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강화하는 제약·바이오…대형 병원도 동참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와 대형 병원들이 ESG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병원은 산업계 못지않게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어 탄소 감축을 요구받고 있다. 글로벌 보험사의 ESG 관련 요구도 늘고 있어 ESG 전반에 대한 개선에 나서고 있다
[한경ESG] ESG Now
국내 제약·바이오업계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하고, 친환경위원회를 꾸리는 등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후변화로 신종 감염병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만큼 병원, 바이오, 제약사 할 것 없이 ESG를 강조하는 모습이다.병원은 전기, 가스 등 에너지 사용량이 많고 주삿바늘과 혈액 보관 용기 등 생의학 폐기물이 지속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산업계 못지않게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국가온실가스종합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환경부 소관 병원 5곳(서울대병원, 아주대의료원 등)에서 1년간 배출한 온실가스양은 43만8842tCO2eq다. 같은 기간 국토교통부 관장 기관인 건설사 4곳(대우건설, GS건설 등)이 배출한 양인 28만3625tCO2eq의 1.5배를 웃돈다. 이에 제약·바이오업계 내·외부적으로 ‘병원도 ESG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제 의료사업을 할 때 해당 국가 혹은 글로벌 보험사에서 ESG 관련 요구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해외 유수 병원에서는 이미 ESG가 자리 잡아가는 추세다. 세계 ‘톱 10’에 드는 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은 2027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으며, 2030년까지 모든 폐기물을 비유해성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의료기관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병원의 ESG는 ‘치료 잘하는 병원’에서 ‘사회적책임을 다하는 병원’으로 의미를 확장하는 데 있다. ESG에 동참한 국내 병원이 환경(E)뿐 아니라 사회(S) 영역에도 힘을 주는 이유다.이달 첫 번째 ESG 보고서를 발간한 삼성서울병원은 친환경적이면서 안전하고 공정한 병원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피 묻은 솜과 거즈, 붕대 등을 태울 때는 일반 쓰레기보다 많은 양의 탄소가 배출되는 만큼 45개 모든 병동에서 분리배출을 시행하고 있다. 의료진이 회진할 때 종이 대신 태블릿으로 환자 정보를 확인하고 수질오염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삼성서울병원은 간호사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간호사 퇴사율을 줄이고, 환자에게 숙련된 의료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승우 삼성서울병원장은 “간호사 유연근무제는 안전한 근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혁신적 제도”라며 “보건복지부 시범 사업으로 채택된 후 전국 주요 병원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를 따르는 대신 의료계 시각으로 ESG를 해석해 전략을 짠 병원도 있다. 고려대의료원은 국내 의료기관 최초로 국제 가이드라인 등 기존 ESG 지표를 분석해 병원 실정에 맞는 ‘고려대의료원 ESG 관리 지표’를 개발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저개발 국가에 의료 기술을 전수하는 ‘아산 인 아시아 프로젝트’로 사회 공헌에 힘쓰고 있다.

셀트리온·삼성바이오로직스도 ESG ‘열중’
제약·바이오 기업도 ESG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지난 3월 경영 일선에 복귀한 직후 “올해는 ESG 등급을 상향해 다른 대기업에 비해 저평가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 6월 셀트리온은 자체 ESG 진단 종합지표, ESG 현황과 개선점, 투명경영 강화 방안 등 내용이 담긴 창사 이후 첫 번째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부터 최고재무책임자(CFO) 주도로 여는 ‘에너지·기후위원회’를 기존 연 1회에서 2회로 확대하기로 했다.

다만 매년 늘어나는 온실가스배출량은 변수다. 국내 바이오 1·2위 기업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의 지난해 온실가스배출량은 전년 대비 나란히 증가했다. 생산능력을 높이기 위해 공장을 적극적으로 증설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사업 확장 과정에서 배출량이 늘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대신 기업들은 업무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고 저탄소 보일러를 도입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삼성바이오로직스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사업장에서 배출한 온실가스양은 16만3993tCO2eq다. 전년(13만867tCO2eq) 대비 25%가량 증가한 수치다. 올해 첫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한 셀트리온 역시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5만6518tCO2eq로 전년 대비 3%가량 늘어났다. 글로벌 바이오산업 후발 주자인 국내 기업은 최근 생산시설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탄소배출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로 평가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30년까지 생산능력을 지금의 2배인 132만L로 늘릴 계획이다. 인천 송도에 추가로 지어야 하는 공장만 4개다. 2030년 예상 온실가스배출량은 30만tCO2eq를 넘는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회사에서 벗어나 신약 개발사로 탈바꿈하고 있다. 의약품을 생산하기 위해 각종 화학물질을 결합하다 보면 제조공정에서 가스 직접배출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 2023 ESG 리포트. 사진 제공 :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은 당장 줄일 수 있는 간접배출(전력량)부터 우선 감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연말까지 공장 내 보일러를 기존 보일러보다 액화천연가스(LNG) 사용 효율이 6%가량 높은 ‘저탄소 보일러’로 교체할 계획이다. 4공장 옥상에는 300kW 규모의 태양광발전 설비를 설치했다.

제약·바이오업계 특성상 외부에서 원재료를 들여오는 과정에서도 온실가스가 다량 배출된다. 원부자재 공급사 전체에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는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전체 공급망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을 2050년까지 100% 감축하는 것이 목표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신규 발주한 업무용 차량의 절반 이상을 전기차 등 친환경차로 채웠다.업계는 환경(S)뿐 아니라 지배구조(G) 개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종근당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창사 82년 만에 첫 여성 사내이사를 선임했다. ESG 경영을 위한 이사회의 다양성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HK이노엔은 이사회 내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설치하는 안건을 주총에서 통과시켰고, GC셀은 지난 4월 부패방지경영시스템 국제표준인 ‘ISO 37001’을 획득했다.

남정민 한국경제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