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삶이 무대 위에…황수미와 홍석원이 인도한 '천국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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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arte 필하모닉하프와 더블베이스의 마지막 음은 사라졌지만, 귓가엔 음악이 맴돌았다. 그 음악은 마치 천국을 향한 여정처럼 무한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홍석원이 지휘한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의 영감 넘치는 연주 덕분에 말러 교향곡 4번에 담긴 천국의 영원함이 가슴으로 전해졌다.
'2023 클래식 레볼루션'
'특이하다' 꼽히는 말러 4번
넓은 음역대·깨끗한 음색 뽐낸
소프라노 황수미 실력 돋보여
활력 넘친 홍석원 지휘도 일품
지난 13일 롯데콘서트홀의 ‘2023 클래식 레볼루션’ 무대에 오른 한경아르떼필은 말러의 교향곡 중 특이한 곡으로 꼽히는 4번을 연주했다. 이 곡은 ‘말러 교향곡’ 하면 떠오르는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 악장에 요란한 종결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 악장이 소프라노 독창이 함께하는 가곡 ‘천상의 삶’으로 조용히 마무리되는 것도 특이한 대목이다. 이 때문에 말러 교향곡 제4번은 관객의 열띤 호응을 이끌어내기 힘든 작품으로 분류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청중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박수와 환호를 보냈는데, 이는 소프라노 황수미의 뛰어난 독창과 선율 하나하나에 깊은 감정을 담아낸 홍석원의 지휘, 그리고 한경아르떼필의 진정성 있는 연주 덕분이었다.
올해 클래식 레볼루션의 주인공은 레너드 번스타인과 브람스, 드보르자크인데도 한경아르떼필이 말러의 교향곡 4번을 연주한 것은 황수미를 염두에 둔 선곡이 아닌가 짐작됐다. 황수미만큼 말러의 교향곡 4번에 잘 어울리는 음성과 가창력을 지닌 소프라노는 드물기 때문이다.
맑고 깨끗한 음성으로 넓은 음역에 걸쳐 정확하게 노래해야 하는 말러 교향곡 4번의 독창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황수미는 흔들림 없이 순진무구한 천국의 모습을 담은 가사 내용과 잘 맞는 표현법을 선보였다. 공연 전반부에 ‘아이 필 프리티’를 비롯한 번스타인의 뮤지컬 아리아를 그토록 발랄하게 소화해낸 황수미가 말러의 곡에선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을 지켜보며 오페라 가수로서의 탁월한 실력을 느낄 수 있었다.홍석원 역시 첫 곡으로 선보인 번스타인의 ‘온 더 타운’ 중 3개의 에피소드를 지휘할 때는 활력 넘치는 리듬의 맥박을 이끌어내며 관객에게 감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 반면 말러의 교향곡 4번을 지휘할 때는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내듯 급변하는 템포와 분위기를 살려내며 관객을 서서히 말러의 음악 속으로 끌어들였다.
썰매방울 소리로 시작하는 말러 교향곡 4번 1악장 도입부는 템포 처리가 다소 까다로운 부분이지만 출발은 순조로웠다. 다만 천국과 대조되는 지상의 고통을 담은 1악장 중간 클라이맥스 효과가 충분치 않았고, 저승사자의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오는 2악장에서 현악기군이 관악기군에 비해 다소 약하게 들려서 이 곡의 기괴한 성격이 충분히 드러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그러나 느린 3악장에서 ‘탄식하듯이’ 연주하는 오보에 솔로부터 음악적인 긴장감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현악 주자들의 레가토(둘 이상의 음을 이어서 부드럽게 연주)가 힘을 더하기 시작하고 선율이 감정이 실렸다. 그리고 마침내 탄식의 절정을 지나 천국의 문이 열리는 3악장 말미에서 전율이 전해졌다. 그 덕분에 4악장 천상의 삶으로의 이행은 매우 자연스러웠고 소프라노 독창은 큰 설득력을 얻으면서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줬다. 최은규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