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역사는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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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에 행정권 이관받은 대한민국광복절을 맞아 건국 시점에 관한 논쟁이 일었다. 건국처럼 힘들고 긴 세월이 걸리는 일에서 특정 시점에 큰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의견이 엇갈린다.
이승만, 남한 주도의 통일 기대
산업·치안 불안한 사회분열기에
공정선거로 자유민주주의 달성
역사적 변화는 오래 걸려
사건마다 상징성 논란 이어질 것
복거일 사회평론가·소설가
“이 민국(民國)은 기미년 3월 1일에 우리 13도 대표들이 서울에 모여서 국민대회를 열고 대한독립민주국임을 세계에 공포하고 임시정부를 건설하야 민주주의에 기초를 세운 것입니다.” 1948년 5월 31일의 제헌국회 개회식에서 국회의장 이승만이 밝힌 견해다. 독립운동과 정부 수립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 그의 견해는 후세 역사가들이 되살릴 수 없는 생생함을 지닌다.대한민국 임시정부는 26년 동안 존속했다. 그러나 일본의 위세에 눌려 단 한 나라도 우리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도에서 사라진 조국이 세계 사람들로부터 잊히는 것을 막기 위해, 임시정부 요인들은 끊임없이 애썼다. 그리고 일본의 패망이라는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거머쥐었다. 이처럼 오래 존속하고 끝내 성공한 임시정부는 현대사에서 또 없었다.
힘이 약한 임시정부로선 외교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외교에선 세계 정치의 중심인 미국에서 활약한 이승만의 공이 컸다. 그가 세운 업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러시아가 한반도를 차지하는 것을 막은 일이다.
얄타 회담에서 러시아가 한반도를 차지하는 것을 미국이 묵인했다는 정보를 이승만은 1945년 봄에 얻었다. 그는 유엔 창립총회가 열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얄타 협정에 조선을 러시아에 넘기기로 한 비밀 협약이 있었다’고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 그의 폭로는 미국과 영국의 정계를 뒤흔들었다. 당황한 미국 국무부는 이승만의 주장을 부인하는 성명을 냈고 조선의 독립을 약속한 ‘카이로 선언’은 유효하다고 확인했다. 이 확인으로 대한민국이 들어설 자리가 마련됐다.실제로, 1945년 8월에 미군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해서 러시아군과 미군이 나눠 점령하는 방안을 러시아에 제안했고 러시아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일본 본토 점령만을 계획했던 미군이 남한에 진주하게 됐다.
자연히, 이승만은 남한을 국토 수복의 전진 기지로 여겼다.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면, 궁극적으로는 남한의 주도로 통일되리라고 봤다. “다만 한 도(道)나 한 군(郡)으로만이라도 정부를 세우자”는 그의 주장은 그런 판단에서 나왔다.
1948년 8월 15일 밤 12시에 행정권이 미군정청에서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됐고 대한민국이 세워졌다. 그러나 그 뜻깊은 일도 실제로는 선언적 사건이었다. 대한민국의 실체는 아주 허약했다.가장 급한 것은 해외와 북한에서 온 수백만 동포를 재우고 먹이는 일이었다. 북한이 단전한 터라, 산업은 마비됐고 비축된 식량은 없었다. 치안도 불안했다. 4·3사건이 아직 평정되지 못했는데, 국군의 일부가 반란을 일으킨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났다. 경제적 평등과 농업 발전에 필수적이라고 여겨진 농지 개혁은 어쩔 수 없이 큰 저항을 부를 터였다. 법의 기본 원칙인 ‘형벌불소급 원칙’을 깨뜨린 법이라서 조심스러워야 할 ‘반민족행위처벌법’은 비현실적으로 보복적이었다. 그래서 사회를 정화해서 융합시킨다는 목적을 지닌 법이 오히려 사회 분열을 심화시켰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앞날은 어두웠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이 어려운 상황을 헤치고서 나라의 틀을 세웠다. 1950년 5월 30일엔 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졌다. 신생 국가가 맞는 가장 큰 정치적 위험은 첫 지도자의 독재다. 대한민국은 이 어려운 시험을 거뜬히 통과하고 튼실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비로소 건국의 과업이 마무리된 셈이다.
이 선거가 치러지고 채 한 달이 안 돼 일어난 6·25전쟁은 그 사실을 확인해줬다. 초기 전투에서의 완패라는 충격에도 대한민국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북한군을 물리쳤다. 중공군의 불법 개입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통일이 됐을 터이다.
역사적 변화들은 오래 걸린다. 그 과정에서 나온 특정 사건에 큰 상징적 뜻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 천성이다. 그래서 임시정부, 해방, 광복, 건국과 같은 주제들에 관한 논란은 이어질 것이다. 역사는 이어진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