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에 등장한 배우 강혜정 "새장 속에 사람들 위로하고 싶어"

첫 산문집 펴고 기자간담회 열어


강혜정 지음

272쪽│1만6800원
"성공 위에서 포효하는 시간은 '완벽'보단 '결함'이 지배적이었다. 나는… 빈 껍데기와도 같았다."

강혜정(41)은 최근 내놓은 책에서 지난 25년간의 배우 인생을 이렇게 돌아본다. 첫 산문집 <반은 미치고 반은 행복했으면>을 펴낸 그는 21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배우로 살면서 새장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며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며 출간 이유를 설명했다. 책은 무수한 타인을 연기하는 '배우 강혜정'이 아닌 '사람 강혜정'으로서 느낀 바를 담은 짧은 글 60편을 엮었다. 한두 마디 문장으로 이뤄진 시부터 꿈속 화자를 내세운 소설까지 다양한 글이 담겼다. 이날 '작가'로 간담회에 참석한 강혜정은 "지난 6년간 휴대폰에 적은 일기 같은 글귀를 모았다"며 "책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는 게 처음이라 두려움 반 설렘 반"이라고 수줍게 웃었다.
강혜정은 이번에 약 6년간의 공백기를 딛고 작가로 돌아왔다. 16세에 드라마 ‘은실이’(1998)로 데뷔한 뒤 ‘올드보이’(2003)와 ‘웰컴 투 동막골’(2005) 등을 연이어 흥행시켰지만, 2018년부터는 뚜렷한 작품활동이 없었다. 그는 "타블로의 아내이자 하루의 어머니로서 보낸 시간이었다"며 "아이가 건강히 자라난 모습을 보고 난 뒤 이제야 책을 쓸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이번 책에서 그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새장'으로 규정했다. 이른 나이부터 배우로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했지만, 좁은 공간에 갇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온 경험을 일상적인 문체로 그려냈다. 책에 수록된 산문들은 강혜정이 겪어온 스트레스를 풀어냈다. 공항에서 다가온 어린 팬에게 "그냥 막 사진 찍지 마세요"라며 짜증을 부리기도 하고, "쌀과 김치, 고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이 생겨날 정도"로 예민해졌다. 그는 "모든 것을 바칠 각오로 '스타트라인'에 섰지만, 이제는 어쩌면 스타트라인에 서 있을 용기가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회상했다.
강혜정은 '이름 모를 이들이 건네는 말'들에서 힘을 얻었다고 했다. "'은실이'에서 악역 '영채' 역을 맡았을 당시, 동네 아주머니로부터 "은실이 너무 괴롭히지 마라"며 연기에 대한 칭찬을 들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누군가 건넨 말에 의해 새장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머릿속에 떠돌아다니는 말풍선을 모은 책입니다. 제가 건넨 말들이 스스로 외톨이라고 느끼는 독자분들의 새장을 조금이라도 열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라는 게 없을 것 같아요."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배우 활동의 공백기는 있었지만, 가정이나 집필활동에 몰두해온 저의 인생에는 공백기가 없었다"며 "앞으로 꽂히는 작품, 해내고 싶은 작품을 만나면 다시 과감히 뛰어들 것"이라고 답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