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넘어졌던 볼, 마지막 1,600m 계주에서 드라마 같은 역전극

잉에브릭트센, 남자 5,000m 2연패…모라는 여자 800m 1위
인도 초프라는 남자 창던지기, 바레인 야비는 여자 3,000m 장애물서 첫 우승
여자 높이뛰기 마후치크 "전쟁에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한 우승"
마지막 직선 주로에 진입할 때 선두와 10m 정도 떨어진 채 달리던 펨키 볼(23·네덜란드)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 무서운 속력으로 질주한 볼은 결승선 5m 앞에서 선두로 올라섰고, 그대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2023 부다페스트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나온 드라마 같은 역전극이었다.

대회 첫날 혼성 1,600m 계주에서 선두를 달리다가 결승선 5m 앞에서 넘어져 눈물을 흘렸던 볼은 대회 마지막 경기 여자 1,600m 계주에서는 비슷한 지점에서 역전에 성공했다. 이번에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에 넘어졌고, 볼은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환하게 웃었다.
볼은 28일(한국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3 세계선수권 여자 1,600m 계주 결선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의 앵커(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그는 자메이카,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배턴을 받았다. 선두 자메이카의 앵커 스테이시 앤 윌리엄스(24)와는 15m 정도 거리가 있었다.

결승선에서 100m 정도 떨어진 마지막 직선 주로까지도 볼은 3위였고, 1위와는 1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이후 볼은 무서운 속력으로 질주했고, 니콜 예르긴(26·영국)에 이어 윌리엄스까지 제쳤다. 에벨린 살버그(25), 리이케 클라버르(25), 캐슬린 피터스(26), 볼이 이어 달린 네덜란드는 3분20초72로, 3분20초88의 자메이카를 0.16초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영국은 3분21초04로 3위에 올랐다.

네덜란드가 여자 1,600m 계주에서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육상연맹은 "역사에 남을 역전극"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대회 볼이 겪은 시련을 떠올리면 이번 역주는 더 짜릿하다.

볼은 현지시간으로 이번 대회 첫날인 19일 혼성 1,600m 계주에서 네덜란드 마지막 주자로 나서 결승선 5m 앞까지 선두를 지켰다.

세계 신기록 달성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국 알렉시스 홈스(23·미국)가 맹렬하게 추격했고, 볼은 결승선 바로 앞에서 넘어졌다.

미국은 3분08초80의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볼은 넘어지면서 배턴을 놓쳤다.

일어나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배턴을 다시 잡지 못한 상태여서 네덜란드는 '실격' 처리됐다.

당시 볼은 "오전 예선, 오후 결선을 치르는 동안 피로가 쌓인 것 같다.

결승선을 앞두고 평소보다 느려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고, 경련 증상도 일어났다.

누군가 내 뒤에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 바닥에 쓰러졌다"고 회상하며 동료들을 향한 미안함에 눈시울을 붉혔다.

동료들의 격려 속에 다시 일어난 볼은 25일(한국시간) 개인 종목인 400m 허들에서는 51초70의 압도적인 레이스로 우승했다.

대회 마지막 날, 볼은 단체전에서 역전극을 펼치며 미안한 마음을 털어냈다.

볼은 경기 뒤 세계육상연맹과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힘을 쏟아냈다.

이번 계주는 내게 가장 중요한 경기였다"며 "나는 네덜란드가 이 종목 챔피언이 되길 원했고, 0.1초, 0.001초가 소중했다"고 말했다.

남자 1,600m 계주에서는 미국이 2분57초31로 우승하며,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2분58초45의 프랑스가 2위, 2분58초71의 영국이 3위에 올랐다.
야코브 잉에브릭트센(22·노르웨이)은 13분11초30으로 남자 5,000m 2연패에 성공했다.

1,500m에서 은메달을 딴 잉에브릭트센은 5,000m에서는 마지막 10m 앞두고 모하메드 카티르(25·스페인)를 제쳤다.

카티르의 기록은 13분11초44다.

잉에브릭트센은 "마지막 스퍼트를 위해 에너지를 아꼈다.

전략의 성공"이라며 "1,500m에서 2위에 머문 게, 동기부여가 됐다"고 밝혔다.
여자 800m에서는 마리 모라(23·케냐)가 1분56초03으로 우승했다.

'디펜딩 챔피언' 아팅 무(21·미국)가 700m까지는 선두를 지켰지만, 모라와 킬리 호지킨슨(21·영국)이 막판 역주를 펼쳤다.

호지킨슨은 1분56초34로 2위, 무는 1분56초61로 3위를 했다.

지난해 유진 대회에서 3위를 한 모라는 이번 대회 우승을 차지한 뒤 흥겹게 춤을 췄다.

그는 "지난해 3위를 한 뒤, 나는 더 높은 곳에 서고 싶었고 그만큼 노력했다"며 "좋은 경쟁자가 있어서 막판까지 열심히 뛰었다.

그 결과 금메달을 얻었다"고 기뻐했다.
케냐에서 귀화한 윈프레드 야비(23·바레인)는 여자 장애물 3,000m에서 8분54초29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지난해 유진에서 4위에 머문 야비는 부다페스트에서는 1위를 차지하며 세계선수권 여자 3,000m 장애물에서 우승한 첫 바레인 선수가 됐다.
니라즈 초프라(25)는 인도 육상에 첫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선물했다.

초프라는 남자 창던지기 결선에서 88m17을 던져, 88m82의 아르샤드 나딤(26·파키스탄)을 제쳤다.

나딤도 파키스탄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육상선수권에서 메달(은메달)을 딴 선수가 됐다.

2021년 도쿄 올림픽 금메달, 2022년 유진 세계선수권 은메달에 이어 메이저 대회에서 세 번째 메달을 딴 초프라는 "인도에 또 하나의 메달을 선물하게 돼 기쁘다.

세계선수권 우승은 내게 중요한 목표였다"고 말했다.
야로슬라바 마후치크(22·우크라이나)는 여자 높이뛰기에서 2m01을 넘어 우승했다.

2019년 도하, 2022년 유진에서 연거푸 2위를 하고, 도쿄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딴 마후치크는 마침내 개인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호주 선수로는 처음으로 여자 높이뛰기에서 우승한 엘리너 패터슨(27)과 도쿄 올림픽에서 2위를 한 니콜라 올리슬라저스(26·호주)는 1m99를 넘으면서 성공 시기에 따라 2, 3위에 올랐다. 경기 뒤 마후치크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작은 기쁨이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