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욕망을 전시하는 SNS…화가들이 포착한 인스타의 단상들 [전시 리뷰]

금호미술관 전시 '다중시선'
송승은, 다중시선, 2023.

초등학생부터 7080까지, 이제 현대인에게 휴대폰과 소셜 미디어(SNS)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단순 편리하게 정보를 얻고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서 디지털은 인간에게 일상 그 자체가 됐다. 개인들은 삶의 대부분을 '비대면 시스템'에 의존하게 됐으며, 가끔은 SNS 속의 모습을 위해 자신을 꾸며내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이곤 한다.이런 현대인의 이중적인 모습을 작품 속에 그대로 담아낸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삼청동에서 열리고 있다. 금호미술관에서 진행되는 '다중시선' 전시에서는 동시대 작가 8명 박혜수, 송승은, 양승원, 유용선, 이지연, 정고요나, 정아람, 그리고 함미나가 각자의 시각으로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그려냈다.

특히 SNS와 그 안에 담긴 욕망, 인간의 고독과 상실을 주제로 내세운 작품들을 내세운 게 특징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작업한 신작이다. 금호미술관은 키아프 프리즈 기간이 있는 하반기를 장식하는 첫 전시로 어렵고 난해한 작가 대신 현대 시대와 오늘날의 인간들을 가장 쉽고 가깝게 이야기하는 젊은 얼굴들을 꼽아 전시를 열었다.
유용선 전시 전경.3층 전시관에 작품을 내건 젊은 작가 유용선은 자신의 그림을 다양한 브랜드들의 로고, 음식, 그리고 캐릭터들로 가득 채웠다. 스포츠 브랜부터, 고급 주류 브랜드, 도너츠 박스까지 현대인의 삶에 가까운 물건과 음식들이 난잡하고 어지럽게 캔버스를 채웠다.
유용선 샌드위치들, 2023.
유 작가는 정물화에 재치있는 캐릭터를 더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정물화와 SNS는 갖고 싶거나 가진 것들을 나열하며 현재의 욕망 욕구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닮은 구석이 많다고 느꼈다고 한다. 특히 유용선은 이번 전시에 내놓은 작품들에서 '요리'를 가장 주요한 소재로 사용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유 작가는 "음식을 만들고 먹는 행위만큼 욕망에 가까운 행위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정고요나 전시 전경.SNS를 차용해 캔버스에 옮겨온 작가도 있다. 정고요나다. 2층 그의 전시 공간은 마치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을 그대로 가져온 듯 꾸며졌다. 그는 온라인에서의 관계와 사진 속 모습에 집착하는 현대인과 자신에게 주목해 작업을 시작했다.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전혀 모르는 타인의 하루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SNS에서 채집한 사진들을 작품 속에 그대로 옮겼다.
정고요나 전시 전경.
특히 그의 작품엔 '셀카'를 차용한 것이 많다. 현장에서 그는 "사람과 온라인의 모든 것이 셀카에 담겨있다고 생각했다"며 "사람들은 모르는 카메라에 자신이 담기는 건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온라인에 자신을 찍어 전시하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고 작업 의도를 설명했다.

이에 더해 그는 맨얼굴 대신 누군가의 포토샵과 수정을 거친 보정된 얼굴들과 이미지가 자신이 원하는 아이러니한 페르소나라고도 강조했다. SNS에서는 아무도 사람의 '진짜 얼굴'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소통과 관계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작품으로 풀어낸 작가들도 눈에 띈다. 먼저 송승은은 관계 속 감정의 충돌과 긴장감을 추상화로 그려냈다. 기대했다 실망하거나, 또 솔직하고 싶었지만 거짓말로 자신을 숨겼던 이질적 충돌을 추상적인 그림으로 표현했다.
송승은, 내일의 일기예보, 2023.
그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차용해 이미지를 활용하는 작가다. 이번에 내놓은 신작엔 영화 <피노키오>의 스틸컷을 이용했다. 모든 스틸컷을 한 장 한 장 인쇄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조각을 낸 후 그것을 이어붙이고 연결해 새로운 형태로 작품을 창조해 낸 것. 이 작업 방식은 어려운데다 일반 추상화 드로잉보다 시간도 몇 배나 오래 걸린다.

하지만 송 작가는 계속 이 방식을 택했다. 스스로 계속 비슷한 이미지만 그린다는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예전 그림을 보면 계속 비슷한 것만 그렸다"며 "테이블, 사람, 어항처럼 쓰던 이미지만 사용한다고 깨달았다고 느낀 순간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혜수, 토론극장, 2022-2023.
박혜수와 한미나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함께 주제를 공유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현대인의 고독과 상실, 그리고 아이들의 슬픔과 아픔을 내세운 작품을 선보인다. 박혜수 작가는 은둔형 외톨이와 그들의 가족을 주제로 연극 워크숍을 진행하고, 그 장면을 영상으로 만들어 작품 '토론극장'을 전시했다. 이 작품을 통해 박 작가는 개인의 고독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만든 문제임을 드러낸다.

지하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설치작업. 커튼이 달려 있는 1인 독서실 같은 공간엔 관람객이 직접 앉아볼 수 있다. 의자에 앉으면 뒷쪽으로 커튼을 쳐 고독하게 있을 수 있지만, 앞에 달린 창문을 열면 다른 이들의 첫사랑이 담긴 장면을 볼 수 있다. 이 작업으로 그는 은둔하고 싶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싶어하는 인간의 이중적인 마음을 표현했다.
한미나, 잠영, 2023.

함께 작업한 한미나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작업에 쏟았다. 그는 4세부터 6세 때까지의 기억이 없는 작가다. 어릴 적 유괴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트라우마로 인해 지워진 그 시절의 기억에 대해 항상 궁금증을 품고 살았다. 이번 전시에서 한 작가는 그 궁금증을 회화로 그려냈다.

기억을 지우기 위해 '깊은 잠'을 택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작품으로 차용했다. 그의 작품에는 어린 아이들이 등장한다.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의 가상 세계 속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그는 잠든 아이들을 통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상처 극복의 메시지를 관객에 전달한다.동시대 작가들의 전시라는 특성상 어려운 작품이 많지 않다. 3층 규모의 넓은 전시장을 전부 사용해 관람하기도 편하다. 한편 SNS와 디지털 세상 속 인간에 은근히 비판적 시선을 건네는 전시이지만 동시에 '인스타그래머블'하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금호미술관 다중시선 전시는 10월 22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