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오마카세' 대신 '맡김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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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진 수협중앙회장얼마 전 길을 걷다 어느 식당 밖에 적힌 ‘우마카세’라는 표현을 봤다. 처음에는 오마카세를 잘못 썼나 싶었다. 알고 보니 소고기를 부위별 코스요리로 판매한다는 뜻을 담아 ‘우(牛)’와 오마카세의 ‘마카세’를 합친 신종 합성어였다.
최근 오마카세에서 파생한 치마카세(치킨) 커마카세(커피) 등 다양한 합성어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오마카세(おまかせ)는 ‘남에게 모두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로 주방장이 마음대로 요리를 내는 형태의 음식문화를 뜻한다. 오마카세처럼 마치 한국어인 것마냥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일본어가 적지 않다. 음식, 물건, 장소 등에서 일본어의 흔적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심지어 어느 부분은 일본어가 우리말보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오마카세를 코스요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재해석해 일상용어화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오늘은 우리나라가 주권을 되찾은 지 78주년이 되는 광복절이다. 일본은 언어가 민족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는 이유로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꿨다.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며 일본어 교육을 하는 등 우리말을 말살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우리는 일본의 영향을 쉽게 지워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수산 분야에도 일본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붕장어는 ‘아나고’, 갯장어는 ‘하모’, 참치는 ‘마구로’, 성게는 ‘우니’ 등 수산물에서도 우리말보다 일본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식당에서도 ‘쓰키다시’ ‘세꼬시’ ‘사시미’ ‘지리’ 등 일본어 표현이 마치 고유명사처럼 들려온다. 경남 통영에서 술값만 계산하면 다양한 해산물 안주가 나오는 식문화인 다찌도 일본어 ‘다찌노미’에서 유래한 말이다.
수산물을 매우 선호하는 일본은 우리나라를 침략해 강제병합한 후 한국의 수산물을 수탈하기 위해 혈안이 됐었다. 당시 어민들은 목숨 걸고 어렵게 잡은 수산물을 모두 일본에 빼앗겨야 했다. 수십 년에 걸친 수탈의 역사가 우리 말과 글 대신 일본어를 주류로 만든 주된 이유가 됐다고 할 수 있겠다.말은 그 문화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외래어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익숙한 단어를 쓰는 것이 대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쓰는 단어들에는 이처럼 수탈과 아픔의 기억이 담겨 있다. 우리 고유의 말을 사용하고 우리말이라는 그릇에 한국 고유의 정신을 담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것이다.
좀 어색하겠지만 식당에 가서 ‘오마카세’ 대신 ‘맡김차림’이나 ‘주방특선’이라는 순화어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자꾸 사용하다 보면 익숙해질 테고 그것이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지킬 방법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