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만 더 머물러줘"…플랫폼은 지금 '게이미피케이션' 열풍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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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에 게임 넣는 플랫폼
그립, 미니게임으로 생필품 보상
컬리·올웨이즈는 농사게임 접목
매일 퀴즈내는 헬스케어 플랫폼도
게이미피케이션 시장 연 28% 성장
한국, 인앱게임 활성 유저 많아
"금전 보상인데 규제 없는 건 문제"
게임에 빠진 커머스 플랫폼
23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그립은 최근 ‘그립런’이라는 이름의 미니게임을 도입했다. 앱에서 계란, 햇반, 컵라면 중 받고 싶은 상품을 고르면 게임이 시작된다. 게임 속 캐릭터를 뛰게 하면 포인트를 얻는다. 라이브방송을 보거나 채팅에 참여하면 포인트 수십 점을, 상품을 사면 수백 점을 받을 수 있다. 안현정 그립컴퍼니 부대표는 “게임 보상으로 실물 상품을 무료로 배송해주기 때문에 큰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공동구매 플랫폼 올웨이즈의 올팜과 공구마켓이 운영하는 공팜도 컬리팜과 비슷한 구조다. 올팜 이용자는 친구 초대나 상품 구경 등을 통해 작물 성장에 필요한 물과 비료를 얻는다. 매일 접속할 경우 한 달 안팎이면 작물을 수확해 배송받을 수 있다. 다른 이용자와 ‘맞팜’을 하면 수확이 더 빨라진다. 농수산물 직거래 플랫폼 팔도감도 앱에서 한우를 키워 실제 차돌박이 상품을 받는 목장 게임을 최근 내놓았다.
“앱 체류시간 늘려라”
플랫폼들이 인앱(In-App) 게임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건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용자를 자주,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한 전략에서다. 오픈서베이에 따르면 한국인은 1인 평균 6개의 쇼핑 앱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 중 실제로 사용하는 앱은 3~4개다. 이용자들을 매일 접속시킬 유인이 있어야 실제 구매로 이어진다. 게임은 정기적인 앱 접속과 체류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올팜을 운영하는 올웨이즈의 이용자 월평균 사용일 수는 18.6일로 대형 쇼핑 앱인 쿠팡(15일)보다 많다. 하루 평균 사용시간도 34분으로 쿠팡의 3배 수준이다. 한 플랫폼 관계자는 “인앱 게임으로 활성 이용자를 확보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컬리에 따르면 마이컬리팜을 오픈한 지난 1일과 비교했을 때 9일 컬리팜 이용자의 컬리 앱 방문 횟수는 3배가량 많았다.
헬스케어나 금융 플랫폼들도 앱에 게임을 넣고 있다. 병원 예약 앱인 굿닥은 앱 안에 미니게임을 넣어 환자들이 진료 대기 시간에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헬스케어 플랫폼 캐시워크는 다양한 종류의 5분게임과 퀴즈를 배치했다. 일간활성이용자 수(DAU)가 많을수록 플랫폼 내 광고 단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DAU 300만 명 수준인 캐시워크는 앱 광고 매출이 전체 매출의 80%가 넘는다. 업계 관계자는 “이용자들이 적립한 포인트를 게임 과정에서 쓰도록 유도해 비용을 줄이려는 플랫폼들도 있다”고 했다.
MZ 세대 겨냥한 특화 전략
전 세계 게이미피케이션 시장 규모는 2016년 49억1000만달러(약 6조5700억원)에서 지난해 134억달러(17조9300억원)로 불었다. 연평균 28%씩 증가해 2030년엔 968억달러(약 19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앱 내 미션을 수행하면 포인트를 주는 것도 게이미피케이션 전략의 일환이다.SNS와 숏폼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즉각적인 미션과 피드백을 원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게이미피케이션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직구 플랫폼인 알리익스프레스가 알리앱 내 게임 DAU를 분석한 결과 한국에서 인앱 게임을 즐기는 활성 유저 수는 다른 국가들 평균 대비 2배 이상 많았다. 하루 평균 체류시간 역시 20분이나 됐다. 디지털화가 잘된 한국에서 게이미피케이션 전략이 잘 통하는 셈이다.
오상엽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원은 “MZ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로 모바일 기기와 게임에 익숙하고 재미 요소를 중요하게 여긴다”며 “헬스케어, 교육,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게이미피케이션이 일어나는 배경”이라고 했다. 높은 물가로 ‘식비 방어’를 위한 앱테크가 유행하고 있는 것도 플랫폼들이 앞다퉈 게임을 도입하고 있는 이유다.
“규제 밖 갬블링 요소 주의해야”
게임 요소를 플랫폼에 무분별하게 적용할 경우 브랜드 평판에 타격을 입거나 상술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미국 주식거래 플랫폼 로빈후드는 이용자가 주식거래를 할 때마다 게임처럼 앱 화면에서 폭죽을 터뜨렸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증권당국은 “초보 투자자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면서 보호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며 로빈후드를 고발했다.국내에서도 플랫폼들이 인앱 게임을 통해 이용자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한 운동 앱 대표는 “이용자를 현혹하기 위해 갬블링 요소가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다”며 “게임은 등급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플랫폼은 정식 게임이 아니라는 이유로 규제 밖에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게임산업법은 이용자에게 경품을 제공해 사행성을 조장하면 안 된다는 의무를 게임 사업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플랫폼들의 인앱 게임은 등급 분류 대상이 아니라 별도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신고가 들어올 경우 모니터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 게이미피케이션
이용자의 관심이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게임이 아닌 분야에 게임의 메커니즘, 사고방식, 디자인 요소 등을 적용해 재미와 보상을 제공하는 것.
고은이/허란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