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가 달렸나...73세 피아니스트 소콜로프의 손은 빠르고 정확했다

7월 콜마르 페스티벌서 퍼셀과 모차르트 연주
빠른 템포에 정확한 연주로 젊은 사운드 만들어
그리고리-소콜로프
그리고리 소콜로프는 은둔자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비행기를 타지 않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 등에 온 적이 없다. 몇 년 전에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유는 오케스트라와 2~3번 맞추고 협연하는 것은 독주회와는 달리 원하는 예술적 완성도를 이룰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젊은 시절에는 종종 녹음하던 스튜디오 레코딩도 전혀 하지 않는다. 아예 레코딩 자체를 하지 않은 적도 있었지만 도이치 그라모폰과 계약하면서 라이브 연주 레코딩은 발표하기로 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연주한 그의 연주들을 들을 수가 있다.(감사하게도 ^^) 소콜로프는 그래서 연주하는 곳도 기차나 차로 갈 수 있는 유럽에 국한되어 있으며 스페인 국적인 그는 현재 이탈리아에 살고 있다. 소콜로프가 매년 꼭 참석하는 음악회가 있는데 여름에 열리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프랑스 콜마르(Colmar) 페스티벌이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매년 초청하는 피아니스트들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 피에르 로랑 에마르, 이고르 레빗, 예브게니 키신, 알렉상드르 캉토로프, 안드라스 쉬프, 아르카디 볼로도스, 우치다 미츠코 그리고 소콜로프까지 톱 중에 톱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알사스 지방의 아름다운 소도시 콜마르에서 열리는 국제페스티벌이다.
콜마르 페스티벌
1994년 뉴욕타임즈 선정 유럽의 10대 베스트 페스티벌에 뽑힌 이 페스티벌은 1979년 슈투트가르트 챔버 오케스트라를 이끌던 독일의 명지휘자 칼 뮌힝거가 10년 간 이끌며 프랑스와 독일의 음악적 대화의 창으로 만들었다. 1989년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가 예술감독으로 발탁되면서 새로운 문을 연 콜마르 페스티벌은 소프라노 제시 노만,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힌,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백건우, 예브게니 키신 등 위대한 솔리스트들을 초청했다.

32년 간 콜마르 페스티벌을 이끌어온 스피바코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물러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파라의 터키 아르메니아계 가정에서 태어난 프랑스 지휘자 알랭 알튀노글뤼가 올해부터 맡게 되었다. 금년에는 7월 5일부터 14일까지 열렸는데 매년 거의 같은 시기에 열린다. 20개의 콘서트,3개의 시리즈가 3개의 공연장에서 열렸다.주요 공연에는 14세기에 건축된 상마티유 교회에서 열리는 9개의 교향악단 콘서트 콜마르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이 된 알랑 알튀노글뤼가 지휘한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등이 있었바리톤 김태한이 우승을 차지한 올해 퀸 엘리자베스 성악 콩쿠르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그 사람이다.

이밖에 22세 신성으로 유럽 음악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필리핀계 핀란드 지휘자인 타르모 펠토코스키가 지휘하고 한국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원이 악장을 새롭게 맡은 툴루즈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의 공연도 큰 관심을 끌었다,

필자는 처음 방문한 콜마르 페스티벌에서 소콜로프의 연주를 인생 두 번째로 들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2015년에 들으며 압도당했던 그 신비한 기억이 다시 살아왔다. 지난번에는 독일 낭만주의 곡들이었는데, 지난 7월 10일 콜마르 페스티벌에서 다시 만난 그의 레퍼터리는 헨리 퍼셀과 모차르트의 건반 음악이었다.소콜로프는 같은 레퍼터리로 한 시즌을 모두 연주하면서 깊이를 더한다. 주 공연장인 상 마티유 교회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그는 한결 같은 독특한 걸음걸이로 등장해서 청중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잠깐 인사한 후 바로 퍼셀의 그라운드(Ground)부터 치기 시작했다. 솜털처럼 한없이 가벼운 터치에 전매특허인 환상의 빠른 트릴에 경탄하며 그의 연주를 듣는다.

전반부는 모두 퍼셀의 곡이었다. 예상대로 모든 곡을 이어서 쳤다. 모음곡 2번 새로운 아일랜드 노래(A New Irish tune), 스코틀랜드 노래(A Scottish tune) 모음곡 4번, 벤자민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의 주제곡인 론도(Rondeau)는 Round O, 모음곡 7번 그리고 1부 마지막 곡은 퍼셀이 딱 한 곡만 쓴 ‘샤콘’이었다.

템포는 빠른 편이었고 연주가 투명하고 신났다. 그의 모터 달린 듯 정확한 연주는 역시나 경이로웠다. 도대체 연습을 얼마나 하기에 73세의 나이에 저렇게 정확하게 치며 또 젊은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지 감탄을 금치 못했다. 1부는 모차르트로만 구성했다. 피아노 소나타 13번 1악장부터 단순한 듯 하지만 저렇게 영롱하고 가벼운 터치를 어떻게 낼 수 있는 것인지 경이로웠다. 협주곡은 아니지만 K.333의 특징은 3악장에 카덴차가 있다. 소콜로프의 카덴차는 과시용이 아니라 명료하고 정밀하게 건반을 타격했다.

능숙하게 카덴차를 끝내고 본론으로 돌아와 곡 연주를 끝낸 후 모차르트의 아다지오K.540을 치려고 손을 들어치려는 순간, 청중의 박수가 터져나왔고 그러자 소콜로프는 치려던 오른손을 내리고 의자에서 왼쪽으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다시 아다지오 연주를 시작했다. 청중을 존중하는 그의 자세를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지금까지의 퍼셀의 곡과 모차르트 소나타 K.333과는 전혀 다른 진중하고 철학적인 복잡한 심경의 모차르트 아다지오 b단조였다. ‘피아노의 도스토옙스키’라는 그의 별명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연주였다.

언제나 무대에 오르면 잠깐 인사한 뒤 연주하고, 연주가 끝나면 인사하고 바로 무대 뒤로 들어가버리는 소콜로프. 연주 내내 웃는 법도 없이 늘 진중한 그의 표정은 내성적이면서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청중에게 보여준다. 결코 따라할 수 없는 소콜로프만의 늘 똑같은 표정과 자세가 그를 바라보는 청중에게 신비로움을 안겨준다.

모차르트 아다지오 이후 소콜로프는 프랑스인들에 대한 선물같은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등 6곡의 앙코르를 안겨줘 본 프로그램에서 영국 바로크와 모차르트 고전주의 음악만을 들었던 청중에게 3부를 선사했다. 천변만화하는 다채로운 팔레트의 색채와 때로는 폭발적인, 때로는 놀랍도록 사랑스런 터치를 들려주며 한계없는 피아노의 영토를 청중이 마음껏 누리게 해주었다. 매년 공연이 끝난 후 콜마르 페스티벌을 찾아 독주회를 펼치는 소콜로프의 리사이틀에 내년에도 꼭 참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 에어컨 없는 연주장에 연미복이라니. 그의 공연과 청중에 대한 경건한 자세를 읽게 했다.

장일범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