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올바름질’과 흉악한 창작의 자유 [남정욱의 종횡무진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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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는 전 세계 영화 팬들과 원수가 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얼마 전에는 ‘인어공주’를 까맣게 칠해 놓더니 이번에는 ‘백설공주’를 가무잡잡하게 그린다고 한다. 돈도 많이 까먹은 거 같던데 계속 ‘고’(Go)를 부르는 걸 보면 마케팅 오판이 아니라 신념 혹은 오기로 보인다. 착한 척, 선한 척, 정의로운 척, 대한민국 좌파들의 특징을 디즈니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디즈니의 선택을 존중한다. 거슬리는 건 그들의 방식이다. 링컨이 그랬다. 사람들은 배우는 것은 좋아하지만 가르침을 받는 것은 싫어한다고. 디즈니는 관객들을 가르치려 든다. “페미니즘이 뭔지 친절하게 알려줄 테니까 열심히 배우세요.” 나는 다만 이 교만이 싫을 뿐이다. 성경에도 나온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니. 그런데 디즈니는 생각해봤는지 모르겠다. 작정하고 사람들을 극장에서 내쫓을 때 돌아 나오는 관객들의 그 참담한 심정을. 어릴 적 봤던 만화영화의 감동을 실사 영화에서 다시 확인하러 들어갔다가 인종 문제와 마주쳐야 하는 그 황당함을. 유년 시절의 감동을 자녀와 공유하러 갔다가 낭패를 본 부모들의 허탈한 심경을.
댁들은 이게 폭력이란 생각은 안 드는가.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폭력은 어쩔 수 없다는 건 혹시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에게서 배운 것인가.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정치적으로 물들이겠다는 것은 문화대혁명에서 배운 것인가.
디즈니의 이런 ‘올바름질’에 대한 후과는 매섭다. 극장에는 손님이 끊기고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가입자들이 대거 이탈하는 중이다. 경영 악화로 수천 명 디즈니 종업원들이 해고됐다. 창업자인 월트 디즈니는 인재 경영으로 유명하다. 그는 칭찬을 하는 것보다는 돈을 더 주는 것이 좋다는 매우 바람직한 경영관을 가지고 있었고 고급 인력을 데려오는 데 한 번도 인색한 적이 없다. 유능한 종업원들의 해고는 창업자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디즈니뿐만이 아니다. 예술 하는 인간들이 주장하는 소위 창작의 자유는 상식을 넘은지 오래다. 원작 같은 건 얼마든지 훼손하고 바꿔도 된다는 이 발상은 절반의 건방과 절반의 무지로 만들어지고 덕분에 소비자는 골병이 든다(말 그대로 골에 병이 생김).
일단 집중이 안 된다. 북아프리카를 근거지로 삼았다는 이유로 한니발이 흑인으로 등장하거나 이집트 파라오라는 이유만으로 클레오파트라 역시 시꺼멓게 나오는 역사물을 보면 고통스럽다. 대항해 시대 이후 아프리카 침탈에 대한 서구의 반성문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해보지만 아닌 것을 ‘아닌 것이 아닌 것’으로 봐야 하는 인내심의 동원에서 시청자는 고달프다.오늘 날 우리의 통념과 달리 ‘일본은 하나다’라는 생각은 전국시대 당시엔 대단히 낯선 개념이었다.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것은 여러 지역의 다이묘들이 서로를 견제하며 분할 통치하는 ‘군웅할거’였고 최초로 하나의 일본을 지향한 오다 노부나가는 비상식적인 사고를 하는 변종이었다.
얼마 전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본 ‘사무라이의 시대’는 최악이었다. 오다 노부나가와 아케치 미스히데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기록과 달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서양인들이 제멋대로 만든 작품이었다. 히데요시는 중년의 꽃미남으로 나온다. 원숭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그는 심각한 추남이었다. 엄청난 권력에도 그의 간택을 기피하는 여자까지 있었고 히데요시는 자신을 무시하는 여자들을 톱으로 썰거나 꼬챙이로 찔러 죽였다.
