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공원 지하성지…슬픔을 숨기자, 순교자들의 빛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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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세연의 스페이스 오디세이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성지로, 과거 잔혹했던 박해 속에 순교당한 천주교인들을 기념하는 곳이다. 이번 칼럼은 ‘기념’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고자 한다.
천주교 순교 성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요즘 세대는 와닿지 않는 순교
박해 당한 수난사 알리기보다
아늑하고 신성한 공간 만들어
선입견없이 다가갈 수 있게 해
돌을 쌓아 무언가를 기억하는 것은 인간만이 하는 일이다. 기념의 형식으로 지칭되는 이것은 시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됐다. 현대에는 미니멀리즘이 이 형식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싱턴DC 베트남 참전용사기념비, 911 메모리얼,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런 형식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도 많다. 모든 것을 너무 추상화한 형식이 어떻게 기억을 전달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올바른 정보 없이는 올바른 기억도 없기 때문이다.비극을 기리는 추모 공간의 ‘추상성’은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들이 현대인에게 다가가기 위한 접근 방식이다. 더 이상 우리와 상관없는 과거에 선입견 없이 다가갈 수 있게 한다. 특정 계급에 종속되거나 그들을 위하지 않는 민주적인 디자인으로 ‘잊혀간 개인들’을 기념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직접적인 상징성이 부족해 정보 전달이 다소 부족하다는 문제는 물론 남아있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전체적으로 이런 특성을 갖고 있다. 이곳은 길게 나 있는 길을 걷게 하고 공간 자체의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박물관 각각의 공간에 기념을 위한 의미는 분명히 있지만 모든 공간이 의미에 매몰돼 천주교의 수난사를 이야기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간이 좋았다’고 기억하게 된다. 이 중 사람들이 특히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곳은 지하 3층의 하늘광장과 콘솔레이션 홀이다. 18m 높이의 공간이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하늘광장은 네 면의 벽과 바닥까지 모두 적벽돌이 촘촘하게 쌓여있다. 하늘광장 맞은편에는 어둡고 거대한 매스가 바닥에서 2m 떠 있는데, 이 매스를 머리 위에 두고 내부로 들어서면 3개 층 높이의 거대 공간이 나타난다. 콘솔레이션 홀인 이곳에서는 공중에 떠 있는 벽에 흘러다니는 영상으로 인해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 같다. 어두운 공간의 중앙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 빛만이 공간을 밝혀 신성함과 엄숙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런 공간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관람객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간에서 느낀 그 좋음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정보를 찾아보고,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해보는 일 말이다. 특정 주체가 선별한 역사에 기대는 것이 아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역사를 세워보는 일이다. 그것이 현대인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어야 하고 현대의 기념 공간들이 지지하고 있는 방식인 것이다.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