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다가 냄새 난다고 쫓겨났죠"…하수구 청소부의 한숨 [권용훈의 직업 불만족(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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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구 청소 8시간 … 일당 15만원
장마철 쌓인 퇴적물 직접 청소해
아파트선 "냄새 난다" 신고받기도
남들 안 하는 일하는 데 자부심 느껴
지난 25일 오전 8시 서울 강남구의 한 골목길. 직경 60cm의 맨홀 뚜껑을 열고 검은색 작업복을 입은 인부가 주저 없이 내려간다. 그는 "하수관 바닥에 쌓여있는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는 말을 하고 4시간이 지나서야 점심을 먹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왔다.▷간단히 자신을 소개하자면.
안녕하세요. 올해로 3년째 하수구로 출근하고 있는 30대 남성입니다.
▷어떤 일을 하나요.
장마 때면 하수도에 각종 오물이 쓸려 내려오다가 한곳에 적체됩니다. 성인 남성 허리 높이까지도 올라올 때도 있습니다. 오물이 계속 쌓이면 물이 내려가는 것을 막으니까 그걸 치워주는 게 제가 하는 하수도 준설 작업입니다.▷오물은 어떻게 치우나요.
집 청소하는 방식이랑 비슷해요. 빗자루로 쓸듯이 삽을 이용해 쓰레기를 구석으로 모아요. 그 다음 지상에 연결된 진공 호스로 빨아들이면 됩니다.
▷하수도 안이 엄청 좁아보여요.
오래된 하수도일수록 좁고 높이가 낮아요. 긴 시간 동안 허리를 숙이고 일할 수밖에 없죠. 저처럼 키가 작을수록 일하는 데 유리하긴 합니다 (하하).▷하수구 뚜껑 위에 주차하는 차량이 많지 않나요.
오늘도 하수구를 막고 있는 불법 주차 차량을 빼느라고 몇 시간 동안 작업을 못 했어요. 하수구 청소 작업을 위해 전날에 주차금지 표지판을 세워도 그걸 치우고 불법 주차하는 사람도 많죠. 좁은 주택가에선 주차난이 너무 심각하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어떤 쓰레기가 많나요.
주택가 화장실 물이 모이는 오수관에만 쓰레기가 많은 게 아닙니다. 빗물이 모이는 통로인 하수관에도 별의별 쓰레기가 다 나와요. 주택가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다 나온다고 보면 됩니다. 그중에선 담배꽁초가 가장 많고요.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이 너무 안 돼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문득 요즘 젊은 친구들이 피하는 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업체 사장님도 제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안 받으려고 했어요. 무슨 일이든 해보고 싶어서 직접 찾아뵙고 매달렸죠 (웃음). 모두가 피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출근하고 있어요.
▷건축학을 전공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지방에 있는 국립대를 졸업했어요. 공부를 썩 잘하진 못했죠. 입학할 때 꿈은 건축기사였어요. 하지만 취업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매번 명절에 가족들이 모일 때면 취업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그때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월급은 얼마나 받나요.
월급은 일당 15만원을 받아요. 여기에 경력이 있으면 더 주는 방식입니다.
▷위험한 순간은 없었나요.
상류 쪽에서 조금이라도 비가 내리면 굉장히 위험해요. 하수구에 빗물이 모여서 엄청나게 빠른 물이 순식간에 하수구로 내려옵니다. 그때 빨리 지상으로 피하지 못하면 하류까지 휩쓸려 내려가요. 제 동료 중 한 분도 작업하다가 급류를 못 피해 한강까지 휩쓸려간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뭔가요.
작년 서울 방배동 인근 아파트에서 하수구를 청소할 때 였어요. 오전 작업을 마치고 공원 벤치에서 점심을 먹는데 주민들이 손가락질 하면서 지나가더라고요. 10분 뒤에는 경찰까지 왔어요. 작업복에서 하수구 냄새가 나니까 다른 장소에서 밥을 먹어달라고 했습니다. 출동한 경찰관도 어쩔 줄 몰라하는데 무시하고 밥 먹기도 죄송했죠. 그때가 가장 서럽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도 세부 작업은 사람이 하고 있어요. 누군가의 책임 의식 없는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된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요.
#직업 불만족(族) 편집자주
꿈의 직장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에서도 매년 이직자들이 쏟아집니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대(大) 이직 시대'입니다. [직업 불만족(族)]은 최대한 많은 직업 이야기를 다소 주관적이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게 담아내고자 합니다. 이색 직장과 만족하는 직업도 끄집어낼 예정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직장 생활하는 그날까지 연재합니다. 아래 구독 버튼을 누르시면 직접 보고 들은 현직자 이야기를 생생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많은 인터뷰 요청·제보 바랍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