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기 경매에 상추값 450% 출렁…'脫도매' 가속화

농산물 직거래 빅뱅
(2) 외면 받는 도매시장, 왜

당일 물량만 경매, 가격 늘 달라
'천수답 시스템'에 경쟁력 잃어
농산물 거래비중 50% 붕괴 위기

정부, 11월 온라인도매시장 출범
유통단계 줄이고 산지서 직배달
사진=연합뉴스
지난 13일 밤 10시에 찾은 서울 가락농수산물도매시장. 전국 32개 공영 도매시장의 농산물 거래물량 34%를 점유한 최대 시장이다. 폭우와 태풍 ‘카눈’이 전국 주요 산지에 2연타를 날린 직후여서 쓸 만한 상추 찾기가 쉽지 않았다.

중도매인들은 상추 품질을 일일이 확인하고 경매에 참여했다. 도매시장법인 소속 경매사가 재빠르게 경매를 진행했다. 강원 평창의 농민 윤모씨(65)가 재배한 적상추는 중매인 A씨의 트럭에 실렸다.

위기의 농산물 도매시장

도매시장을 거치는 전통적 농산물 유통은 농가→생산자단체→산지유통인→도매시장법인(청과회사)→중도매인→소매업체→소비자로 이어지는 구조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출하 농산물의 54.3%가 도매시장을 거쳐 거래됐다.

1985년 최초의 공영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이 문을 연 후 농산물 도매시장은 경매·입찰로 공정성을 추구하며 다양한 작물을 판매하는 장(場)이 됐다. 전국 대다수 농산물을 의무적으로 수집해 영세 농민의 판로 확보 부담을 낮추는 장점도 있다.하지만 선진 물류 시스템으로 무장한 대형마트, e커머스의 지배력이 커지면서 거래가 위축되는 위기에 봉착했다. 50% 선이 붕괴하기 일보 직전인 도매시장의 농산물 거래 비중은 20년 전인 2003년만 하더라도 78.8%에 달했다. 가락시장은 2018~2022년 거래 물량이 연평균 1.2%씩 감소했다.

시대 변화 못 좇아

유통업계에선 도매시장이 높아진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걸 이런 추세를 고착시킨 핵심 요인으로 본다. 최근 유통업계 화두로 떠오른 ‘못난이 농산물’이 그런 사례다.

못난이 농산물은 겉면에 상처가 났지만 품질은 A급과 별 차이 없는 상품이다. 롯데마트가 ‘상생’ 브랜드를 붙여 파는 B급 농산물은 올해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0% 급증했다. 대규모 저장 창고, 농산물을 소분하거나 전처리할 수 있는 작업장이 부족한 도매시장은 취급하기 어렵다.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비지 중심에 있는 도매시장을 소분 포장, 1차 가공처리, 저장 등이 가능한 곳으로 바꾸는 등 시장 현대화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 13일 밤 10시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상추 경매가 한창이다. 폭우 이후 급등한 엽채류 시세에 중매인들이 평소보다 꼼꼼하게 작물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한경제 기자
공영 도매시장 설립 초기 농산물 가격 안정화에 기여한 경매제가 직거래 활성화로 경쟁력을 잃었다는 지적도 있다. 도매시장에서는 매일 경매를 통해 농산물 가격을 결정한다. 청과시장 소속 경매사가 경매를 진행하면 일정 자격을 갖춘 중도매인이 참여하는 방식이다.

가격이 매일 바뀐다는 건 당일 입고 물량에 의존해 가격이 널뛰는 ‘천수답 시스템’임을 의미한다. 팜에어·한경 농산물가격지수(KAPI)를 산출하는 예측 시스템 테란에 따르면 지난 7월 초부터 22일까지 폭우 등의 직격탄을 맞은 상추 가격변동폭은 449.4%에 달했다. 가격 결정 흐름을 꿰고 있는 일부 산지 유통인이 농산물을 일시적으로 비축해두고 출하량을 조절해 가격을 왜곡하는 빌미도 된다.

온라인 도매시장이 해법 될까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라인 도매시장 출범을 추진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오는 11월 30일 출범시킬 예정인 온라인 도매시장은 기존 시스템을 뒤흔들 ‘게임체인저’로 인식된다.온라인 도매시장에서는 도매시장법인, 시장도매인,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영농조합 등 다수 주체가 참여해 물건을 판매하고 기존 참여자인 중도매인뿐 아니라 대형마트 등 소매업체도 구매자가 될 수 있다. 생산자→판매자→구매자→소비자로 유통 단계를 줄인다는 점, 시·공간 제약 없이 경매가 이뤄진다는 점, 수요처가 낙찰받은 물품을 산지에서 곧장 공급받아 물류비용을 아낀다는 점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양석준 상명대 교수는 “성장하는 온라인 소매시장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가 온라인 도매시장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