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연 칼럼] 보조금 모럴해저드에 '신용 처벌'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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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자본 깨는 보조금 체리피커고용시장의 모럴해저드를 조장하는 실업급여 개혁이 ‘달콤한 시럽 급여’라는 정치인의 실언 한마디에 동력을 잃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 직장에서 해고와 재취업을 반복하며 실업급여를 받은 사례까지 있다고 한다. 이런 일로 인해 급여 재원인 고용보험기금은 파탄 지경이다. 이처럼 ‘눈먼 돈’을 제 돈처럼 빼먹는 보조금 체리피커(혜택만 빼먹는 소비자)의 일탈 행위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
신용 제재로 예방 효과 높일 때
유병연 논설위원
보조금은 예산 외에 국가에서 특정 목적을 위해 관리·지원하는 돈이다. 정부가 일정 요건을 갖춘 개인과 사업자에게 급여형으로 지급하거나 민간단체에 사업비 일부를 보조한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59조원에서 2021년 98조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00조원을 넘어섰다. 현재 국가보조금 사업은 정부 주도 1000여 개, 지방자치단체 주도 1만6000여 개와 공공기관의 개별 사업을 포함하면 2만여 개로 추산된다. 개인이 발품만 팔면 받을 수 있는 보조금만 수십 가지다.세금에 비해 관리가 소홀한 탓에 ‘먼저 받아 챙기는 게 임자’가 돼버린 지 오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접수한 보조금 부정수급 신고 건수는 2016년 593건에서 2021년 1598건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소득과 재산을 숨기고 기초생활보장 지원금을 받는 일은 다반사다. 한 화물차 기사는 운전 사업을 그만둔 뒤에도 200차례에 걸쳐 유가 보조금 1800만원을 부정하게 타내다가 꼬리가 잡혔다. 위장 이혼 후 배우자와 세대를 분리하는 방법으로 소득을 축소해 주거급여를 부당하게 받은 사례도 있다. 이마저도 빙산의 일각이다.
이런 체리피커의 모럴해저드는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병원을 돌아다니는 ‘의료 쇼핑’ 환자와 이를 부추기는 의료기관도 빼놓을 수 없다. 2021년 1년간 병원에 500번 넘게 간 사람만 532명이었다. 150번 이상 간 사람은 18만9224명에 달했다. 심지어 연간 3000회 이상 외래진료를 받은 20대도 있다. 건강보험 재정이 급속히 바닥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사회적 모럴해저드로 인한 재정 누수 현상은 위험 수위다. 실업급여 부정수급만 해도 고용법에 따라 최고 징역 3년 또는 벌금 3000만원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사회·경제 정책적 목적으로 지급되는 보조금 특성상 내용이 포괄적이고 불투명한 이유도 있지만 보조금 부정행위가 일반 사기에 비해 가볍게 평가돼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친 탓이 크다. 눈속임으로 보조금을 타낸 개인은 집행유예, 조직적 공모인 경우에도 벌금형이 대부분이다. 벌금 액수도 부정한 방법으로 받아 간 돈의 절반에 못 미치는 사례가 많다.형법에 보조금사기죄를 신설하고 ‘사법적 철퇴’를 가하자는 주장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형평성과 법 감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대안으로 ‘신용 처벌’을 고려해볼 만하다. 신용 점수를 대폭 깎아 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제재 방식이다. 이 점수가 누적돼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대출 금리가 오르고,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카드 이용이나 대출이 막히고 전세 등 각종 계약까지 어려워진다.
징역 금고 등 자유형이나 벌금 등 경제형은 산업화 시대의 처벌법이다. 지금은 신용 사회다. 휴대폰 요금만 연체해도 신용도에 불이익을 받는다. 사회적 신뢰를 깨는 각종 모럴해저드 행위에 대한 처벌 방법으로 자유형이나 경제형 외에 신용형을 적극 활용해볼 필요가 있다. 시장에 의한 자율적 제재인 데다 솜방망이 형사 처벌보다 예방에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