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군 해녀와 아기 해녀의 세대 넘은 동행…다큐 '물꽃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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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닷속 물꽃 찾아 나선 해녀들 6년간 카메라에 담아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 (파도야) 쳐라 쳐라 / 우리 부모 왜 나를 낳으셔서 / 이런 고생 다 시키나…"
경력 87년의 해녀 현순직 할머니가 홀로 앉아 노래를 부른다. 고통이 없다는 상상의 섬 '이어도'에 살고 싶다는 구슬픈 가사를 읊조리면서도 눈빛은 형형하고 입가엔 미소를 띠었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그는 한때 견줄 상대가 없다고 여겨지던 '상군 해녀'였다.
제주·서귀포뿐만 아니라 거제, 통영, 독도까지 전국의 바다를 누비며 동료 해녀들을 이끌었다. 지금도 현 할머니 곁에는 제자가 있다.
물질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아기 해녀' 채지애씨다.
그는 과거 스승이 목격했다는 바닷속 오색찬란한 물꽃을 보고 싶어 한다. 고희영 감독이 연출한 '물꽃의 전설'은 제주 바닷속 물꽃을 찾아 나선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해녀들의 삶을 조명한 '물숨'(2016)을 선보인 고 감독은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세대의 두 해녀를 카메라에 담았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제33회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의 공식 초청작이다. 작품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현 할머니와 지애씨의 인터뷰와 일상을 내레이션 없이 담담하게 보여준다.
할머니는 구순을 훌쩍 넘긴 2020년 가을까지도 물질을 한다.
날씨가 좋지 않으니 바다 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아들의 당부는 힘이 없다.
그는 은퇴 후에도 지팡이를 짚고 바닷가를 기웃거린다.
물에 들어가고 싶어 들뜬 마음을 애써 추스르는 게 눈에 보인다.
지애씨 역시 할머니만큼이나 바다를 사랑한다.
그는 뭍에서 직장을 다니다 10년 만에 서귀포로 돌아왔다.
볕도 못 보는 빌딩 숲에 갇혀 살다 보니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한다.
현직 해녀인 어머니의 만류에도 지애씨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다에 들어간다.
그는 현 할머니를 순직 삼춘(삼촌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라 부르며 따른다.
할머니 역시 지애씨에게 어디에 실한 전복이 사는지, 어떤 도구를 써야 힘을 덜 들이고 미역을 캘 수 있는지 등 고급 정보를 가르친다.
하지만 지애씨의 마음을 가장 잡아끈 건 과거 할머니만 봤다는 물꽃이다.
지애씨는 할머니와 함께 배를 타고 물꽃이 있을 만한 바다로 향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돌보는 모습은 애연하면서도 따뜻하다.
둘은 나이는 60살, 경력으로는 80년 넘게 차이 나지만 '어머니 바다'의 품에서는 다 같은 자식으로 보인다.
두 사람 외에 등장하는 다른 해녀들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믿고 바다에 뛰어드는 이들은 물 밖에서도 한 가족 같다.
우리나라 최초의 일하는 어머니였던 해녀 사회를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다.
관광지 제주가 아닌, 날것의 제주를 만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이젠 듣기 어려워진 정겨운 제주어는 마치 시처럼 들린다.
돌담집이 빼곡한 마을 모습과 용왕 할망(할머니) 이야기, 바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영등굿 등 제주에 얽힌 전통문화도 작품은 고루 비춘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은 절로 경탄을 자아낸다.
해녀들이 저마다 테왁(물 위에 몸을 뜨게 해주는 공 모양 기구)을 안고 바다를 가르는 장면은 마치 하늘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물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 정체를 드러낸 물꽃의 모습은 장관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듯하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6년간 조금씩 변하는 바다 때문에 가슴 한쪽에서 죄책감이 고개를 든다.
해녀들은 하나 같이 바다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숨을 쉰다.
물이 오염되고 해조류가 자취를 감추면서다.
전복은 점점 더 귀해지고, 기껏 잡은 소라는 이미 굶어 죽은 것이 태반이다.
현 할머니와 지애씨가 청정 바다에만 산다는 물꽃을 찾기 어려운 것도 해양 생태계가 파괴된 탓이다
현 할머니는 아무래도 자신이 무슨 죄를 지은 것 같다며 자책한다.
