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라이칭더, 미국 경유해 귀국…美고위인사는 만나지 않은 듯

"대만 국력, 점점 더 강해져"…"中 군사압박 우려에 美항모 근접배치"
대만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차기 총통 후보인 라이칭더 대만 부총통이 미국을 경유한 파라과이 방문을 마치고 18일 귀국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라이 부총통은 이날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한 뒤 "여러분들의 노고 덕분에 대만의 국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대만이 선의의 세력이며 국제사회가 대만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차기 총통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라이 부총통은 차이잉원 총통의 특사 자격으로 유일한 남미 수교국인 파라과이의 산티아고 페냐 신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해 지난 12일 6박 7일 일정으로 출국했다.

출국길에는 미국 뉴욕을, 귀국길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 중국의 반발을 샀지만, 관심을 모았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또는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등 미 고위인사들과의 회동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라이 부총통은 미국 체류 기간 대만 교민사회에서 연설하고 주대만 미국대사관 격인 미국 재대만협회(AIT) 관계자들을 만났다.

로라 로젠버거 AIT 회장은 앞서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라이 부총통을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라이 부총통이 접촉한 미국의 장관급 인사로는 페냐 대통령 취임식에 함께 참석한 데브라 할런드 미 내무부 장관이 유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 역시 중국 측이 매우 민감해하는 미국 땅에서 이뤄진 만남은 아니었다.

하지만 라이 부총통은 파라과이와 미국 방문 기간 공세적인 메시지를 잇따라 발신했다.

그는 지난 13일(현지시간) 700여명이 모인 미국 뉴욕의 교민 오찬에서 "대만의 평화가 세계의 평화"라며 "많은 나라들이 대만을 지지하고 대만해협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대만은 독립국으로 중국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파라과이에서는 취재진에게 자신의 미국 경유를 이유로 중국이 군사적 조치를 한다면 그건 바로 선거 개입 시도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중국은 라이 부총통의 발언을 겨냥해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과 외교부, 주미대사관 등을 통해 '골칫거리 제조자' 등의 원색적인 표현으로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라이 부총통의 귀국일에 맞춰 남중국해에서 군사훈련을 예고하고 육해공군을 총동원한 실전에 가까운 훈련 영상도 공개하며 군사적 압박 수위를 고조시키고 있다.

국제사회는 중국이 한발 더 나아가 제3차 대만 봉쇄 군사훈련에 나설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8월 당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과 지난 4월 차이잉원 대만 총통·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의 회동을 이유로 사실상 대만 침공을 염두에 둔 군사훈련을 두 차례 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라이 부총통이 미국에서 고위 관리들을 만나지는 않은 데다 관계 개선 조짐이 나타나는 미·중 관계와 내년 1월 차기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반중 정서가 고조될 가능성 등을 고려해 중국의 군사적 압박은 저강도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럼에도 대만과 미국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군사적 대응 태세 강화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 언론들은 18일 미 해군연구소가 운영하는 군사전문매체 USNI뉴스를 인용, 미국이 라이 부총통의 미국을 경유하는 남미 방문으로 인한 대만해협 긴장 고조를 우려해 미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CVN-76)를 대만 동부 외해에 배치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미 해군은 통상 보안상의 이유로 항모의 위치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국 베이징대 싱크탱크 남중국해전략태세감지계획(SCSPI)도 지난 11일 미 항모에서 운용하는 수송기 'C-2A 그레이하운드'의 항적을 근거로 레이건호가 대만 동남쪽 필리핀 해역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USNI뉴스는 지난 14일 레이건호가 대만 동부 지역과 멀지 않은 필리핀 해역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로널드 레이건호는 유도미사일 순양함 챈슬러스빌(CG-62)과 앤티텀(CG-54),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 라파엘 페랄타(DDG-115) 등으로 미 제5항모강습단을 구성하는데 버지니아급 핵추진 잠수함 노스캐롤라이나호(SSN-777)의 호위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 항모강습단이 대만 인근 해역에 나타난 것은 지난 4월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의 미국 회동 때가 가장 최근이었다.
한편 대만매체들은 대만군이 전날 오전 6시 20분부터 30여분 간 국책 방산연구소인 국가중산과학연구원(NCSIST)의 주펑 기지에서 '대만판 사드'로 불리는 톈궁(天弓)3 고고도 대공 미사일과 톈궁2 중거리 대공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보도했다. 대만은 유사시 중국의 공습에 대비해 톈궁3과 더불어 미국산 패트리엇 대공 미사일, 톈궁2 중거리 대공 미사일, 단거리 대공포, GPS 간섭 시스템 등을 동원한 다층 대공 방어망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