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준 "'콘크리트 유토피아' 중심은 이병헌 선배와 영탁" [인터뷰+]
입력
수정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민성 역 배우 박서준가장 많이 뛰어다녔고, 가장 많은 액션을 펼쳤다. 육체적으로 가장 많이 고생한 게 눈에 보이는 캐릭터였지만, 극 전체의 비중을 놓고 보자면 그리 많진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극의 비중이 적어 섭섭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배우 박서준은 "이 영화의 구심점은 이병헌 선배, 그리고 영탁"이라고 답했다. 우문현답이었다.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서울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 아파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주민들의 처절한 생존기를 담았다. 박서준이 연기한 민성은 유일한 가족인 아내 명화(박보영 분)를 지키기 위해 주민 대표 영탁(이병헌 분)에게 충성하는 캐릭터다.민성은 대지진이 있었을 당시 손바닥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동료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마음에 갖고 살아가는 인간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아내를 지키기 위해 변화하는데, 박서준은 이 과정을 설득력 있게 연기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지진을 온몸으로 겪고,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를 헤매는 민성의 모습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덮친 재앙의 생생한 고통을 전달한다. 박서준은 "극의 흐름에서 민성의 감정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이 부분들을 어떻게 세밀하게 표현할지 고민했고, 감정이 변화하는 지점에서 어느 정도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지 선택하는 게 어려웠던 부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완성본을 보니 저는 굉장히 만족스럽다"며 "아쉬운 부분이 없다"면서 웃었다.박서준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출연은 그의 이병헌에 대한 '팬심'에서 시작됐다. 연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병헌의) 팬이었다"는 박서준은 "이번 작품은 제가 너무 하고 싶어서 억지로 만든 인연"이라며 "이병헌 선배님이 하신다고 해서 '저도 시나리오를 받아볼 수 있을까요'라고 요청했고,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감초나 카메오 정도였다면 출연을 고민했을 텐데, 선배님과 긴 호흡을 함께 할 수 있고 제가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라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병헌의 연기에 "경이로웠다"며 "이분과 계속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존경심을 드러냈다.팬의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캐릭터에는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박서준은 "재난 상황에서 몸이 피둥피둥한 건 말이 안 될 것 같았다"며 민성을 연기하기 위해 7kg을 감량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앞서 축구선수 역할의 영화 '드림'을 찍었던 박서준은 한여름 폭염에 패딩을 입고 촬영하느라 "처음엔 살을 뺐지만, 이후엔 땀을 많이 흘려서 밥을 엄청나게 먹어도 살이 계속 빠졌다"면서 쉽지 않았던 촬영기를 전했다. 그러면서도 "감량하면서 캐릭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며 "그동안 하지 않은 연기라 재밌었다"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정의롭고, 극을 이끌고, 그런 역할들을 주로 했었던 거 같아요. 이번엔 거기에서 벗어나 평범하게 살아가던 인물의 심리 변화를 표현한다는 거 자체가 즐겁더라고요. '드림' 때도 엄청나게 뛰고, 이번에도 신체적으로 힘들어서 '난 왜 이렇게 힘든 것만 할까' 하다가, 이제는 '팔자다' 싶어요. 다음엔 좀 편한 걸 하고 싶은데, 끌리는 건 또 이런 거더라고요."2012년 KBS 2TV '드림하이2'를 시작으로 MBC '금 나와라, 뚝딱!', MBC '킬미, 힐미', KBS 2TV '쌈, 마이웨이', JTBC '이태원 클라쓰' 등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에서 활약했던 박서준이었다. 2015년 영화 '악의 연대기'로 주연배우로 스크린에 도전장을 낸 후 '청년경찰', '사자', '드림' 등 전혀 다른 장르와 캐릭터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차근차근 필모그라피를 쌓아가며 또래 연기자 중에서도 연기력과 스타성을 고루 갖춘 배우라는 평을 받는 박서준이다. 오는 11월에는 할리우드 영화 '더 마블스' 개봉도 앞두고 있다.박서준은 시나리오 선택 기준을 '내가 할 수 있는 도전'이라 꼽았다. 스토리에 매료되더라도 '내가 이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제가 난독이 있어서 대본을 빨리 보진 못해요.(웃음) 그래서 작품 선택이 쉬운 편이에요. 빨리 읽히려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져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더뎌져요. 처음 몇 장에서 넘어가지 못하면 '아, 이건 내가 소화하기 힘들겠구나' 싶은 거죠. 이게 저에겐 엄청난 힘이 되는 거 같아요. 저는 숫자를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 제작비가 얼마인지, 투자나 배급이 어디인지는 중요하게 보진 않는 거 같아요. 재밌으면 해왔고, 그래서 후회가 없어요."
캐릭터와 함께 박서준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의리'다. 2017년 방영된 KBS 2TV '화랑'을 함께한 박형식, 그룹 방탄소년단(BTS) 뷔와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가고 있고, 영국 런던에서 '더 마블스'를 촬영할 때 카메오로 출연했던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만남을 갖기도 했다."'기생충'에 특별출연을 했을 때 (최)우식이가 많이 부러웠어요. 송강호, 이선균, 이정은, 조여정 등 쟁쟁한 선배님들과 긴 호흡을 함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생각해보니 저는 가족 구성원이 주체가 돼 이야기가 펼쳐지는 작품을 못 찍어본 거 같아요. 그런 앙상블을 이루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