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버린 나, 헤드윅… '뮤지컬 초연 배우'의 무게와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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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송용진의 Oh! 매지컬 뮤지컬2002년, 영화 ‘헤드윅’을 보고 큰 충격에 빠져 ‘헤드헤즈’라 불리는 헤드윅의 팬이 됐고, 더불어 원작자이자 오리지널 헤드윅 캐스트인 ‘존 카메론 미첼’의 팬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영화의 원작이 뮤지컬인 것을 알게 됐고, 언제가 우리나라에서 이 공연이 올라간다면 꼭 국내 초연 캐스트로 무대에 서겠다는 꿈을 꾸었다.
생각보다 그 꿈은 일찍 이루어졌고, 2005년, 뮤지컬 ‘헤드윅’의 초연 캐스트로 무대에 올라, 이후 10년 동안 300회가 넘는 공연을 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2007년, 존 카메론 미첼이 내한해 한국 캐스트들과 함께 콘서트를 열었다.콘서트를 앞두고 기자회견이 있던 날, 당시 내 아이돌인 존 카메론 미첼을 처음으로 만나는 날이었다. 그가 눈앞에 나타나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고, 나는 마치 BTS를 만난 소녀 팬처럼 얼어붙었다. 기자회견이 시작되고 한 기자가 나에게 존 카메론 미첼과 함께 공연하는 소감을 묻자, 난 순간적으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정말 마르고 닳도록 그의 연기와 노래를 보고 들었는데, 그런 나의 우상 옆에 앉아 인터뷰하는 게 꿈만 같아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 울어버린 것이다. 그날 함께 인터뷰한 배우와 관계자들은 아직도 이 일로 나를 놀리곤 한다.
요즘 9월에 개막하는 뮤지컬 ‘셜록 홈즈-앤더슨가의 비밀’의 연습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8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나에게 의미가 큰 작품이다. 2011년에 시작한 이 공연은 내가 셜록 홈즈 역으로 참여해 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함께 성장했다. 뮤지컬 속 노래하는 셜록 홈즈를 표현하기 위해 초연 연습 과정에서 깊은 고민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이후 뮤지컬 어워즈에서 많은 상을 휩쓸고 큰 성공을 거두며 일본에 라이선스를 판매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일본에서 첫 공연이 올라가는 날, 오리지널 캐스트 자격으로 공연에 초대받아 일본 배우들이 연기하는 셜록 홈즈를 객석에서 관람했다. 공연 커튼콜에는 무대에 올라 뮤지컬 셜록 홈즈의 오리지널 셜록 홈즈로서 일본 관객들에게 인사도 하고 함께 커튼콜에도 참여했다. 배우로서 정말 영광스러운 자리였다.당시엔 우리가 주로 해외에서 라이선스 작품들을 들여와 공연했지, 우리가 만든 작품을 해외로 판매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공연 후, 오프닝 파티에서 일본 배우들이 나에게 작품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고, 특히 셜록 홈즈 역의 배우와 캐릭터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 배우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우리 공연 영상과 음반을 많이 참고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 배우들이 한 공연이 우리 배우들의 공연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초연에서 우리 배우들이 만들었던 캐릭터를 참고한 부분이 많은 부분에서 느껴졌다. 우리 배우들이 라이선스 공연을 할 때도 오리지널 캐스트들이 한 공연을 참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부끄러운, 그리고 자랑스러운 나의 일화를 공개하는 이유는 오리지널 캐스트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무대에 서는 배우에게 초연 작품에 오리지널 캐스트로서 무대에 오르는 것은 큰 영광이다. 공연의 특성상 한 공연이 생명을 이어가려면 초연 이후, 재연, 삼연 이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초연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 공연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가 초연에서 대부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 속 캐릭터 역시 초연에서 오리지널리티가 만들어지고, 초연에서 형성된 캐릭터는 이후 공연에 참여하는 배우들에게 기준이 된다. 오리지널리티는 원형, 독창성, 창조력 같은 의미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일반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글로 시작되는 공연은 연출과 창작진 그리고 스태프들의 상상력이 더해져 무대 위에서 형상화된다. 거기에 배우의 상상력이 담긴 캐릭터들이 그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배우가 가진 창조력을 가장 자유롭게 발휘할 기회는 초연에 있는 것 같다. 깨끗한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릴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한 공연이 성공적으로 이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초연 이후에 참여하는 배우들은 초연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를 벗어나 자신만의 것을 만들고 싶어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이미 형성된 캐릭터를 벗어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단 배우뿐 아니라, 그 작품을 만드는 스태프들과 다른 역할의 배우들, 그리고 초연을 함께한 관객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의 발전은 수많은 창작 뮤지컬의 성장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매년 많은 새로운 창작 작품들이 올라가고 만들어지고 있으니, 배우에겐 그만큼 창작 초연에 참여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공연하는 것이다. 공연에 참여하는 대부분 배우가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무대를 준비하겠지만, 특히 초연을 무대에 올리는 배우들은 조금 더 깊은 책임감을 느끼면 좋을 것 같다.
내가 지금 만드는 캐릭터가 전 세계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연습 기간에 더 깊이 있는 고민과 노력을 하기를 바란다. 록키 호러 쇼의 팀 커리나 렌트의 아담 파스칼이나 안소니 랩, 그리고 레미제라블의 콤 윌킨슨처럼 오리지널 캐스트로서 오래도록 기억되는 배우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생각해 보자. 해외에서 처음 만나는 어떤 배우가 우리나라 오리지널 캐스트를 만난 것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