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때 더 다정한 쪽이 덜 사랑한 사람이다"

[arte] 이재현의 탐나는 책

< 아마도 아프리카 >
이제니 지음, 창비, 2010
문학평론가 허윤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호머를 비롯한 음유시인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가 프랑스의 옛 음유시인들인 트루베르나 트루바두르처럼 음악적인 언어로 세상을 표현하고 공감을 얻고 문화적인 보편 상징이 될 수는 없다. 시조를 읊음으로써 현실의 정치 사상과 예술의 미학을 통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가 문화적 (재)통합을 담당하는 보편적인 공통 감각장의 역할을 하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 (……) 현대시는 음악을 잃고 노이즈가 됨으로써 비로소 성립되었다.”

혹자는 더이상 음악이 아니게 된 현대시에 대해 성토한다. 입말의 리듬이야말로 시의 전문이었지 않느냐고. 외국 시처럼 각운과 두운을 맞추거나, 힙합의 라임과 같은 시도는 이제 한국 현대시에서는 드물어진 것이 사실이다.허나 리듬감이 온전히 상실된 것도 아니다. 시를 입으로 따라 읽다보면 각 시인마다 나름의 리듬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외형률의 전면화보다는 보다 적확한 의미와 결합을 고심하며, 시라는 예술의 가장자리를 더욱 넓혀낼 고유한 표현 방식을 위해 고투하며 읽는 당신의 내면에 은은하게 스며들어가는 것이다. 즉 각각의 장르, 각각의 작품마다 치열한 투쟁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혹여 읽는 맛을 좀더 증폭시키는 경험을 원하는 독자라면, 나는 그에게 이제니의 시집을 건네고 싶다.


고백을 하고 만다린 주스
달콤 달콤 부풀어오른다
달콤 달콤 차고 넘친다

액체에게 마음이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당신은 당신을 닮은 액체를 가지고 있나요
당신은 당신을 닮은 액체에게 무슨 말을 하나요 고백을 하고 돌아서서 만다린 주스
고백을 들은 너는 허리를 숙여 구두끈을 고쳐맨다
고백과 함께 작별이 시작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요
_'고백을 하고 만다린 주스' 중에서

고백을 한 순간, 허리를 숙여 구두끈을 고쳐매는 너를 보고 화자는 주절주절 되뇐다. 매일같이 머릿속에 어른거리는 너를 참다못해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지르듯 고백해버린 것이 아닐까. 고백을 해버리고 말았다, 라는 심정을 두고 “고백을 하고 만다린 주스” 하고 말장난으로 이어가버리는 화자는 귀엽게 자조한다.

“어제의 고백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심정”으로. 쌉싸름하게 코가 찡해지는 마음을 잊기 위해 만다린 주스를 마셔보지만 단맛도 “울적 울적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한없이 단맛을 부풀리며 우리를 감싸는 만다린 주스는 우리를 응원하며 “달콤 달콤 다시 부풀어오”를 것이다. “달콤 달콤 다시 차고 넘칠 때까지”, 너와 내가 만다린 주스를 마시며 그날을 회상하게 될 때까지.
이처럼 <아마도 아프리카>에는 달콤쌉싸름한 감정이 맞춤한 언어로 쓰여 있다. 완고한 당신을 두고 “당신은 완고한 완두콩”('완고한 완두콩')이라고 말해보면 막다른 곳에 다다른 막막한 마음이 물러지고, 마주치는 삭막한 것마다 “요롱요롱”('요롱이는 말한다')을 붙여본다면 심란한 세상이 뭉클해져, 안락하고 무탈히 하루를 보낸 것만 같다. 이 귀엽고 정다운 이름을 가진 존재들의 세계 속에서 나는 정처 없는 나를 의탁할 장소를 발견하고 조금은 포근해진다. 그러나 마음을 액화시키기에는 아직은 이르다. <아마도 아프리카> 속엔 시절과 너에게 건네는 처절한 안부들이 선연하기에.

“청춘은 다 고아지. 새벽이슬을 맞고 허공에 얼굴을 묻을 때 바람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지.”('발 없는 새') 마치 삶의 매 순간마다 이걸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는 듯이 반복되어 읊어지는 “청춘은 다 고아지.”

<아마도 아프리카>는 광활한 초원 같기도 우주 공간 속 같기도 한, 언어들이 폭넓게 내디뎌지는 세계다. 그곳은 어디도 아닌 동시에 모든 곳이기도 하므로, 그 안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감정은 어떤 우리들의 마음에도 곧장 침투하는 보편성을 띤다. 좌절과 다짐을 거듭하던 어린 시절을 나는 '발 없는 새'를 되뇌며 통과해왔다. “어디에도 소용없는 문장들이 쌓여만 가지. 위안 없는 사물들의 이름으로 시간을 견뎌내지.” 그렇게 깨닫게 된 것은 이제니의 언어가 무용을 직면하는 최대의 안간힘이었다는 것. 그 안간힘이 내게 가장 절절하게 다가온 시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을 나는 이 시집에서 가장 사랑한다.
헤어질 때 더 다정한 쪽이 덜 사랑한 사람이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나는 더 다정한 척을, 척을, 척을 했다. 더 다정한 척을 세 번도 넘게 했다. 안녕 잘 가요. 안녕 잘 가요.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는 말들일 뿐. 그래봤자 결국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
_'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 중에서

어떤 다정은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간절함의 소산일 수 있다. 하지만 다정을 뒤집어쓴 맨들맨들한 얼굴은 와닿는 것들을 모조리 미끄러뜨려 결국엔 겨우 자기 자신만을 지켜낼 수 있을 뿐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까끌까끌하게 달라붙는 말들이 아닐까. 말하고 쓰지 않으면 내 점성 가득한 심정을 네가 알 수는 없을 테니. 사실은 난 고작 다정한 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서로 엮이어 더 연루되기 위해서는 정중한 다정보다는 직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아직도 채 말하지 못한 심경들이 계속해서 쌓이고 있지만, 그것들을 씀으로써 가까스로 남길 수 있었다고. 네가 볼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