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 목숨의 대가로 기부한 美 부호... 그걸 거부한 미술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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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심상용의 이토록 까칠한 미술
“사회적인 것은 세상의 왕의 영역이다. 사회적인 것에 대하여 우리가 갖는 의무는 악을 제한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 뿐이다. .... 사회적인 것에 붙여진 신성의 이름표, 그 황홀한 혼합 속에 모든 방종이 들어있다. 변장한 악마.”
-시몬 베유(Simone Weil)- 1)
-시몬 베유(Simone Weil)- 1)
거액 기부금 사절받은 새클러 가문
1892년 뉴욕에서 설립된 제약회사 퍼듀파마가 1952년 새클러(Sackler) 가문에 인수되었다. 포브스지 선정 미국 부호 19위, 가족 구성원 20명의 자산이 130억 달러(15조4천억원)에 달하는 부호 가문으로, 특히 미술계에 대한 자선사업으로 잘 알려졌다. 세계적인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기부자 목록에서 새클러라는 이름 석 자와 마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2)몇몇 사례를 들어보자. 새클러 가의 기부금 350만 달러로 인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고대이집트 덴더 사원이 위치한 곳에 ‘새클러 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스미스소니언에도 새클러 재단이 출연한 400만 달러와 1000여 점의 미술품으로 설립된 아서 M. 새클러 갤러리가 있다. 1985년 하버드대학 미술관산하에도 아서 M. 새클러의 이름으로 설립된 아시아 미술관이 있다. 새클러 가의 기부는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구겐하임 미술관(뉴욕)은 249만 달러를 받아 ‘새클러 센터’를 건립했다. 부르클린 미술관 안에 있는 ‘엘리자베스 A. 새클러 여성주의 미술 센터’는 아서 A. 새클러의 딸이자 브루클린 미술관의 이사인 엘리자베스 새클러가 창립자다.퍼듀파머 사가 2020년 1월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열렸던 데미언 허스트의 회고전 《알약들》전의 메인 스폰서였다는 것은 조금도 놀랍지 않다. 허스트가 1980년대에 했던 <Medicine Cabinet> 같은 설치물에도 이런 성격의 후원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최근 런던 국립초상화 갤러리는 새클러 가가 제안한 130만 달러의 기부금을 거부했다. 테이트 모던, 뉴욕의 구겐하임, 파리의 루브르와 런던의 브리티시 뮤지엄 등이 연이어 새클러 가문의 기부금을 사절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파티를 중단하겠다는 것인가.
새클러 기부금은 '50만명 목숨의 대가'
미술계에 대한 새클러 가의 기부금은 이 가문이 소유한 퍼듀파머 사가 1996년 시판을 시작한 오피오이드계 진통제인 옥시콘틴을 통해 벌어들인 350억 달러와 무관하지 않다. 오피오이드는 뇌에 보내는 신호를 차단해 극심한 통증을 완화하는, 모르핀이나 헤로인 성분의 마약성 진통제의 총칭이다. 수술 후 환자나 암 환자 등에 주로 처방되지만, 중독성이 강하고, 정신착란, 호흡 저하 등의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50만명
2014년 한 예술가가 손목 수술 후, 오피오이드 계열의 진통제 옥시콘틴을 처방받았다. 퍼듀파머가 만든 바로 그 진통제다. 옥시콘틴의 복용으로 이 예술가는 순식간에 모르핀 중독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하루 3정이었던 것이 어느새 18정으로 늘었다. 지급된 창작 보조금 전부를 쏟아부어도 약값조차 모자랄 지경이 되었지만, 상태는 더 심해져 마약 흡입으로 이어졌다. 이후 2개월 반의 재활 치료로 가까스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의 사진작가 낸 골딘 이야기다. 골딘은 옥시콘틴 중독 사건의 배후에, 카메라 렌즈로는 포착할 수 없는 진실이 있음을, 그리고 그 한가운데 새클러 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새클러 가는 옥시콘틴의 중독성을 축소, 은폐하고, 오남용을 주도하는 용의주도한 제품 컨설팅을 통해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했다. 세계적인 컨설팅 그룹 매킨지와 월마트의 마케팅 기술이 화를 키웠다. 이들의 마케팅 포인트는 옥시콘틴을 “안전하고 중독성이 적은” 기적의 의약품으로 믿게 만드는 것이었다.
