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도 반한 파스텔톤 집...'변치 않는 건축' 그리는 젠 박

공근혜갤러리 개인전 '계속되는 여정: 서울'
젠 박 작가(38)는 늘 서울만 오면 자신이 '이방인' 같았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후 줄곧 그곳에서 자라서다. 한국 미술을 알고 싶은 마음에 파슨스 디자인스쿨과 소더비 인스티튜트를 졸업한 후 홍익대학교 미대 석사 과정을 밟았지만, 그래도 서울은 여전히 그에게 낯선 곳이었다. 서울은 잠시 머무르고, 곧 떠날 곳이었으니까.

그랬던 젠 박 작가가 서울에 소속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서울의 집'을 캔버스에 담으면서부터다. 네모난 고층 빌딩부터 고즈넉한 한옥까지,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약 3년간 서울에 머무르면서 그는 한남동, 삼청동, 청담동, 광화문 등 도심 곳곳에 있는 건물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곤 따뜻한 파스텔톤의 색면으로 집들을 캔버스에 옮겼다.
최근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개막한 '계속되는 여정: 서울'은 그 결과다. 성인 키를 훌쩍 넘는 높이 2m의 작품은 언뜻 보면 색으로 가득 채운 추상화 같다. 하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과 한옥의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전시장에서 만난 젠 박 작가는 "자연도, 사람도 모두 변하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건 건축 뿐"이라며 "집을 그리는 동안 그토록 갈망했던 안정감과 질서를 찾았고, 비로소 서울에 대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림의 영감은 레고에서 얻었다. 젠 박 작가는 "어렸을 적부터 레고를 취미로 수집하곤 했는데, 단순한 형태와 선에 매료돼 작업에 접목했다"고 했다. 작품의 제목이 '레고스케이프'(Legoscape)인 이유다. '레고'(Lego)와 '탈출'(Escape), '풍경(Landscape)'을 합쳐서 만든 단어다. 젠 박 작가는 이런 그림으로 올 4월 한국화랑협회가 선발한 10명의 '젊은 아티스트' 중 대상과 포르쉐코리아가 직접 선정하는 아티스트 특별상을 동시에 받았다.
이번 전시에선 관객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한 새로운 작업도 선보였다. 나무 원목와 린넨을 활용해 캔버스 안에 그린 집을 3차원으로 구현했다. 관객들은 실제 의자처럼 작품 위에 앉아볼 수 있다. 관객들이 직접 레고처럼 집을 쌓아볼 수 있는 블록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전시는 9월 23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