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통에 지켜낸 '모두의 미술관'…런던 내셔널갤러리 막전막후

[arte] 윤상인의 런던 남자의 하얀 캔버스
몇 주전 나는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보고 싶은 그림이 있어 개장시간에 맞춰 입장하였다. 이른 시각이라 전시실에는 나뿐이었고, 잠시나마 나 혼자 그림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텅 빈 내셔널갤러리의 전시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더니 지인들이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한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전시의 반응은 티켓이 매진되는 등 아주 뜨겁다고 했다.내셔널갤러리를 처음 방문한 건 1999년이었다. 유럽 여행을 하던 중 화장실을 가기 위해 ‘무료 입장’ 이라고 써 있는 건물에 들어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내셔널갤러리였다. 이후 내가 다시 런던에 와서 20여 년 동안 내셔널갤러리에서 그림을 해설할 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특별한 서유럽 최고 미술관의 탄생


유럽의 변방이었던 영국이 엘리자베스 1세 여왕때 강대국 반열에 올랐고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때 산업혁명과 식민지 사업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우뚝서게 되었다. 국가가 막대한 부를 쌓고 강대해지자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주변 유럽 국가들은 이미 몇 세기 이전부터 예술가들을 후원하여 대가들을 탄생시켰고 본국을 대표할만한 미술관이 있었지만 당시 영국은 유럽의 가난하고 힘없는 작은 섬나라였기에 그럴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런던에 서유럽 최고의 명화들을 전시하는 미술관을 설립하고 모든 이들에게 문화를 제공하고자 하는 열망이 모여 1824년 런던 내셔널갤러리를 개관하였다. 영국 정부가 러시아 은행가의 소장품 38점을 구입하고 보몬트경과 홀웰카 목사가 55점을 유증하여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런던 내셔널갤러리에는 아주 특별한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은 작품의 구매 및 운영을 위해 일부 기부를 받고 관람객들에게 만만치 않은 금액의 입장료를 받는다. 하지만 런던 내셔널갤러리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100년 전 개관 이후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입장료를 받은 적이 없고 아마 앞으로도 이 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런던 내셔널갤러리는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라는 슬로건으로 무료입장뿐만 아니라 설립 당시 다른 유럽국가의 미술관에서 행해지던 상류층들만 입장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입장 규칙들을 배제하였다. 또한 유일하게 어린아이의 입장을 허용했고 런던 서쪽의 부유층과 동쪽의 빈민층 모두 접근할 수 있도록 런던의 가장 중심인 트러팰가 광장에 자리를 잡았다.

런던은 미술관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크고 작은 미술관, 박물관들이 대략 200여 개 정도 있다. 이 중 국립미술관, 박물관은 15개 정도 되는데 영국의 모든 국립 미술관, 박물관은 모든 방문객에게 무료로 공개하고 있으며 운영은 정부 보조금과 후원 및 기부금으로 하고 있다. 런던 내셔널갤러리 같은 경우 작품 4분의 1가량은 개인에게서 받은 기증품이고 이 외의 작품은 1853년에 마련된 작품 구입 지침에 따라 구매하고 있다. 또한 1903년 설립된 ‘Art Fund 예술 기금’이 작품 구입을 돕고 있다.“We help museums share great art and culture with everyone” – Art Fund

전쟁통에 지켜낸 유산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고 영국은 참전 국가로서 전쟁의 최전선에 놓이게 되자 내셔널갤러리는 관람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모든 소장품들을 비밀 장소에 대피시켰다. 그림을 대피시킬 준비를 하는 것만 1년이 걸렸을 정도로 전쟁 중에 예술품까지 대피시키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캐나다로 옮기는 것도 고려되었으나 당시 수상이었던 처칠이 ‘예술품은 절대 영국 섬을 떠나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여 웨일즈 등 영국 곳곳의 지하실과 동굴로 옮기게 되었다. 1940년 8월 런던 대공습이 시작되었고 내셔널갤러리에 몇차례 폭탄이 떨어지며 건물이 파괴되었다. 아찔한 순간이다. 영국 정부가 어렵고 힘든 과정을 감수하며 예술품을 지켜내지 않았다면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유산들은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그림들이 사라진 미술관에서는 전쟁 내내 클래식 음악 콘서트가 열렸다. 입장료 1실링의 점심시간 콘서트는 성공적이었다. 전쟁 기간 중 6년 6개월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1698번의 콘서트가 열렸고 가벼운 음식을 저렴하게 판매하여 자선단체들을 위해 4만5000파운드의 기금도 마련했다. 전쟁이라는 상상하기 힘든 고통의 순간들을 이겨 나가는데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일화이다.


내셔널갤러리의 역할


한 영국 작가의 전시에서 그녀가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계기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그녀는 불우한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중학생때 학교에서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현재 예술가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나 또한 무료 입장 덕분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그림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고 이후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게 되었다. 일반인들이 예술에 관심을 갖도록 계기를 만들어 주고 젊은 예술가들을 육성하는 것이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설립 목적 중 하나이다. 교육 활동은 창립당시부터 주요 업무였고 1914년부터 정식 강사를 임명하여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출처: 런던 내셔널갤러리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역할은 단순히 그림을 전시하는 장소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 소외계층, 소외지역에서도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장려하고 교육하여 시민들이 예술을 통해 편견과 차별을 뛰어넘어 사회 일원으로 함께 융화되어 지낼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역할일 것이다.

“정부의 첫번째 의무는 국민들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국민들에게 도덕적, 지적 교육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존 러스킨 (영국 작가, 예술 비평가)


윤상인 artclub184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