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연기 호평 부담? 15년 전에 이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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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탁 역 배우 이병헌*인터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 그곳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 아파트.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이 비정상적인 설정 속 이야기를 있을 법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와닿게 만드는 9할은 이병헌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불덩이 속으로 돌진하며 단숨에 황궁 아파트의 영웅으로 등극하지만, 이후 욕망으로 변화하는 영탁의 모습은 디스토피아의 절망과 비극적인 인간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를 때로는 현실적으로, 때로는 극적으로 펼쳐내며 관객들의 심장을 쥐락펴락한 이병헌에게 "연기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제가 15년 전쯤에 그런 질문을 받았던 거 같은데, 갑자기 문득 아직도 내가 부담감을 가졌어야 했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병헌은 이어 "예전엔 '언제쯤 그런 부담 없어지나' 생각했던 거 같다"며 "어느 정도의 연기자가 돼야 그런 부담감이 덜해질까 했는데, 그 얘길 들으니 지금도 똑같이 부담스럽고 떨리는 거 같다"고 말했다. 이병헌이기에 보일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영탁은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는 황궁 아파트를 지키는 주민 대표였다. 황궁 아파트의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외부 생존자들로부터 입주민들이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들은 생존을 위해 영탁을 중심으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행동했다.어리바리하고 순수했던 영탁은 주민들의 지지로 절대 권력을 누리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한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비밀을 지키려 안간힘을 쓴다. 이병헌은 이런 영탁을 "어깨에 많은 걸 짊어진 소시민 가장"이라고 소개했다.
"영탁은 우발적인 살인으로 가족도 잃고, 이미 자기의 삶이 없어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평범해 보이지만 어눌해 보이고,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느낌도 있고, 제정신이 아니었죠.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을 추앙해주니 자신도 '이게 무슨 상황일까' 얼떨떨했을 거예요. 그 와중에 주민회의에서 '세상은 이제 모두 리셋됐다. 이제 살인자도, 목회자도 다 새롭게 시작된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심경의 변화가 생기는 거죠."'콘크리트 유토피아' 통틀어 최고의 명장면으로 영탁이 '아파트'를 부르며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꼽히고 있다. 주민들의 추대를 받으며 무대에 오른 영탁이 '아파트'를 열창하면서 그의 숨겨진 사연들이 공개되는데, 감각적인 교차 편집으로 영화적인 재미를 줄 뿐 아니라 이병헌 연기의 진수를 엿볼 수 있다. 이병헌 역시 "상상도 못 한 후반작업으로 굉장한 임팩트를 안긴 시퀀스였다"고 만족감을 보였다."콘티에서는 영탁이 마을 파티를 해서 마지못해 떠밀려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플래시백이 끝나고,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있다는 정도였어요. 감독님의 의도와 장면의 의도를 엿볼 수 있었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굉장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으로 나왔어요."
일각에서는 이병헌을 상징하는 '밈'으로 꼽히는 '건치 미소 댄스'를 뛰어넘는 명장면이 될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에 대해 "전 그게 왜 이렇게 나오게 된 건지 모르겠다"면서 솔직한 심정을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병헌은 "전 아직도 신비롭고 싶고, 그 (건치 미소 댄스) 영상은 제가 의도해서 그렇게 나간 게 아니다"며 "이게 그렇게 소비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충격적이었지만 어쩌겠나. 이왕 나온 거 즐겨야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거듭 "난 여전히 신비롭고 싶다"고 강조해 폭소케 했다.연기로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는 말까지 나오는 동시에, 주변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배우들이 속속 연출에 도전하고 있다. 김윤석, 이정재 등은 각각 첫 장편 연출작인 '미성년', '헌트' 등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영화 '백두산'을 함께한 하정우는 새 연출작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이병헌은 "전 제가 잘하는 걸 하고 싶다"면서 앞으로도 연기에 집중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연출까지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워요. 연기와 연출은 전혀 다른 영역이거든요. 저도 두 재능이 모두 있었다면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연출을) 하고 싶진 않아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