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흉물이 다 있나" 발칵…손가락질 받던 건물의 '대반전' [이선아의 걷다가 예술]

리처드 로저스 作
파리 퐁피두센터·여의도 파크원

건물 안팎 뒤집은 듯한 설계와
색색깔 칠한 파격 시도로 명성
내부공간 오롯이 사람에 내줘
혹평 뚫고 건축계 노벨상 수상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외관. 밖으로 노출된 에스컬레이터 밑에 빨간색 뼈대가 눈에 띈다.
1977년 프랑스 파리. 예술의 도시에 이제 막 새로 문을 연 미술관을 두고 파리지앵들은 혹평을 쏟아냈다.

“저런 흉물이 다 있나…. 아직 공사도 다 안 끝난 거 같은데, 저게 국립미술관이라고?”그럴 만했다. 건물 안에 있어야 할 철골, 배수관, 에스컬레이터까지 그대로 밖에 노출됐으니. 이렇게 손가락질을 받은 미술관은 훗날 파리의 대표 ‘랜드마크’가 된다. 바로 세계적 현대미술관 중 하나인 ‘퐁피두센터’다.

퐁피두센터를 가로지르는 빨간색 에스컬레이터를 보다 보면 서울 여의도 ‘파크원’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맞다. 두 개 건물 모두 2007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 리처드 로저스(1933~2021)의 작품이다.

난독증 왕따, 건축에 빠지다

리처드 로저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모더니즘 건축가, 하이테크 건축의 거장…. 로저스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화려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난독증에 걸린 탓에 열한 살이 다 되도록 글을 못 읽었다. 그랬던 그가 건축에 빠진 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다. 2년간 군대에서 복무하는 동안 유명 건축가인 사촌 어네스토 로저스와 가까워졌다. 어네스토와 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때 그를 괴롭혔던 난독증은 ‘기회’가 됐다. 로저스는 나중에 회고록에서 “난독증은 다른 길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전역하자마자 런던에 있는 영국 건축협회 건축학교로 향했다. 이후 예일대 건축대학원에도 합격해 ‘건축가의 길’을 걸었다.

‘빨간색 철골’, 공간을 혁신하다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세계에 알린 건 1971년이다. 38세의 나이에 680개 후보작을 당당히 제치고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함께 퐁피두센터 설계자로 당선된 것. 당시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이름을 딴 국가적 프로젝트에 ‘30대 젊은이’가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그는 파격적인 설계도를 들이밀었다. 건물 안에 숨겨져 있어야 할 철골과 배관을 밖으로 대놓고 꺼내놓은 것도 모자라 그 위에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을 입혔다. 어찌나 실험적이었던지, “미술관이 아니라 정유공장 같다” “내장이 튀어나온 것 같다” 등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건축계는 로저스의 작품을 높이 샀다. 그가 보여준 ‘실험정신’ 때문이었다. 그가 설계한 퐁피두센터를 보면 안과 밖이 뒤바뀐 듯하다. 보잘것없는 배관과 에스컬레이터를 밖으로 꺼내 미술관의 ‘시그니처’로 만들고, 그 대신 내부 공간을 오롯이 관람객이 쓸 수 있도록 했다.

배관과 에스컬레이터가 밖으로 나온 덕분에 관객들은 더 넓은 공간에서 쾌적하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퐁피두센터가 하루 수용할 수 있는 관람객은 총 8000명. ‘대중에게 열린 미술관’이란 퐁피두센터의 취지와 딱 맞는 설계안이었다.

거장의 유작이 된 ‘파크원’

여의도 파크원. 테두리에 둘러진 빨간색 철골은 단청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2020년 문을 연 여의도 파크원도 비슷하다. 모서리마다 강렬한 빨간색의 철골이 띠처럼 둘러져 있다. 파크원이 퐁피두센터처럼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던 이유다. 처음엔 “중국 자본이 투입돼 그 취향을 반영한 것” “(땅 주인인) 통일교 로고를 본떠 빨간색을 썼다”는 속설도 돌았다.

사실 로저스가 아이디어를 얻은 건 ‘단청’이었다. ‘붉은색의 단청이야말로 한국적 미를 가장 잘 나타낸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건축 거장이 여의도 시민에게 남긴 파크원은 아쉽게도 그의 유작이 됐다. 이 파크원을 마지막으로 로저스는 2021년 12월 88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온갖 욕을 다 먹으면서도 담대하게 로저스의 건축안을 채택한 퐁피두센터는 요즘 더현대서울 알트원에서 ‘기쁨의 화가’ 라울 뒤피 전시회를 열고 있다.

꼭 미술관에 가야만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출근길에 만나는 조형물, 업무차 들른 호텔에 걸린 그림, 아이 손을 잡고 찾은 백화점에 놓인 조각 중에는 유명 미술관의 한자리를 차지할 만큼 좋은 작품이 많습니다.

‘걷다가 예술’은 이렇게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을 찾아갑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연재기사를 놓치지 않고 받아볼 수 있습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