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원의 헬스노트] "소아 심장건강이 위태롭다…전국서 수술의사 '멸종 위기'"

소아 심장병 수술의사 절반이 5년내 은퇴…1~2명 배출되던 인력마저 지난해엔 '0명'
간호사도 소아심장병 업무 기피…"저출산 속 소아 심장 지킬 수 있는 제도개선 필요"
#1. 제주도에 사는 김모(30)씨는 지난 3월 딸을 낳았다. 그러나 이내 초음파에서 딸의 심장 소리가 이상하다는 말을 들었다.

청천벽력이었지만, 김씨는 산후조리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딸아이 심장치료를 위해 이곳저곳 병원을 수소문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을 찾게 됐다. 검사 결과 심방 사이의 벽에 구멍이 생기는 선천성 심장병인 '심방중격결손'이 확인됐다.

하지만 병원은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황당하게도 아이를 수술할 수 있는 소아흉부외과 전문의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수소문 끝에 경기도 부천의 심장전문병원을 찾았고, 다행히 성공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었다.

신씨는 "딸을 낳고 회복도 안 된 상태에서 제주에서 서울의 대학병원까지 왔는데, 수술할 의사가 없다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면서 "다행히 전문병원에 연결돼 아이를 살렸지만, 천당과 지옥을 오간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2. 대전에 사는 이모(40)씨는 지난해 11월 시험관 시술로 소중한 아들을 얻었다. 늦깎이 나이에 얻은 아이여서 하루하루가 더 행복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아들이 태어난 지 6개월쯤, 갑자기 아들의 입술과 손끝이 파래지는 청색증이 나타났다.

아이는 숨쉬기조차 어려워하며 우유도 먹지 못했다.

곧바로 대전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의료진은 심장 이상을 의심하면서도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앞선 김씨의 사례처럼 소아흉부외과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결국 이씨는 2시간이나 걸려 심장전문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선천성 심장병(대혈관 전위증)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곧바로 수술에 들어간 아이는 다행히 웃음을 되찾았다.

안 씨는 "집 근처 대형 병원이 있는데도 막상 아이의 심장병에는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상황이었다"면서 "아이가 아픈데 의사가 없어 치료가 안 된다면 누가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겠느냐"고 하소연했다.
◇ 저출산 속 위태로운 소아 생명…소아심장 수술 전문의 '태부족'
대한민국 소아심장이 위협받고 있다.

심각한 저출산 속에 미래 세대를 이끌어갈 생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생사의 고비에 서 있는 아이들의 치료에 대한 관심은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천성 소아 심장병은 태아기에 발생해 진행한다.

따라서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게 핵심이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심부전, 폐고혈압 등 심각한 합병증을 초래한다.

대혈관 전위증, 전폐정맥 환류이상, 대동맥 축착, 기능성 단심실 등의 경우는 신생아기에 치료 시기를 놓치면 바로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소아심장질환에 대한 지킴이는 병원의 소아심장분과 전문의와 소아심장외과 전문의가 그 역할을 한다.

소아심장분과 전문의가 되려면 전문의 자격을 획득하고 나서 일정 기간 전임의 과정을 거친 후 별도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응시율은 참담하다.

대한의학회와 대한소아심장학회 통계를 보면 소아심장분과 전문의 응시율은 2017년 1명, 2018년 8명, 2019년 7명, 2020년 6명, 2021년 8명 등 한 자릿수로 연명해왔다.

작년에는 응시 인원 부족으로 아예 자격시험조차 열리지 않았다.

소아심장외과(소아흉부외과) 전문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2017년 0명, 2018년 1명, 2019년 3명, 2020년 2명, 2021년 2명이 고작이다.

지난해에는 역시 지원자가 없었다.

이런 사정은 대학병원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소재 대형병원 중 가장 많은 의사 인력을 보유한 A대학병원의 경우 현재 소아심장분과·소아심장외과 전문의가 총 7명에 불과하다.

전임의(펠로우)는 3년째 1명도 없는 상황이다.

B대학병원은 다 합쳐도 3명에 그친다.

그나마 심장전문병원이 이런 구멍을 메꾸며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

국내 유일 심장전문병원인 부천세종병원의 경우 소아심장분과·소아심장외과 전문의가 각각 10명, 4명으로 국내 모든 병원을 통틀어 가장 많다.

이창하 대한소아심장학회 회장(부천세종병원 소아흉부외과)은 "대한민국의 미래, 소아심장을 지키려면 소아·선천성 심장병의 조기 발견과 치료가 꼭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현재 소아·선천성 심장병 관련 의료진은 이른바 '멸종 위기' 상태"라고 꼬집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천성 심장병 아이를 둔 부모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선천성심장병환우회 안상호 대표는 "근래 들어 저출산 구조에 따른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붕괴 위기로 소아 진료가 갑작스럽게 차질을 빚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아 외상, 응급, 중증, 희귀질환, 미숙아 등 힘들고 보상이 적은 소아 필수 의료 분야는 오래전부터 서서히 무너져왔다"면서 "젊은 의사들이 흉부외과를 기피할 때 소아흉부외과는 쳐다도 보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고, 그 결과 소아흉부외과는 이제 더 이상 전임의가 배출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아파도 말 못 하는 아이들…소아심장건강 첫 단추는 '심장병'에 대한 이해
선천성 심장병은 말 그대로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구조적 결함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임신 기간에 심장은 세포에서 시작해 기능적 모양을 갖추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구멍이나 막힘 등의 이상이 생긴 채 태어난 것이다.

