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조 세계 비만약 시장…韓 제약사도 가세

비만약 새 역사 쓴 GLP-1 제제
포만감 줘 1년 만에 24% 감량
릴리·노보 등 조단위 투자 발표

한미약품도 국내 임상3상 추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4.2%(26.2㎏).’ 지난 10일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공개된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릴리) ‘레타트루티드’의 체중 감량 효과다. 고도 비만 환자 투여 1년 만에 확인된 효과로, 1년6개월 만에 22.5%(24㎏) 감량 효과를 낸 마운자로를 뛰어넘었다.

비만 치료의 역사를 쓰고 있는 릴리의 마운자로와 레타트루티드,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노보)의 위고비는 모두 글루카곤유사펩티드-1(GLP-1) 계열 제제다. 당뇨약으로 활용되던 이 물질은 포만감을 느끼게 해 식욕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비만 치료제’ 패권 시대를 열었다. 만성 질환 치료제 패러다임이 ‘당뇨’에서 ‘비만’으로 옮겨가면서 국내 제약사들도 후속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비만 치료제 확보 전쟁 본격화

15일 업계에 따르면 비만 치료제 시장 선두를 달리고 있는 릴리와 노보는 최근 한 달간 후속 후보물질 확보를 위해 30억달러(약 4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1년간 국내 10대 제약사의 연구개발(R&D) 비용(2조1589억원)의 두 배에 육박한다. 릴리는 지난달 미국 바이오기업 버사니스를 19억2500만달러에 인수했다. 버사니스는 근육량을 보존하면서 지방을 줄여주는 비만 신약 ‘비마그루맙’을 보유하고 있다. 한 달 뒤 노보는 캐나다 바이오 기업 인버사고를 10억7500만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인버사고는 식욕 조절 등에 영향을 주는 칸나비노이드수용체유형1(CB1)을 활용한 먹는 약 ‘INV-202’를 개발하고 있다.이들은 비만 치료제 시장 게임체인저인 마운자로와 위고비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출시된 마운자로는 1년 만에 분기 매출 10억달러를 기록하면서 블록버스터 반열에 올랐다. 후속 치료제 개발도 계속된다. 릴리의 후속 주자는 레타트루티드다. 마운자로가 GLP-1과 인슐린 자극 펩타이드(GIP) 두 가지를 표적으로 삼는 데 반해 레타트루티드는 GLP-1과 GIP, 글루카곤 수용체 등 세 가지에 동시 작용하는 삼중작용제다. 노보의 후속 주자는 카그리세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밴티지마켓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비만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2년 116억달러(약 15조5000억원)에서 2030년 390억달러(약 52조1000억원)로 급증할 전망이다.

고혈압 치료 등으로 확대 전망


치료 범위를 확대하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노보는 위고비가 심혈관 질환 위험을 20% 낮춰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고도비만 치료제가 각종 질환 위험도 낮춘다는 것을 입증하면 보험시장 진입이 수월해져 활용도가 커질 수 있다. 고도비만 환자 체중이 줄면 고혈압, 수면무호흡증, 비알코올성 지방간 등도 개선된다. 추가 치료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의미다.이들 치료제 수요가 늘면서 국내 의료 현장에선 지난달부터 GLP-1 제제인 릴리의 트루리시티, 노보의 줄토피 품절이 잇따르고 있다. 국산 치료제가 개발되면 숨통이 트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내 기업도 신약 개발 나서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국산 제품은 한미약품의 에페글레나타이드다. 지난달 말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비만 치료용 임상3상 시험을 위한 계획(IND)을 제출했다. 한미약품의 개발 전략은 ‘한국인용 비만약’이다. 미국보다 비만도가 높지 않은 한국인 특성을 고려하면 다른 글로벌 신약처럼 ‘높은 감량 효과’를 내지 않아도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후속 GLP-1 제제는 대부분 동물실험 단계다. 동아에스티의 DA-1726, 일동제약의 ID110521156, HLB제약의 HP-P038 등이다. LG화학도 유전성 비만치료제 LR19021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임상 1상 단계다. 대웅제약(DWP306001), 유한양행(YH34160) 등도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