오다를 죽인 아케치 미쓰히데는 별명이 감귤이었다. 대머리에 이마가 번쩍이는 전형적인 아저씨 이미지인데 영상 속 모발의 풍성함은 딱 20대 청춘이었다. 압권은 오다 노부나가다. 오다 집안은 대대로 미남으로 그 역시 얼굴이 길고 피부가 희며 계집애처럼 가늘게 찢어진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인물을 ‘마왕이라고 불린 사내’라는 소제목에 맞춘답시고 얼마 전 교통방송에서 퇴출된 털보 정치 무당처럼 만들어놓았다.
외모만 박살낸 게 아니다. 더 중요한 건 그의 ‘머리’다. 일본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오다는 수백 년을 앞서 시장에 자유경쟁을 도입한 사람이다. 경쟁이 벌어지고 인민이 풍족해야 자신의 호사도 더욱 고급스러워진다는 사실을 알았고 당시 통제 물품이었던 등유까지 자유롭게 거래하도록 허용했다. 그 결과 오다는 성 꼭대기에서 반짝이는 야경을 감상한 일본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게다가 그는 일본 다이묘 중 최초로 그리고 어쩌면 유일하게 로마사 강의를 들은 사람이다. 오다는 2000년을 끌어 온 제국의 신화에 매료됐고 이에 대해 더 알고 싶었으나 당시 일본에 들어와 있던 선교사 중에는 그 정도 학식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로마 교황청에서 따로 사람을 파견해 강의를 했는데 앙망했던 바에 비해 수업 태도는 엉망이었다. 내리 하품을 하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을 바라보는 등 뒤숭숭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정치 시스템이 궁금했을 따름이다. 생각했을 것이다. “집정관은 내가 하면 되고 원로원은 다이묘들 시키면 되는데 평민회는 어떻게 구성하지?” 아마 이런 고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오다는 영주제도를 없애고 일종의 통령 시스템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체계를 구상해 측근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가 완벽하게 실종됐다. 그저 오다라는 이름표를 단 벌거벗은 괴물이 천방지축 날뛰고 있었다.
디즈니와는 헤어질 결심을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멀쩡한 인간을 야만스럽고 살육에 환장한 인물로 만들어버리는 이 흉악한 창작의 자유는 대체 언제까지 얼마나 더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그들은 원작을 파괴한 게 아니라 내 영혼을 파괴했다.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나는 디즈니의 선택을 존중한다. 거슬리는 건 그들의 방식이다. 링컨이 그랬다. 사람들은 배우는 것은 좋아하지만 가르침을 받는 것은 싫어한다고. 디즈니는 관객들을 가르치려 든다. “페미니즘이 뭔지 친절하게 알려줄 테니까 열심히 배우세요.” 나는 다만 이 교만이 싫을 뿐이다. 성경에도 나온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니. 그런데 디즈니는 생각해봤는지 모르겠다. 작정하고 사람들을 극장에서 내쫓을 때 돌아 나오는 관객들의 그 참담한 심정을. 어릴 적 봤던 만화영화의 감동을 실사 영화에서 다시 확인하러 들어갔다가 인종 문제와 마주쳐야 하는 그 황당함을. 유년 시절의 감동을 자녀와 공유하러 갔다가 낭패를 본 부모들의 허탈한 심경을.
댁들은 이게 폭력이란 생각은 안 드는가.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폭력은 어쩔 수 없다는 건 혹시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에게서 배운 것인가.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정치적으로 물들이겠다는 것은 문화대혁명에서 배운 것인가.
디즈니의 이런 ‘올바름질’에 대한 후과는 매섭다. 극장에는 손님이 끊기고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가입자들이 대거 이탈하는 중이다. 경영 악화로 수천 명 디즈니 종업원들이 해고됐다. 창업자인 월트 디즈니는 인재 경영으로 유명하다. 그는 칭찬을 하는 것보다는 돈을 더 주는 것이 좋다는 매우 바람직한 경영관을 가지고 있었고 고급 인력을 데려오는 데 한 번도 인색한 적이 없다. 유능한 종업원들의 해고는 창업자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디즈니뿐만이 아니다. 예술 하는 인간들이 주장하는 소위 창작의 자유는 상식을 넘은지 오래다. 원작 같은 건 얼마든지 훼손하고 바꿔도 된다는 이 발상은 절반의 건방과 절반의 무지로 만들어지고 덕분에 소비자는 골병이 든다(말 그대로 골에 병이 생김).
