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은 몰랐는데…" '애플워치' 등장하자 벌어진 일 [한경제의 신선한 경제]

'열 살 애플워치'에 시계시장 양극화
"명품만 살아남았다"
200년 이상 공고했던 글로벌 시계 시장에 ‘열 살’ 애플워치가 균열을 내고 있다. 2014년 애플워치가 처음으로 공개된 이후 시계 브랜드의 양극화가 극명해진 모양새다. 대 당 100만원 이내의 애플워치가 대중을 공략하면서 그동안 중저가 시장을 장악했던 패션 시계들이 대거 밀려났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명망있는 시티즌, 세이코 등 쿼츠 시계의 지위까지 위협하고 있다.

반면 ‘롤오까’(롤렉스·오메가·까르띠에)로 대표되는 럭셔리 시계들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실적과 주가가 모두 우상향하고 있다.

스위스 시계 뛰어넘은 애플워치 출하량

16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리서치포인트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스마트 워치 출하량은 약 1억5000만대로 애플워치는 5000만대 이상이 팔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스위스 시계 수출 물량(1580만대)보다 세 배 이상 많은 수치다.
출시 당시만 해도 애플워치는 시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의견이 대다수였다. 스위스 시계 제조업체 스와치그룹의 닉 하이에크 회장은 “우리는 스마트워치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그의 예상과 달리 2014년 2860만대였던 스위스 시계 수출 물량은 8년 사이(2014년~2022년) 44.7% 급감했다. 2017년 4분기에 처음으로 애플워치가 스위스 시계의 분기 수출량을 뛰어 넘은 이래 그 흐름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설 자리 잃은 패션 시계

그간 대중에게 저렴한 가격대, 높은 브랜드 인지도라는 강점으로 다가갔던 패션시계는 애플워치의 공세에 시장에서 밀려났다. 애플워치가 대 당 50만원~100만원의 합리적인 가격에 건강 상태 측정, 통화 및 메신저 지원 등 각종 기능까지 탑재해 ‘기능성 특화 시계’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패션 시계 업체인 파슬 그룹이 대표적이다. 100만원 이하의 패션시계에 특화된 이 회사는 퓨마, 엠포리오 아르마니, 디젤, 아디다스, DKNY, 마이클 코어스, 토리버치 등 수많은 패션 브랜드의 시계 생산 및 유통을 담당한다. 2014년만 해도 매출 35억969만달러, 영업이익 5억6653만달러를 올렸지만 지난해에는 영업손실 147만달러를 내며 적자전환했다. 매출도 16억8243만달러로 줄었다.

2012년 130달러대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하락을 거듭해 현재 나스닥시장에서 2.10달러(14일 현지시간)에 거래되고 있다.
2012년 이후 하락한 파슬 주가

럭셔리 시계 브랜드도 엇갈려

고가 시계 브랜드들 사이에서도 상황은 엇갈린다. 제조 과정에서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기계식 위주의 브랜드들이 살아남은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쿼츠 시계를 취급하는 브랜드들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기계식 시계 중 명품으로 분류되는 롤렉스, 오메가, 까르띠에, 파텍 필립, 오데마 피게 등의 브랜드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명품 선호 현상과 가격인상에 힘입어 실적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롤렉스는 지난해 전년 대비 19.7% 증가한 97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2014년만 해도 연매출은 51억달러 수준이었다.까르띠에, 피아제 등을 보유한 리치몬트그룹(매출 19.0% 증가), 오메가, 브레게, 스와치 등을 보유한 스와치그룹(5.7% 증가) 또한 매출 증가세를 유지중이다.
반면 쿼츠 시계를 주로 생산하는 시티즌은 매출이 2014년 30억달러에서 지난해 22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한 시계 수입업체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시계를 구입하는 이유는 시계 본연의 기능을 기대하거나 사치재로서의 역할을 바라기 때문”이라며 “중저가 시계 브랜드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BGC)은 글로벌 명품 시계 시장 규모가 지난해 790억달러까지 성장해 한화 10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예상했다.

한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