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14' 연대 동문들의 현악앙상블 '윕실론' [음표 위의 사람들]

현악앙상블 '윕실론' 창단연주회
연세대 졸업생으로 구성

독일서 활동중인 연대 동문 의기투합
"장기 프로젝트로 클래식 일상화 할 것"
대다수의 국내 음악도들은 음대를 졸업하고 유학길에 오른다.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 유럽, 교육 커리큘럼이 체계적인 미국 등 넓은 세상에서 배움의 기회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2010년대 신촌에서 빛나는 청춘을 함께한 6명의 연세대 출신 현악도들도 그렇게 뿔뿔이 흩어졌다. 첼리스트 강지훈(28)과 이제헌(28), 바이올리니스트 윤도영(29)·차우빈(27)·강지호(28)·한규진(28) 등 6명은 현재 바이에른 뮌헨 드레스덴 뒤셀도르프 베를린 등 독일 각지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거나 음대에서 석사 및 박사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앙상블 윕실론 단원들이 서울 연세대 음악대학 연습실에서 합주하고 있다. 최다은 기자

각개전투하며 살아가던 6명의 졸업생이 서울에서 다시 뭉쳤다. 연대 동문이라는 공통점을 토대로 앙상블 '윕실론'을 창단해 한국에서 정기적인 무대를 만들기로 한 것. 윕실론은 연세대를 상징하는 Y의 독일어 발음에서 따왔다고. 타지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모여 한국에서 연주한다는 컨셉은 손열음의 '고잉홈 프로젝트'가 연상되기도 한다. 오는 25일 연세대 체임버홀에서 창단 연주를 앞둔 윕실론 단원 4명(강지훈·차우빈·강지호·이제헌)을 최근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가 만났다.

"저희 모두 13~15학번으로 나이가 거의 비슷해요. 지금은 다들 어딘가에 자리잡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에요. 대학생 때부터 친했기 때문에 공식적인 리더없이 SNS 홍보, 후원 모색, 공연 기획 등을 6명이 나눠서 하고 있어요. 최고 인기 걸그룹인 '뉴진스'도 센터나 리더가 따로 없잖아요.(웃음)" (강지훈)로스톡 국립음대에서 석사과정을 수학 중인 강지훈의 제안으로 삼삼오오 멤버가 모여들었고 지난 2월부터 본격적으로 연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직 단체 프로필 사진조차 찍지 않은 채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은 "정기적인 동문 프로젝트를 만들어 음악적 경험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교류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서울대, 한예종 등 타 대학에 비해 연대 동문 악단은 활발하지 않아 아쉬웠어요. 전통적으로 연대는 '개인주의가 심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개인의 성장만큼이나 함께 성장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후배들과 편성을 점차 키워가면서 대중에게 다가가는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이제헌)

그런데도 동문을 위한 연주라는 표현에는 선을 그었다. 윕실론 단원들은 "팀의 시작이 연세대, 저희의 인연이 신촌에서 시작됐다는 것이지 궁극적인 목표는 일반 대중에게 클래식을 통해 친숙하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한국에서 악기를 전공한 이들은 유학 생활을 통해 음악에 대한 관점이 크게 달라졌다. 입시와 콩쿠르로 치열하기만 했던 학창 시절과 달리 독일에서의 음악은 일상 그 차제였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자 음악의 본질이 보였다는 게 이들의 경험이다.

" 독일에서는 연주나 오디션에 들어가기 전에 '필 슈파스'(viel Spaß)라고 해요. 즐기라는 거죠. 보통 한국에서는 연주나 시험 전에 응원할 때 '잘해!'라고 하거든요.(유럽은) 음악과 예술을 대하는 문화 자체가 다르다고 느꼈어요. "(차우빈)

"저는 동독에서 공부했는데요, 주마다 오케스트라가 1개에서 많게는 4개 정도 있어요. 같은 주 내에서도 오케스트라의 색채가 다 다르고 개성이 넘쳐요. 단원 오디션을 보러 다니다 보면 마냥 잘하는 것보다 그 오케스트라와 저의 색이 맞는지가 훨씬 중요하죠. "(이제헌)
사진=unsplash

연주 환경의 차이도 컸다. 한국 공연장은 스타 연주자들이 등장해야 좌석이 가득 차지만 클래식이 일상 문화에 깊게 자리한 독일에는 동네 소규모 연주회에도 관객이 북적이는 점이 그러했다.

"일반적인 독주, 오케스트라, 오페라 모두 거의 매진될 만큼 인기가 많아요. 청중들은 연주가 끝나면 항상 격려해주고 다들 정말 집중해요. 유럽은 거의 모든 도시에 음대가 있는데 학교에서 하는 작은 음악회 '클라센 아벤트'(Klassen Abend)가 열리면 동네 주민들이 관람해요. 그곳에서 세계적인 연주자들, 앙상블 팀들이 생겨나죠. 동네 주민이라는 관객을 통해 연주자들이 발전하는 구조에요. " (강지훈)

대형 콘서트장에서 울려 퍼지는 클래식 음악도 좋지만, 길거리에서 소소하게 열리는 클래식 음악회도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 유럽처럼 클래식 애호가뿐 아니라 일반 관객에게 보다 지평을 넓혀가겠다는 게 윕실론의 목표다.

"한강이나 대학가에서 버스킹을 하는 연주자들을 통해 그 순간의 분위기와 추억을 갖게 되잖아요. 클래식도 그렇게 다가가고 싶어요. 음악 자체가 일상이 된다면 더 좋다고 생각해요. "(차우빈)

케이팝은 남녀노소 친근하게 느낄 뿐 아니라 한국인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

"요즘엔 케이팝이 유럽조차 사로잡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한국에도 클래식이 대중을 사로잡으면 좋겠습니다. 클래식이 교과서나 콘서트홀에서만 존재하는 음악이 아니라 길거리에, 상점에, 일상에 다가올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습니다. "(이제헌)

연주 기회를 늘려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빼놓을 수 없다. 연주자들은 무대에 서야 또 다른 기회가 생기고, 커리어도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가는 무엇보다 음악으로 먹고사는 게 중요해요. 꾸준히 프로젝트를 이어가다 보면 한국에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연주를 통해 실력도 쌓고 다른 연주 기회도 생기면 좋은 일이죠. 오케스트라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어요. 다들 개인 레슨이나 다른 미니잡을 하고 있죠. "(강지호)

윕실론의 우선적인 목표는 장기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 내년부터는 소규모의 실내악 그룹을 편성해 메인 연주 전에 소규모의 음악회를 구상 중이다. 계속 규모를 확장해 국내외에서 활동 중인 동문을 초청해 합주나 협연 무대를 꾸릴 계획이다.

"동문이라는 단어가 양날의 검이죠. 자칫하면 동호회 같은 느슨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긴장감을 가지고 연주를 통해 증명해야 해요. 많은 팀이 2~3번 연주하고 팀을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꾸준히 활동하여 롱런하는 팀이 되려면 실력과 진심으로 다가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우빈)이번 창단 기념 공연에서는 바이올린 4명, 비올라 2명(객원), 첼로 2명의 8중주 편성으로 연주한다. 국내에서 흔히 연주되지 않던 색다른 프로그램도 소개한다. 바로크 시대 작곡가 토마시니, 독일과 폴란드계 소련 작곡가 글리에르 등 국내에서 흔히 알려지지 않은 색다른 레퍼토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