일단 집중이 안 된다. 북아프리카를 근거지로 삼았다는 이유로 한니발이 흑인으로 등장하거나 이집트 파라오라는 이유만으로 클레오파트라 역시 시꺼멓게 나오는 역사물을 보면 고통스럽다. 대항해 시대 이후 아프리카 침탈에 대한 서구의 반성문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해보지만 아닌 것을 ‘아닌 것이 아닌 것’으로 봐야 하는 인내심의 동원에서 시청자는 고달프다.오늘 날 우리의 통념과 달리 ‘일본은 하나다’라는 생각은 전국시대 당시엔 대단히 낯선 개념이었다.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것은 여러 지역의 다이묘들이 서로를 견제하며 분할 통치하는 ‘군웅할거’였고 최초로 하나의 일본을 지향한 오다 노부나가는 비상식적인 사고를 하는 변종이었다.
얼마 전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본 ‘사무라이의 시대’는 최악이었다. 오다 노부나가와 아케치 미스히데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기록과 달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서양인들이 제멋대로 만든 작품이었다. 히데요시는 중년의 꽃미남으로 나온다. 원숭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그는 심각한 추남이었다. 엄청난 권력에도 그의 간택을 기피하는 여자까지 있었고 히데요시는 자신을 무시하는 여자들을 톱으로 썰거나 꼬챙이로 찔러 죽였다.
오다를 죽인 아케치 미쓰히데는 별명이 감귤이었다. 대머리에 이마가 번쩍이는 전형적인 아저씨 이미지인데 영상 속 모발의 풍성함은 딱 20대 청춘이었다. 압권은 오다 노부나가다. 오다 집안은 대대로 미남으로 그 역시 얼굴이 길고 피부가 희며 계집애처럼 가늘게 찢어진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인물을 ‘마왕이라고 불린 사내’라는 소제목에 맞춘답시고 얼마 전 교통방송에서 퇴출된 털보 정치 무당처럼 만들어놓았다.
외모만 박살낸 게 아니다. 더 중요한 건 그의 ‘머리’다. 일본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오다는 수백 년을 앞서 시장에 자유경쟁을 도입한 사람이다. 경쟁이 벌어지고 인민이 풍족해야 자신의 호사도 더욱 고급스러워진다는 사실을 알았고 당시 통제 물품이었던 등유까지 자유롭게 거래하도록 허용했다. 그 결과 오다는 성 꼭대기에서 반짝이는 야경을 감상한 일본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게다가 그는 일본 다이묘 중 최초로 그리고 어쩌면 유일하게 로마사 강의를 들은 사람이다. 오다는 2000년을 끌어 온 제국의 신화에 매료됐고 이에 대해 더 알고 싶었으나 당시 일본에 들어와 있던 선교사 중에는 그 정도 학식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로마 교황청에서 따로 사람을 파견해 강의를 했는데 앙망했던 바에 비해 수업 태도는 엉망이었다. 내리 하품을 하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을 바라보는 등 뒤숭숭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정치 시스템이 궁금했을 따름이다. 생각했을 것이다. “집정관은 내가 하면 되고 원로원은 다이묘들 시키면 되는데 평민회는 어떻게 구성하지?” 아마 이런 고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오다는 영주제도를 없애고 일종의 통령 시스템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체계를 구상해 측근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가 완벽하게 실종됐다. 그저 오다라는 이름표를 단 벌거벗은 괴물이 천방지축 날뛰고 있었다.
디즈니와는 헤어질 결심을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멀쩡한 인간을 야만스럽고 살육에 환장한 인물로 만들어버리는 이 흉악한 창작의 자유는 대체 언제까지 얼마나 더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그들은 원작을 파괴한 게 아니라 내 영혼을 파괴했다.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