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가수를 춤가수, 무용가수로 안 부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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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옥희의 숨은 춤 찾기
그런데 왜 댄스가수는 ‘무용가수’나 ‘춤가수’가 아닐까요? 댄스나 무용, 춤이 같은 뜻이라면 후자의 단어조합이 더 자연스러울 텐데요. 하나의 단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태와 의미가 변하고 다른 단어들과의 관계 속에서 섬세하게 구별됩니다. 오늘날 이 용어들은 구별 없이 사용되곤 하지만 그 뉘앙스까지 같은 것은 아닙니다. 댄스가수를 댄스가수라 불러야 왠지 자연스러운 이유는 뭘까요? 이를 이야기하려면 ‘추석이란 무엇인가’처럼 ‘춤/무용/댄스란 무엇인가’를 물어야겠지만, 칼럼의 길이 제한 상 ‘춤/무용/댄스는 어떻게 다른가’만 다루고자 합니다.
그러나 20세기 초 서양에서 사교춤과 민속춤이 유입되자 이를 ‘무도(舞蹈)’나 ‘딴스’라 불렀습니다. 서양 공관에서 외교관들이 ‘무도회’를 열었다면 모던걸, 모던보이들은 ‘딴스홀’에 모였습니다. 사실 무도는 한자문화권에서 춤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무(舞)는 상체 움직임을, 도(蹈)는 하체 움직임을 지칭합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무용교육기관 명칭이 북경무도학원이라는 점에서 보듯 무도는 지금도 중국어에서 춤 일반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조선에선 전통춤, 특히 기생의 춤과 대비되는 서양 사교춤을 지칭했습니다.예술춤을 지칭하는 ‘무용(舞踊)’도 있습니다. 20세기 초 독일에선 노이에 탄츠(Neue Tanz)라는 새로운 춤 장르가 등장했습니다. 고전발레 형식에서 탈피해 자유로운 표현을 중시한 춤으로 미국 모던댄스와 동시대에 발생했습니다. 일본에서 노이에 탄츠를 ‘신무용(新舞踊)’이라 일역(日譯)하였고, 이시이 바쿠(石井漠)라는 일본 무용가의 공연으로 이 땅에 소개되었습니다. 이후 무용은 노이에 탄츠라는 특정 장르를 지칭하기보다는 서양식 극장예술춤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서양예술인 ‘무용’과 조선 재래의 ‘춤’, 그리고 서양 사교춤인 ‘무도’와 대중문화인 ‘댄스’는 한때 뚜렷하게 구별되며 위계를 형성했습니다. 그래서 1980~1990년대에 성장한 저는 무용학원을 다니고 무용과에 입학해 무용학과 예술무용을 배웠습니다. 춤추는 이에 대한 비하가 팽배하던 시절 ‘무용’은 곧 예술이었고 우월함을 상징했습니다.하지만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합니다. 춤의 가치에 대한 자신감이 충분해지면서 ‘춤’이라는 용어가 돌아왔습니다. 1976년부터 무용평론가 조동화 선생님이 발행했던 <춤>이라는 전문잡지가 춤 용어를 복권시키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면, 춤꾼, 춤판, 춤사위, 춤집 등의 용어가 전통춤을 거쳐 무용계 일반으로 퍼졌습니다. 전근대시기와 같은 용어이지만 긍정-부정-재긍정의 단계를 거쳤으니 의미가 동일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