"바다 덕에 나도 살고 아이들도 살아 바다가 밉지 않다"는 현 할머니가 다시 한번 옛 모습의 바다를 볼 수는 없을까. 8월 30일 개봉. 92분. 전체 관람가. /연합뉴스
경력 87년의 해녀 현순직 할머니가 홀로 앉아 노래를 부른다. 고통이 없다는 상상의 섬 '이어도'에 살고 싶다는 구슬픈 가사를 읊조리면서도 눈빛은 형형하고 입가엔 미소를 띠었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그는 한때 견줄 상대가 없다고 여겨지던 '상군 해녀'였다.
제주·서귀포뿐만 아니라 거제, 통영, 독도까지 전국의 바다를 누비며 동료 해녀들을 이끌었다. 지금도 현 할머니 곁에는 제자가 있다.
물질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아기 해녀' 채지애씨다.
그는 과거 스승이 목격했다는 바닷속 오색찬란한 물꽃을 보고 싶어 한다. 고희영 감독이 연출한 '물꽃의 전설'은 제주 바닷속 물꽃을 찾아 나선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해녀들의 삶을 조명한 '물숨'(2016)을 선보인 고 감독은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세대의 두 해녀를 카메라에 담았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제33회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의 공식 초청작이다. 작품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현 할머니와 지애씨의 인터뷰와 일상을 내레이션 없이 담담하게 보여준다.
할머니는 구순을 훌쩍 넘긴 2020년 가을까지도 물질을 한다.
날씨가 좋지 않으니 바다 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아들의 당부는 힘이 없다.
그는 은퇴 후에도 지팡이를 짚고 바닷가를 기웃거린다.
물에 들어가고 싶어 들뜬 마음을 애써 추스르는 게 눈에 보인다.
지애씨 역시 할머니만큼이나 바다를 사랑한다.
그는 뭍에서 직장을 다니다 10년 만에 서귀포로 돌아왔다.
볕도 못 보는 빌딩 숲에 갇혀 살다 보니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한다.
현직 해녀인 어머니의 만류에도 지애씨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다에 들어간다.
그는 현 할머니를 순직 삼춘(삼촌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라 부르며 따른다.
할머니 역시 지애씨에게 어디에 실한 전복이 사는지, 어떤 도구를 써야 힘을 덜 들이고 미역을 캘 수 있는지 등 고급 정보를 가르친다.
하지만 지애씨의 마음을 가장 잡아끈 건 과거 할머니만 봤다는 물꽃이다.
지애씨는 할머니와 함께 배를 타고 물꽃이 있을 만한 바다로 향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돌보는 모습은 애연하면서도 따뜻하다.
둘은 나이는 60살, 경력으로는 80년 넘게 차이 나지만 '어머니 바다'의 품에서는 다 같은 자식으로 보인다.
두 사람 외에 등장하는 다른 해녀들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믿고 바다에 뛰어드는 이들은 물 밖에서도 한 가족 같다.
우리나라 최초의 일하는 어머니였던 해녀 사회를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다.
관광지 제주가 아닌, 날것의 제주를 만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이젠 듣기 어려워진 정겨운 제주어는 마치 시처럼 들린다.
돌담집이 빼곡한 마을 모습과 용왕 할망(할머니) 이야기, 바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영등굿 등 제주에 얽힌 전통문화도 작품은 고루 비춘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은 절로 경탄을 자아낸다.
해녀들이 저마다 테왁(물 위에 몸을 뜨게 해주는 공 모양 기구)을 안고 바다를 가르는 장면은 마치 하늘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물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 정체를 드러낸 물꽃의 모습은 장관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듯하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6년간 조금씩 변하는 바다 때문에 가슴 한쪽에서 죄책감이 고개를 든다.
해녀들은 하나 같이 바다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숨을 쉰다.
물이 오염되고 해조류가 자취를 감추면서다.
전복은 점점 더 귀해지고, 기껏 잡은 소라는 이미 굶어 죽은 것이 태반이다.
현 할머니와 지애씨가 청정 바다에만 산다는 물꽃을 찾기 어려운 것도 해양 생태계가 파괴된 탓이다
현 할머니는 아무래도 자신이 무슨 죄를 지은 것 같다며 자책한다.
"바다 덕에 나도 살고 아이들도 살아 바다가 밉지 않다"는 현 할머니가 다시 한번 옛 모습의 바다를 볼 수는 없을까. 8월 30일 개봉. 92분. 전체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