선천성 심장병은 수십 가지 유형이 있는데 크게 청색증형 심장병, 비청색증형 심장병으로 나뉜다.

청색증은 폐순환을 담당하는 우심방, 우심실, 폐동맥 쪽으로 혈액이 잘 가지 못해 적절한 폐순환이 이뤄지지 못하거나, 대동맥과 폐동맥 등의 대혈관 위치가 잘못된 경우, 협착이나 폐쇄 등이 발생했을 때 산소포화도가 유지되지 못하면서 나타난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서 입술과 손끝이 파래지는 증상을 보인다.

청색증이 나타나는 심장병은 팔로 사징, 대혈관 전위증 등 복잡한 복합 심장기형을 들 수 있다.

비청색증 심장병은 이보다 더 많다.

대표적으로 심실중격결손, 심방중격결손, 동맥관 개존증과 같은 질환이 꼽힌다.

비청색증의 경우 호흡이 가쁘고 땀이 많이 나며 체중이 늘지 않고, 쉽게 지치는 등의 심부전 증상을 보인다.

문제는 빈호흡, 수유 곤란, 성장 장애, 청색증 등의 증상과 심잡음, 심비대 등의 징후를 아이들 스스로 자각하거나 호소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모를 중심으로 한 보호자가 소아심장을 더 이해해야 하고, 이들 질환에 대한 꾸준한 홍보가 필요한 이유다.

부천세종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수진 과장은 "선천성 심장은 유전적 요인이 드물고 85~90%는 원인불명"이라며 "건강한 부모임에도 선천성 심장병 아이가 얼마든지 태어날 수 있는 만큼,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이상 증상이 보이면 아이에게 선천성 심장병이 생겼을 수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소아·선천성 심장병은 심장의 구조적인 문제이므로 약물 치료가 어렵다.

구멍이 났거나 좁아진 부분에 대한 수술이나 시술 등으로 치료해야 한다.

물론 수술에는 위험이 수반한다.

심장은 수술하려고 절개하는 순간 급격하게 출혈이 발생하면서 혈압이 떨어져 생명을 위협하고, 이 때문에 인공심폐기 사용이라는 수술의 전제조건이 따른다.

최근에는 의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슴을 절개하지 않고 혈관을 통해 카테터(미세 도관)를 집어넣어 심장 안으로 들어가 구멍을 막거나 좁은 곳을 넓히는 비수술적 방식, 즉 중재적 시술 또는 치료적 심도자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

만일 중증의 심부전 등이 발생한 경우라면 인공심장수술과 심장이식도 고려할 수 있다.
◇ 소아심장 의사 절반이 곧 은퇴할 나이…'돈'의 논리보다 시스템 개선돼야
전문가들은 소아심장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이런 아이들을 치료할 전문인력 확충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창하 회장은 "전국에서 소아·선천성 심장병을 수술할 수 있는 흉부외과 의사 중 절반 이상이 곧 은퇴할 나이에 접어든다"면서 "그런데도 그나마 1년에 고작 1~2명씩 배출되던 인력마저 지난해에는 아예 '0명'이 됐다"고 토로했다.

학회에 따르면 소아·선천성 심장병을 진단하고 관리할 소아심장 전문의도 1년에 한 자릿수 배출에 연명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요즘 들어서는 간호사들조차도 소아·선천성 심장병 업무를 기피하는 게 현실이다.

이 회장은 "이 순간에도 소아심장병 환자들은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하고, 의료진은 그 소중한 숨결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다해 극한의 어려움과 처절하게 싸우고 있다"면서 "이제부터라도 단순히 '돈'의 논리를 따지기보다 치료 과정 전반에 대한 탄탄한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아심장을 지키려면 관련 제도개선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천세종병원 소아청소년과 장소익 부장은 "소아심장 환자군은 그 특성상 대규모 연구가 이뤄지기 힘들다"며 "이로 인한 부작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아심장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다 보니 연구에 기초를 둔 성인 보험 기준과 매우 달라 약이나 시술·수술 등에 대한 보험 지원이 힘든 경우가 많다"면서 "이 때문에 적절한 처치에 한계를 보이고, 경제적 이윤을 기반으로 둔 다국적 제약회사의 신약 연구에서도 제외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소아·선천성 심장병 치료를 위한 새로운 기구의 국내 도입도 보험 기준 탓에 외면받거나 이미 들어온 기구들도 국내에서 철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관련 학회의 분석이다.

가천대길병원 소아심장외과 최창휴 교수(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총무이사)는 "선천성 심장병을 앓는 소아 중 일부는 여러 차례의 큰 수술은 물론 평생에 걸친 진료가 수반된다"면서 "저출산 위기에서 벗어나 향후 출산율이 다시 늘어나는 미래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이런 아이들에 대한 정부 지원 강화와 함께 전반적인 수가 개선, 심장병 치료 재료의 원활한 공급 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단체는 무엇보다 충분한 인력 확보로 심장이 아픈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상호 대표는 "고위험, 고난도 수술과 시술, 야간, 휴일, 응급, 당직과 온콜(전화대기)에 얽매여 있는 필수 의료 분야는 업무강도를 낮춰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별도 보상체계를 마련해 힘든 일에 보상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이것이 아픈 아이들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