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겸손을 배우는 긴 수업 시간” [고두현의 인생명언]


“인생은 겸손을 배우는 긴 수업 시간이다.”

소설 <피터 팬>의 작가 제임스 매슈 배리가 한 말이다. 그의 문학적 성취도 겸손에서 나왔다. 그는 낮은 자세로 겸손을 체득한 사람만이 인생의 토양에서 성공의 싹을 틔울 수 있다는 것을 삶과 작품으로 보여줬다.
겸손은 사람됨의 근본이다. 한자로 겸손할 겸(謙)은 말씀 언(言)과 겸할 겸(兼)을 결합한 글자다. 겸(兼)은 벼 다발을 손에 쥐고 있는 형상으로 ‘아우르다’ ‘포용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인격과 소양을 두루 갖춘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말을 공손하게 하는 법이다. 겸손할 손(遜)은 ‘후손에 전하다’의 뜻을 함께 지녔으니 대를 잇는 가르침을 의미한다.

영어 단어 겸손(humility)의 어원은 흙을 뜻하는 라틴어 후무스(humus)다. 흙 중에서도 영양분과 유기질이 많은 부식토다. 사람(human)이라는 단어도 흙에서 유래했다. 겸손은 흙에서 나온 사람을 성장시키는 토양이다.

겸손의 반대어인 교만(驕慢)은 잘난 체하고 뽐내며 건방지다는 말이다. 교만할 교(驕)는 말 마(馬)와 높을 교(喬)로 이뤄져 있다. 말을 높이 타고 아래를 얕잡아본다는 의미다. 병법에서도 교병필패(驕兵必敗)라고 해서 교만한 병사는 적에게 반드시 패한다. 거만할 만(慢)은 마음 심(心)과 ‘손으로 눈을 벌려 치켜뜬’ 모습의 끌 만(曼)을 합친 것으로, 눈을 부라리는 태도를 가리킨다. 영어 거만(haughtiness)이 프랑스어 ‘높은(haut)’에서 왔고, 라틴어 어원도 ‘높은(altus)’이니 겸손과 상반된다.

그러고 보니 성공(success)이란 말도 ‘흙을 뚫고 나온다’는 뜻의 라틴어 수케데레(succedere)에서 왔다. 흙에서 씨앗이 뚫고 나오는 것이 곧 성공이다. 겸손의 땅에 뿌린 씨앗이 더 잘 자란다.

조선 명재상 황희(黃喜·1363~1452)는 세종 때 영의정 18년, 좌의정 5년, 우의정 1년을 합쳐 24년간 정승을 지냈다. 장수 비결은 뛰어난 능력과 겸손의 덕이었다. 그는 나이가 들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몸을 낮췄다. 관노였던 장영실을 과학자로 관직에 올리고, 노비의 아이가 수염을 잡아당겨도 마음 좋게 웃어 ‘허허 정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딱 한 사람, 6진 개척과 여진족 정벌에 앞장선 김종서에게만 예외였다. 북방에서 복귀한 김종서가 삐딱한 자세로 앉아 있는 걸 보고는 “저놈 의자 다리가 한쪽 망가진 모양이니 고쳐줘라”고 따끔하게 혼냈다. 자기 뒤를 이을 재목으로 점찍은 김종서에게 겸손을 가르치려고 일부러 엄하게 대한 것이다.

황희와 함께 조선 명재상 ‘투톱’으로 꼽히는 맹사성(孟思誠·1360~1438)도 겸손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그는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공복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가 맞아들이고 돌아갈 때도 손님이 말을 탄 뒤에야 들어왔다. 이런 자세는 젊은 시절 한 고승에게 배운 것이다.

그는 고승에게 목민관의 도리를 물었다가 “나쁜 일 말고 착한 일만 하라”는 말을 듣고 헛웃음을 지었다. 이에 고승은 찻잔 가득 넘치도록 차를 따랐다. 그가 놀라 잔이 넘친다고 하자 “찻잔이 넘쳐 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라고 했다. 당황한 그가 황급히 일어서다 문틀에 부딪혔다. 그러자 고승이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지요”라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리더의 덕목 중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겸손이다. 미국 경영학자 짐 콜린스도 “위대한 정치가와 최고경영자(CEO)들은 아주 겸손하다”고 말했다.

고두현 시인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