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축구, 프랑스는 요리…문화 마케팅은 그 나라 사람들이 열광하는 걸 찾는데서 시작" [책마을]

삼성, 유럽에서 어떻게 명품브랜드가 되었나?

김석필 지음/아트레이크
248쪽|1만8000원
2005년 삼성전자는 영국 프로 축구팀 첼시FC와 후원 계약을 맺었다. 삼성이 5년에 5000만파운드(약 1000억원)를 지급하고, 첼시 선수들은 ‘SAMSUNG’이란 글자가 붙은 파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는 계약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계약 연장을 거쳐 2015년까지 이어진 삼성의 후원 기간 첼시는 영국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회, FA컵 4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유로파리그 1회 우승했다. 삼성이 누린 홍보 효과는 상당했다. 이 기간 삼성은 유럽 휴대전화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였던 핀란드 노키아를 제치고 선두로 나섰다. TV 등 가전을 포함해 삼성전자의 유럽 매출은 2배 넘게 늘었다. ‘유럽에서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 1위에 올랐다.
<삼성, 유럽에서 어떻게 명품브랜드가 되었나?>는 당시 삼성전자 영국 법인장, 프랑스 법인장, 유럽총괄을 차례로 맡으며 ‘문화 마케팅’을 주도했던 김석필 전 삼성전자 부사장의 책이다. 2018년 회사를 떠나 현재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는 비바체랩 대표를 맡고 있는 그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대표는 “딱딱한 경영서나 ‘나 때는’하고 잘난 척하는 책이 아니라 내 경험을 그냥 들려주고 싶었다”며 “젊은 사람들이 꿈을 갖고 도전하는 데 도움을 됐으면 하는 마음에 책을 썼다”고 했다.2005년 1월 삼성전자 영국 법인장으로 부임한 그는 ‘첼시와 후원 계약을 맺으면 좋을 것 같다’는 직원들의 업무 보고를 받고 곧 수긍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열광하는 핵심적인 것, ‘패션 포인트’를 찾아 마케팅해야 한다는 평소 지론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첼시의 상징색이 파란색으로 삼성과 같았고, 연고지인 런던 첼시가 부촌이라 ‘프리미엄 브랜드’로 나아가야 하는 삼성의 방향과도 잘 맞았다.

수백억원의 지출을 놓고 서울 본사를 설득하는 건 쉽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프리미어리그의 인기가 높지 않았다. 첼시는 급부상 중이긴 했지만 명문 구단과는 거리가 멀었다. 본사는 월드컵이나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를 후원하는 게 낮지 않겠냐며 주저했다.

“애절한 설득이 이어졌습니다. 최고재무책임자(CFO)까지 영국에 모셔 와 현장을 보여드리고요. 마침 이기태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 아들이 미국 유학 중이었는데, 이 사장이 아들 통해 알아보더니 결재를 해주더라고요. 첼시가 미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인 게 도움이 됐죠. 클린턴 대통령의 딸 이름도 런던 첼시에서 따 온 거고요.”
막상 첼시와 정식 계약을 맺으려 하자 연락이 두절됐다. 삼성에선 일단 오케이가 나면 특명처럼 반드시 결과물을 가져와야 했기에 김 대표와 당시 김인수 유럽총괄은 점점 초조해졌다. 노키아도 첼시 후원에 관심을 가진 게 문제였다. 첼시도 휴대전화 1위였던 노키아에 끌렸기에 삼성 측 연락을 받지 않았다. 실무자가 아닌 브루스 벅 첼시 회장을 만나 담판을 지었다. 삼성과 손을 잡으면 동남아와 중국까지 첼시를 알릴 수 있다고 설득했다. 같은 ‘블루 동맹’ 아니냐고 했다. 그렇게 바로 그 자리에서 확답을 받았다.

2년 뒤 프랑스 법인장으로 옮긴 뒤에도 그의 문화 마케팅은 빛을 발했다. 김 대표는 “영국에서 축구로 대박이 났기 때문에 프랑스에선 PSG와 후원 계약을 맺으려 했었다”고 말했다. 현지 직원들이 반대했다. “영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축구 말고도 즐길게 많다”고 했다.

실제로 프랑스 법인이 설문을 벌인 결과 프랑스인들의 관심사는 미술, 영화, 패션 등으로 나타났는데 그중에 으뜸은 요리였다. 삼성이 프랑스에선 ‘쿡 마케팅’을 벌인 배경이다. 미슐랭 3스타 요리사인 에릭 프레숑을 삼성을 홍보대사로 삼았다. ‘가이드 샹페라르’라는 음식점 안내서를 후원하고, 주요 거래처 사람들을 유명 레스토랑에 초대해 대접했다. 축구와 요리만이 아니라 영국에서는 대영박물관·해로즈백화점·승마 등을, 프랑스에서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루브르 박물관 등과 파트너 관계를 맺으며 전방위적으로 문화 마케팅을 펼쳤다.
물론 후원만 한다고 문화 마케팅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많은 중국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유럽에서 스포츠 및 예술 마케팅을 펼쳤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 대표는 “문화 마케팅은 자기와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한다”며 “우리가 자랑하고 싶은 것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 그 나라 사회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앞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관되고 전면적인 문화 마케팅이 이뤄지기 위해선 경영진의 이해와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예컨대 영국과 프랑스는 이웃 나라지만 다른 점이 많다. 본사가 이런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의 마케팅 전략을 유럽 전역에 강제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음식 마케팅을 펼칠 때 시답잖은 걸 한다고 탐탁지 않게 보는 시선도 많았다”고 했다. 그가 개인적으로 얻은 교훈은 “도전은 도전한 만큼 이루어지고, 도전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 법인장 시절 사무실에 걸어놓은 것도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글귀였다. 그는 “취업 등 어려움이 많은 것을 알지만 한국 밖에 여전히 많은 기회가 있다”며 “젊은이들이 큰 세상을 보고, 해외로 나가 도전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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