학회를 가장해 의사들에게 선심성 여행을 제공하기, 심지어 수련의, 일반 개업의, 간호사까지 누락 없이 마사지하기, 영업사원들에게 판매나 처방 횟수에 따른 인센티브 제공, 도매상 리베이트, 소비자 쿠폰…. ‘공격적인 마케팅’을 위한 기술들이 구사되었다. 정치인들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이 뿌려졌다.미국식품의약국(FDA)은 당초 '수술 후 단기 복용 진통제'로 분류되었던 옥시콘틴을 '매일 장기간 치료제'로 변경 승인해, 결과적으로 오남용을 승인하는 역할을 자행했다. 그 결과 1997년 67만 건이었던 처방 횟수는 2002년에는 620만 건 이상, 2016년엔 1.400만 건에 달했다.3)
이렇게 축적된 부의 극히 일부가 세계의 주류 미술 기관들에 기부되어 이미지 세탁을 주도하는 지난 20년 동안, 옥시콘틴의 오남용으로 거의 50만 명의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미 질병통제예방센터 추산) 목숨을 잃지는 않은 250여만 명의 중독자들도 있다.4)
낸 골딘과 새클러간 전쟁은 현재진행형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대가로 예술이 번성하는가? 예술은 자선을 빙자하는 이미지 세탁술의 일환으로 스스로를 고용한다. 미술관들이 규모를 과시하고, 시장이 파티를 알리는 폭죽을 쏘아 올릴 때 사람들은 크게 미혹된다. 베유가 말하지 않았던가. “의식은 사회적인 것에 속는다.”5) 그렇기에 정화를 위해서는 사회적인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자신이 희생자가 되는 경험을 통해 낸 골딘은 사회적인 것에 대한 응시에 이르렀다. 비로소 세계의 실제적인 모습 뿐 아니라, 그것의 ‘황홀한 혼합’인 예술의 실제적인 모습에도 한층 다가서도록 허락된 것이다. ‘희생자 감각’이 세계에 대한 인식, 사회적인 것에 대한 응시의 밀도를 비약시킨 것이다.
이로 인해 그녀는 이제껏 자신이 해 왔던 방식의 사진찍기를 더는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예술가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은 뷰파인더가 포착하는 협착한 세계 내에서의 안락한 체류를 끝마치고, 그녀 자신의 표현대로 “악취가 풍기고 추잡한” 세계로 걸어 나오는 어떤 것이어야 했다.
2019년 2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골딘은 ‘옥시콘틴 부작용 사망자 40만 명’, ‘하루에 200명 꼴’, ‘세클러는 수치심을 가지시오’ 등의 구호가 적힌 전단을 뿌리며 기습시위를 벌였다. 널부러진 시체들이 구겐하임의 원형 로비를 채웠다. 퍼포먼스의 일환이다. 그 주검들이 죽음의 기부금을 거절할 것을, 막대한 기부금으로 위장한 도덕적 타락과 문화적 은폐를 미술계에서 추방하는 데 앞장 서줄 것을 미술관에 촉구하는 듯했다.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다. 2020년 뉴욕주 정부 등에 의해 다양한 소송이 진행된 결과 퍼듀파머에 180억 달러(21조 3천억원)의 벌금이 청구되었지만,6) 2023년 5월 뉴욕주 항소법원은 2020년 신청된 퍼듀파머의 파산보호신청을 허용해 결과적으로 새클러 가문의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책임을 면해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낸 골딘의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7) 그녀가 퍼듀파머와 그 소유주 새클러 가문과 맞서 싸운 과정을 다룬, 로라 포이트러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가 2022년 제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2023년 제95회 아카데미상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작이기도 하다.
▶이 글과 관련된 넷플릭스 시리즈 <페인 킬러 > 리뷰: 넷플릭스 시리즈 <페인킬러>의 6개 에피소드는 매번 유족의 실제 증언으로 시작된다. 말기암 환자를 위한 마약성 진통제가 어쩌다 흔하디 흔한 길거리 마약이 됐는가. 또 다른 진통제 펜타닐 남용으로 악몽을 겪고 있는 미국에선 중대한 이슈다. <페인킬러>는 이 비극을 초래한 제약사, 의학계, 당국의 거짓말과 무책임을 고발한다.
1) 시몬느 베유, 『중력과 은총』, 윤진 옮김 (서울: 문학과지성사, 2021) p.213.
2) 옥스퍼드, 케임브릿지, 컬럼비아, 티브츠, 텔아비드 대학에도 새클러의 이름을 딴 연구소, 도서관 센터가 있다.
3) 이 심의를 맡았던 FDA의 담당 심의관 2명은 몇 년 뒤 퍼듀 파마의 간부가 되었다.
4) 홍순철, 「'옥시콘틴 사건', 美 '새클러 가문'의 탐욕이 낳은 비극」, 『한국경제』, 2021.4.30.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1042927581
5) 시몬느 베유, 앞의 책, pp.213-214.
6) 「수십만 명 사망 美 '마약성 진통제' 사건 합의 될까?」, 전성운, 헬스코리아뉴스. 2020.8.19
https://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313390 혐의는 기만적인 광고, 과도한 옥시콘틴을 처방하도록 의사들에게 불법 로비를 벌인 것들이 골자였다.
7) https://kangjoseph.tistory.com/1353. 낸골딘 다큐멘터리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최대 100억 달러(약 11조원) 규모의 합의안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반면 판매 촉진 전략을 수립해준 적극적인 홍보 마케팅으로 남용을 조장한 월마트 등은 막대한 배상금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