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 '조커'를 만든 음악

[arte]코난의 맛있는 오디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무작위로 세상에 내던져진다. 자기결정권이란 없이 그저 세상에 내맡겨져 환경에 적응하며 운명적으로 삶을 받아낸다. DC 코믹스에서 브루스 웨인과 조커는 정반대편에서 선과 악으로 대면했고, 우린 그렇게 선악 양자 대결로만 받아들이곤 했다.

조커를 중심으로 그 기원을 창의적으로 각색한 이 영화는 우리의 시선을 조금 바꿔보라고 종용하는 듯하다. 그저 자신의 불운과 가난에 기꺼이 수동적으로 응수하며 살아가던 조커가 숨겨져 있던 자신의 유년시절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서 악은 탄생한다. 망상장애의 환상 속에 은폐돼 있던 진실을 끝내 찾아내고 응시한 조커는 전혀 다른 조커로 재탄생하며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래서 그 전까지의 장애로 인한 웃음과 그 이후의 웃음은 완벽히 다르다. 언제부턴가 그의 웃음은 핏기 없는 냉소와 세상에 던져진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분노를 넘어 ‘예의 없는’ 세상에 대한 비소로 넘실댄다. 강력하게 당겨진 트리거는 고담을 불태우고 토마스 웨인으로 대변되는 기득권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사회, 종교, 정치 등 민감한 주제들이 헐리우드라는 범대중적 미디어 플랫폼 위에 얹어졌을 때 여러 소재는 영화적 장치로 재현되며 상징들은 불친절하게 주제를 은유한다. 동일한 장소지만 수십 개의 계단을 오르던 아서가 조커 분장을 하고 춤을 추며 내려오는 장면에서 아서는 더 이상 아서가 아니다.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은 마치 조커와 같은 자본주의 광대처럼 비친다.
‘우린 모두 광대다’. 곳곳에 설치된 영화적 상징은 소름이 돋을 만큼 치밀하다.선과 악, 보수와 진보, 옳고 그름은 없다. 이 영화는 단지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 기득권과 비기득권자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화이트 룸에 갇혀버린 조커의 세계관 속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깊고 무겁게 몰아간다. 태양이 결코 빛나지 않는 곳에 내던져진 인생은 그 자체가 코미디였다는 아이러니 앞에서 조커는 웃었고 귀밑까지 찢어질 듯한 입으로 또 웃을 뿐이다.

조커라는 인물이 ‘악의 탄생’이라는 부제 아래 새로운 캐릭터로 승화할 수 있었던 데엔 음악이 있다. 우스꽝스럽게 계단에서 댄스를 춰도 조커는 과거의 조커가 아니다. 배경으로 깔리는 첼로는 이 영화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바로 힐더 구드나도티르 음악 감독은 조커의 심리 상태를 음악으로 치환하듯 소리와 연주 모두 비범하게 직조해냈다. 힐더 루드나도티르는 누구인가? 그녀와 마찬가지로 아이슬란드 출신 영화 음악가 요한 요한슨과 함께 ‘프리즈너스’, ‘시카리오’ 그리고 ‘컨택트’까지 때론 음울하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감각적인 앰비언트 또는 첼로로 변주해낸 바 있다.
힐더 구드나도티가 조커의 심리를 다소 긴 시퀀스 안에서 끌고나가며 세심하게 묘사해내는 데 집중했다며 중간 중간 짧은 장면에서 강력한 임팩트를 준 건 익히 알려진 삽입곡들이다. 감독 토드 핍립스가 누구인가? 이전 영화에서도 다양한 장르 안에 손에 꼽힐 듯 멋진 음악으로 영화를 더욱 감칠맛나게 요리했던 그다. 심지어 ‘스타 이즈 본’ 같은 음악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던 토드다. 독특한 정체성의 ‘조커’, 심리적 불안정과 분노로 가득한 그의 심리와 그 배경이 삽입곡들에서 들춰지기도 한다.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테마 곡에 가사를 붙여 만든 지미 듀란트의 ‘Smile’은 의미심장하다. 엘라 윌콕스의 시 ‘고독’의 싯구가 떠오른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게스 후의 ‘Laughing’, 프랭크 시나트라의 ‘Send in the clowns’ 등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팝, 록, 소울 음악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을 가르는 음악은 내게 있어 크림의 ‘White room’이다. 체포되어 경찰차를 타고 가는 중에 무심코, 그러나 강력하게 흘러나오는 싸이키델릭 록 ‘White room’은 에릭 클랩튼이 들었다며 탄성을 질렀을지도 모를 정도로 이 영화의 백미다.
더 크림
혁명 전사가 된 조커. 그러나 이 영화는 상당히 위험하다. 자기이행적 확증 편향이 몰고 올 재난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며 그 구성원 및 사회는 물론 자신까지 파멸로 몰고 갈 것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은 이다음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확장될지 힌트를 준다.

조커는 배트맨 시리즈에 등장한 그 조커인가? 표면적으로 조커의 탈을 쓰고 있으나 조커는 그저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호아킨 피닉스의 신들린 듯한 연기는 조커을 더 이상 조커로 보기 어렵게 자꾸만 관객의 시야를 흐리면서 동시에 확장시킨다. DC 코믹스의 캐릭터에서 얻은 인물과 배경을 현대사회 어두운 면에 빗대어 변주한, 진지하고 엄숙한 주제의 영화 [조커]. 그러나 이 영화가 상업 영화의 중심, 헐리우드 플랫폼에서 제작되고 전 세계 메이저 멀티플렉스에서 유통되는 아이니러니는 일면 통쾌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