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직장을 때려치고 '하콘의 1호 직원'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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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강선애의 스무살 하콘 기획자 노트“저…, 퇴사하겠습니다.”
어렵게 말을 꺼낸 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심사숙고해 닿은 결론이라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애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왔던 직장을 내려놓는 순간의 마음은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기업의 재단에서 만 5년. 이제 막 신입 티를 벗어나 일 좀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때에 내린 결정이었다.공연을 만들고 알리는 일이 손에 익을 때쯤 때때로 나를 붙잡던 생각이 있었다. ‘내가 만약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점점 더 거대한 덩어리가 된 고민은 바로 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됐다. 내가 만일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일 년에 공연을 몇 개나 보았을까. R석이 몇십만 원인 공연을 내가 볼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과연) 몇 번이나 보았을까…
그렇게 고민이 깊어지던 시기, 하콘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우스콘서트 10주년(2012년)을 맞아 일주일에 100개의 공연을, 전국의 문화예술회관에서, 그것도 무대 위로 관객을 올려 진행한다는 계획이었다. 비슷한 사례도 없는, 과연 실현이 가능할까 싶은 이 일에 고개를 저을 법도 하지만 괴짜들만 모인 것인지 하콘의 스태프들은 누구 하나 의문을 품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각자의 일상을 마친 늦은 밤이나 주말에 모여 전국 공연장의 숫자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연장, 민간이 운영 주체인 공연장 등 그 성격도 다양했고 숫자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았다. 이 중에서 각 지역에서 문화예술의 허브 역할을 해내고 있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이 당시의 나를 무척이나 자극했다. 서울의 수많은 공연 중 일 년에 몇 번이나 보게 될까 하던 내 고민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역의 관객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우리의 목표는 일주일에 공연 100개. 조사한 공연장은 500개 이상. 5개 중 한 곳만 문을 열어주어도 될 일인데 공연장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마치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거대하고 두터운 그 문은 굳게 닫혀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다. 클래식 공연이라는 말에 ‘우리 지역엔 클래식을 들을 사람이 없다’는 한결같은 반응을 보였고, 관객이 객석이 아닌 무대 위로 올라간다는 전무후무한 컨셉트를 반기는 공연장은 없었다.
10주년 공연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는데 ‘안 된다’는 시선에 가로막혀 공연장 문을 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던 그때, 나는 하콘의 1호 직원이 되기로 했다. 그동안의 고민과 하콘 10주년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맞닿은 결과였다. 어떻게든 만들어 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일 공연장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고, 그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또 공연장을 쫓아다녔다. 클래식이 안 된다고 하면, 무대 위에서 공연을 보니까 흥미로울 거라고 일단 한번 해보자고 설득했다.
무대 위에 관객이 앉는 그림을 잘 이해시키고 싶은 마음에 “어르신들 마당극 보는 것처럼 둘러앉는 거예요.” 하며 있는 힘껏 목소리를 끌어올려 너스레도 떨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냉대에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고, 나중엔 그마저도 아무렇지 않아졌다. 창문도 없고 밤 8시면 에어컨이 꺼지는 1인용 사무실에서, 일분일초가 아까워 빵과 김밥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보낸 하루하루였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지금 생각해도 하나 아쉬운 것 없는 시간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나는 소위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왔고, 박창수 선생님은 이 프로젝트에 가진 것 전부를 걸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일주일에 100개. 우리는 ‘안 된다’는 시선을 넘어 전국 21개 도시 23개의 공연장에서 일주일간 100개의 공연을 결국 만들어 냈다. 한 극장에서 적게는 하루, 많게는 일주일 동안 매일 공연이 열렸다. 관객들도 ‘절대 안 된다’던 무대 위에 올라왔다. 연주자와의 거리는 불과 2m. 하우스콘서트 그 자체였다. 클래식을 듣는 관객이 없다고 했던 그 무대 위에는 관객들이 남긴 행복한 미소가 남았다.
하콘은 지금도 지역 공연장의 무대 위로 관객을 올려 하우스콘서트를 한다. 하콘의 1호 직원인 나도 ‘극장판 하우스콘서트’를 위해 설득하는 작업을 여전히 하고 있다. 공연장 사정에 맞출 수밖에 없다 보니 1~2년씩 단기간 진행하다 중단되기 일쑤지만, 10년 이상을 매달 한 번씩 하우스콘서트를 열며 관객 개발이라는 유의미한 변화를 우리와 함께 이끌어 온 공연장이 있다는 점은 이 작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보람이다.
매일 오가는 동네 어귀의 공연장에서 매달 다양하게 열리는 소담한 공연을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되는 일. 공연장에서 열리는 또 다른 공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다른 예술 장르에도 눈과 귀가 트이는 일. 그렇게 한 사람의 세계가 다채로워지는 일. 그런 사람들로 공연장이 가득 차는 일…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이러한 변화가 바로 오랜 기간 지역 공연장을 찾아다니며 가장 바라던 일이며, 또한 결코 단기간에 이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하우스콘서트를 전국으로 퍼트리기 시작한 2012년. 나를 하콘의 1호 직원으로 만든 그 10주년 공연의 프로그램 책자를 오랜만에 다시 펼쳐보았다. 첫 장의 글귀가 보란 듯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국의 관객을 만나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만약 당신이 관객에게 기회를 준다면, 그들은 당신의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배우 캐서린 햅번”
https://youtu.be/D0R6qih51EQ?si=9umKr95zYdFOjp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