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은 몰라도 마지막 문장은 모두가 아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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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구은서의 이유 있는 고전실존인물만큼 유명한 소설 속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돈키호테'로 불린다면, 우리는 그가 현실보다는 꿈속에서 산다는 걸 짐작할 수 있죠. '햄릿형 인간'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고민이 깊어 쉽게 결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고요.
마거릿 미첼의
'스칼렛 오하라'는 오만방자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미녀의 대명사입니다. 그녀는 미국 소설가 마거릿 미첼의 장편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이에요. 배우 비비안 리가 1957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에서 스칼렛 역할을 맡아 큰 인기를 끌었죠. 최근 방영 중인 사극 드라마 '연인' 속 당찬 성격의 여자주인공을 두고 "유길채(안은진 분)는 조선의 스칼렛 오하라"라는 평이 나오곤 해요. 드라마 극본을 쓴 황진영 작가가 실제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죠.
그런데 미국에서 이 책의 첫 장에 최근 이런 경고문구가 들어갔습니다. "이 작품에는 인종차별적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작품이 흑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흑인노예 해방을 반대했던 미국 남부군을 일방적으로 두둔한다는 거죠.
한쪽에서는 '더 이상 읽혀서는 안 되는 작품'이라고 비판하는데, 또 한 쪽에서는 이 작품이 잊혀질까봐 두려워해요. OTT 서비스에서 인종차별을 이유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서비스를 중단하자 '다시는 이 영화를 못 볼까봐' 걱정한 팬들이 DVD를 사재기하기도 했어요.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그럴까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로맨스 소설이자 반전(反戰) 소설, 성장 소설입니다. 미국 남북전쟁이라는 비극적 시기를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어요.
16살 스칼렛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여성입니다. 그녀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죠.
"그녀는 자기가 대화의 가장 중요한 화제가 되지 않으면 어떤 얘기도 오래참고 견딜 줄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하면서도 그녀는 의식적으로 보조개가 깊이 파이도록 미소를 짓고는, 빳빳하고 검은 속눈썹을 나비의 날개처럼 빠르게 파르르 떨었다. 의도했던 대로 청년들은 그녀에게 매료되어, 지루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서둘러 사과했다."
그녀의 집안은 대규모 목화농사를 지어요. 조지아주의 타라라는 대농장에서 100명이 넘는 흑인노예을 거느리고 있는 부호입니다. 흑인노예 해방을 두고 미국이 남북으로 맞붙은 전쟁은 타라농장에도 큰 변수일 텐데, 스칼렛에게 전쟁 얘기는 따분할 뿐이에요. 그녀의 관심사는 애슐리 윌크스라는 남자. 애슐리가 자기가 아닌 멜라니와 결혼한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죠. 스칼렛은 아무도 없는 서재에 애슐리를 불러들여 고백했다가 거절당해요. 그런데 이 굴욕의 순간을 제3의 인물에게 들켜요. 서재 구석에서 레트 버틀러라는 남자가 쉬고 있었던 거예요. 이때부터 스칼렛과 레트의 애증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소설은 스칼렛이 사랑과 전쟁을 겪으며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립니다. 철부지였던 그녀는 점차 자립심을 가진 여성으로 성장해요. 전쟁의 비극, 여성의 주체성 같은 묵직한 주제가 사랑 이야기에 녹아있죠.
작품에서 스칼렛은 총 세 번의 결혼을 합니다. 먼저, 애슐리에게 거절당한 뒤 홧김에 멜라니의 친오빠 찰스와 결혼해요. 찰스가 전사하자 애틀란타로 떠났다가 북부군에 쫓겨 타라로 돌아오는데,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쑥대밭이 된 농장이에요. 아버지는 병들었고 흑인노예들은 대부분이 도망가버렸어요. 하루 아침에 가장이 돼버린 스칼렛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고생을 겪습니다. 재산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프랭크를 친동생으로부터 빼앗아 결혼하기도 하는데, 프랭크는 흑인들과 싸우다가 세상을 떠나요. 스칼렛은 직접 제재소를 운영하며 노예제 이후 세상을 지배하게 된 자본주의의 전선에서 고군분투합니다.
결국 스칼렛은 오랫동안 그녀를 맴돌던 레트와 결혼하지만, 애슐리에 대한 마음을 포기하지 못해요. 두 사람의 사이가 틀어진 와중에 딸 보니가 말을 타다가 낙마해 죽고 말았어요. 스칼렛이 뒤늦게 레트에 대한 사랑을 깨달으면서 작품이 마무리됩니다. 보통 고전의 첫 문장이 유명한 것과 달리, 마지막 문장이 유명한 소설입니다. 소설은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라는 문장으로 끝나죠. 이를 한국어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옮긴 건 번역자의 해석이 지나치게 개입한 것이라는 말도 있고,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는 일본어 속담을 참고했다는 설도 있어요.
작가 마거릿 미첼이 쓴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입니다. 신문기자 출신이었던 미첼은 다리 수술을 받은 뒤 한동안 집에 머무는 신세가 됐어요. 그녀를 위해 남편이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줬는데, "도서관에 더 이상 당신이 읽을 책이 남아 있지 않으니 이제 당신이 책을 써봐" 남편의 말에 직접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불후의 명작'은 하마터면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어요.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다 신인 작가의 작품이라 처음에는 출판사들이 출간을 꺼렸어요. 미첼은 애틀란타를 방문한 대형 출판사 사장을 찾아가 원고를 안겼고 첫 페이지라도 읽어달라 부탁했어요. 이야기에 빠져든 출판사 사장은 이 작품을 1936년 출판했고 이듬해 미첼은 퓰리처상을 수상했어요. 인종차별적 작품이라는 매서운 비판을 받으면서도, 쉽사리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소설입니다. 매력적인 이야기는 때로 무서울 정도로 강인한 생명력을 지닙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 작가는 이 책의 해설에서 "같은 해 출판된 포크너의 <압살롬, 압살롬!>과의 경쟁에서 결국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사상'과 '이야기'의 싸움에서 '이야기'가 승리했다는 의미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