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인조인간…매큐언의 문제작 '나 같은 기계들'

영국 일급작가 이언 매큐언의 첫 SF 소설
'무엇이 인간을 인공지능과 구별되게 하나' 윤리적 질문 집요하게 제기
1982년 런던. 작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주식과 외환거래로 생계를 유지하며 되는대로 살아가던 찰리는 어머니의 유산으로 목돈을 손에 쥔다. 그 돈으로 먼저 찰리가 한 일은 마침 시장에 출시된 인류 최초의 인조인간 아담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매끄러운 피부에 따뜻한 체온, 스피커가 아닌 인간의 구강구조와 똑같은 기관을 통해 나오는 목소리에 신체 내부의 점막까지, 인간과 구분이 어려울 만큼 완성도가 높은 남자 인조인간 아담은 인간 여성과 섹스도 가능한 로봇이다.

작동을 시작하자 아담은 자신의 알몸을 가릴 옷을 요구하고, 찰리에게 요리법까지 제안하며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인간의 삶 속으로 점차 들어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런 아담의 모습에 찰리는 호기심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부커상을 받은 영국의 일급 작가 이언 매큐언의 신작 '나 같은 기계들'(문학동네)은 과학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가상의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인류 최초의 인조인간을 둘러싼 이야기다.

"우리 앞에 궁극의 장난감, 모든 시대의 꿈, 인본주의의 승리―혹은 그 죽음의 천사―가 앉아 있었다. "(16쪽)
등장인물 '미란다'의 표현으로 '보스포루스 해협의 어느 부두 노동자'를 닮은 이 아담은 그러나 '궁극의 장난감'에서 점차 '죽음의 천사'처럼 인간의 삶에 위협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급기야 인조인간 아담은 찰리의 애인이 된 이웃 여자 미란다와 잠자리까지 갖게 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됐다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현실사회에 예민한 안테나를 세우고 당대의 사회 문제들을 소설로 탁월하게 형상화해온 매큐언은 이 작품에서도 '무엇이 인간을 기계와 구별되게 하는가'라는 곧 인류가 직면할 윤리적 딜레마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인간과 구별이 어려울 만큼 고도로 발달한 인조인간과 그를 대하는 두 젊은 남녀의 불안과 갈등을 매큐언은 '스토리텔링의 장인'이라는 명성대로 예측 불허의 방향으로 솜씨 좋게 끌고 가가며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우리의 목표는 완벽한 자신을 통해 필멸성에서 벗어나 신에게 맞서거나 심지어 신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중략) 우리는 개선된 형태의 더 현대적인 자신을 고안하여 발명의 기쁨, 지배의 전율을 만끽할 작정이었다.

"(11쪽)
창조주의 역할을 통해 지배의 기쁨을 누리려는 인간들은 그러나 이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결점마저 극복한 '완벽한' 피조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과연 인간은 인조인간을 자신들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을 자격이나 있을까.

윤리적 딜레마에 봉착한 인간들의 혼란스러운 모습의 배경으로 작가는 대체 역사를 등장시켜 더욱 그럴듯한 외양을 부여한다.

'컴퓨터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실존 인물 앨런 튜링(1912~1954)이 그 중심에 있다.

동성애자였던 튜링은 실제로는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던 1950년대에 외설 혐의로 고발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소설 속에선 죽지 않고 연구를 이어가 인공지능의 혁신을 이끈 인물로 나온다.
작품 속에서 인류는 튜링의 계속되는 연구 성공으로 1980년대 초반에 이미 최초의 고도로 발전된 인조인간의 상용화를 이뤄낸다.

주인공 '찰리'가 인조인간 모델 '아담'을 구입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튜링이 이 모델을 인도받았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나온다.

이외에도 매큐언은 포클랜드 전쟁, 존 F. 케네디 암살 등 당대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조금씩 비틀어서 작품 속으로 갖고 들어와 소설의 완성도를 높였다.

다소 결은 다르지만, 인공지능을 다룬 다른 영국 소설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2021)이 있다.

기술 진화에 따라 양산된 복제인간을 등장시켜 인간의 존엄성 문제를 건드린 '나를 보내지마'(2005) 역시 이시구로의 작품이다.

'나 같은 기계들'은 이시구로와 함께 현대 영국 문학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매큐언의 열다섯번째 장편소설로, 그가 처음 쓴 SF(Science Fiction) 작품이다.

부커상 수상자인 매큐언이나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시구로의 사례처럼, 기존에 장르 소설과 구분되던 소위 '순수문학' 또는 '본격문학'에도 이처럼 SF적 요소들이 적극적으로 들어오는 건 첨단기술의 진화에 문학도 적응해가며 진화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문학동네. 민승남 옮김. 460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