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바흐를 연주하리라, 맑고 깊은 울림의 바흐를

[arte]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의 ‘로드 오브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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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봄, 아마도 나는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인천 공항에 가는 길이었다. 낮 시간이라 그런지 왠일로 올림픽 대로 위 차량이 많지 않아 도로 위 여유로움이 한껏 느껴졌고, 그날따라 한강에 비친 햇살도 유난히 반짝거렸다. 아니 모르지, 전날 했던 연주가 마음에 들어 나의 마음이 그저 편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으니까 말이다. 연주자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다. 어제 연주가 좋았으면 다 좋고, 오늘 연습이 불만족스러웠으면 세상 모든것이 짜증 가득하게 느껴진다. 내가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이 변덕스럽지만 어쩌겠나, 그냥 그런걸.

아무튼 애플뮤직의 플레이리스트를 켜놓고 가만히 창 밖의 나무와 강을 보고있던 그때, 귓가에 들려오는 첼로 소리가 갑자기 유영하던 의식을 사로잡았다.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아르페지오네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고백하건데 나는 저음악기의 낮은 음역대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낮은 음역은 귀가 익숙하지 않아 음의 미세한 구석까지 듣기 위해서는 신경을 너무 곤두세워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저음 일수록 반응이 느린 악기들의 특성상 음색의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취향과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첼로 소리는 나의 귀를 즉각 반응하게 했다. 마치 은색의 빛처럼 이어지는 음색과 물위를 흐르는 듯한 프레이징, 그리고 애수 가득한 음악의 흐름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좋은 음악이란 그렇다, 그 음악과 나, 이렇게 둘만 있는 것 처럼 한 순간 주변의 모든 공기를 사적이고 은밀하게 만든다. 슈베르트를 이토록 아름답게 풀어나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도대체 이게 누구지.

서둘러 연주자를 찾아보았다. Anne Gastinel(안느 가스티넬), 바이올리니스트인 나에겐 생소한 이름이다. 재빨리 구글 검색을 해보니 프랑스의 첼로 연주자이며 리옹 콘서바토리의 교수로 재직한다고 하는데 내가 몰랐을 뿐 오래동안 활동을 해온 연주자인듯 했다. 멋진 연주자를 처음으로 알게되는 경험은 새롭고 짜릿하다. 신기하게도 분야가 뭐든 “이거다!” 라고 느낄 때 마다 열에 아홉은 프랑스 사람인 내 취향도 참 한결같다고 느끼며 그날 부터 바로 그녀의 앨범을 도장깨기 하듯 하나 하나 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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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모든 앨범이 주옥 같았다. 판타지로 가득한 그녀의 연주는 곡이 무엇이든 자유롭게 공명을 가로질렀다. 처음 들었던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부터 슈만의 아다지오 까지, 첼로가 이렇게까지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마치 묵직한 색깔의 비단처럼, 그녀의 연주는 매 순간 변화하면서도 매 순간 깊었다. 이런 연주는 기억에서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연주이고, 내가 지향하는 연주이기도 하다. 나는 바로 이렇게 환상의 세계로 가득한 연주를 언제나 꿈꾼다.

대부분 감동적인 그녀의 앨범 중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 솔로 바흐 앨범을 골라야 할 것 같다. 이 앨범을 6월에 처음 듣고 8월 말인 지금까지도 무한 재생 중이니 말이다. 다른 어떤이의 소리나 아이디어가 섞이지 않아서인지, 이 앨범은 그녀의 앨범중에서도 특히나 더 나를 강력하게 사로잡는다. 한시도 동면하지 않는 살아있는 음악이랄까.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그녀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듯 항시 유기적으로 지니고 있는 소리다. 마치 몸을 관통하는 듯한 엄청난 공명감이 현의 떨림을 한껏 증폭시키고, 그 떨림이 공간을 가득 메우며 터질듯한 생명을 만들어 낸다. 의식적인 음악의 해석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마치 소리 그 자체에 심연 밑바닥 까지 집중한 그녀가 음악의 여정을 그저 따라갈 뿐,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깊은 집중이 느껴진다.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이 순수한 결정체로 합쳐졌을때 바로 이런 소리, 이런 음악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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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첼로 Suite은 바이올린 솔로 모음곡에 비교한다면 파르티타 악장들과 유사하다. 대부분의 악장이 춤곡의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렇기에 마치 소리에 부력감이 있는 듯, 탄력과 유영이 동시에 느껴지게 하는 것이 특히 까다롭다. 활의 움직임을 고도의 세심함으로 감지함과 동시에 왼손에서 타력감을 유지하여 그 두개의 물리적 힘이 서로를 균형잡도록 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정말이지 불가능에 가능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을 정도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균형감을 처음 부터 끝까지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것이 바로 Anne Gastinel의 솔로 바흐 앨범이다.

언젠가는 이런 바흐를 연주하리라, 생각해본다. 맑고 깊은 울림이 머리와 마음을 정화하는 듯한 바흐 말이다. 이렇게 소리 그 자체로 따뜻함을 머금고 있는, 그리고 자연의 빛처럼 순수함으로 가득차 있는 음악은 듣는 이를 변화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두를 포용하는 듯 하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들로 가득한 음악의 힘이 오늘도 나를 악기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