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인가 꿈인가… 게임 그래픽처럼 펼쳐낸 '초현실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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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남동 갤러리바톤서나무 등걸, 텐트, 해와 달과 별과 바다. 이재석 작가(34·사진)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뿐이다. 작가는 이를 특유의 차분하고 고운 색감과 섬세한 묘사로 캔버스에 그려낸다.
9월 27일까지 이재석 개인전
초현실적 작품으로
미술관·미술시장에서 모두 인기
수수한 소재를 예쁘게 그렸으니 ‘평범하게 잘 그린 그림’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완성된 그림은 더없이 낯설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그의 작품에서 르네 마그리트나 조르조 데 키리코 등 초현실주의 작가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관람객들은 한참을 멈춰 서서 그 비현실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궁금해하게 된다. ‘도대체 이 그림에 무슨 뜻이 담겨 있을까.’서울 한남동 갤러리바톤에서 열리고 있는 이 작가의 개인전은 그의 대형 작품 10여점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전시 제목은 ‘극단적으로 복잡하나 매우 우아하게 설계된’. 이 작가는 “전시 제목은 이 세상을 구성하는 구조와 질서를 뜻한다”며 “복잡하고 거대한 세상도 평범한 사물들의 상호작용이 모여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작품을 통해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 작품 속에는 작가가 군생활을 하면서 본 군용 텐트와 총기, 작업실 근처에서 본 나무등걸이나 별 등 흔한 소재들이 마치 부품처럼 독특한 구성으로 배치돼 있다. 이번 전시 관객들 중에서는 “무슨 뜻이 담긴 그림이냐”고 묻는 사람이 유독 많다는 게 갤러리의 설명이다. 그만큼 작품 분위기는 거창한 진리를 담고 있을 것처럼 신비롭다. 하지만 작가는 “대단한 메시지가 담긴 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저는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독특한 경험도, 엄청난 사상도 없어요. 평범하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요. 그래도 억지로 의미를 만들어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보다는 내 삶 속에서 보고 접한 사물을 잘 묘사하고, 이를 잘 구성해 그림에 풀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를 해석하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건 관객 각자의 몫이겠지요.”평범한 경험을 담은 그림이라는 건, 달리 보면 보편적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작가의 작품은 지금 한국을 살아가는 일반적인 20~30대의 정서와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작가는 여러 소재들을 부품처럼 화면에 배치하고 알파벳이나 숫자로 번호를 붙인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는 어린 시절부터 자유자재로 컴퓨터를 다뤄온 경험이 담겨 있다. 이 작가는 “학창시절 게임 아이템과 지도 그래픽 등을 컴퓨터로 만드는 데 푹 빠져 있었는데, 거기서 여러 요소를 조합하고 자유롭게 배치해 전체 그림을 만들어내는 지금의 작업 방식을 착안했다”고 말했다.노(老)화가 대부분이 수행자처럼 반복 작업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는 것과 달리, ‘효율’을 중시하는 것도 요즘 세대답다. 그는 “그림을 더 많이 그리기 위해 유화 대신 빨리 마르는 아크릴 물감을 쓴다”고 설명했다. 그림에서 풍기는 특유의 비현실적인 분위기는 현실과 메타버스 등 가상현실의 구분이 갈수록 흐려지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작가의 독특한 작품은 미술관과 시장에서 모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갤러리밈(2020년)과 서울시립미술관 SeMA 창고(2021년)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일민미술관(2023년), 서울대미술관(2022년), 스페이스케이(2020년), 대전시립미술관(2019년) 등 유수 기관에서 열리는 그룹전에 참여했다. 비무장지대(DMZ)에서 열리는 대규모 전시 ‘체크포인트’, 울산시립미술관 그룹전에도 참가가 예정돼 있다. 이번 전시는 9월 27일까지 열린다.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