버린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