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수출 통제 다룰 실무그룹 구성한다

7년만에 베이징서 상무장관 회의

정부·기업 참여 차관급 실무그룹
매년 두 차례 회의 개최키로
최악 치닫던 양국, 대화계기 마련

11월 美샌프란시스코 APEC서
바이든·시진핑 만남 가능성
< 마주앉은 美·中 상무장관 >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오른쪽 첫 번째)이 방중 둘째날인 28일 베이징 상무부에서 왕원타오 중국 상무장관(왼쪽 첫 번째)과 회담하고 있다. 러몬도 장관은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안정적인 경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이 수출 통제 관련 정보를 교환하고 무역 문제를 다룰 실무그룹을 구성하기로 했다.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반도체·희귀광물 등의 수출을 서로 통제하며 최악의 관계로 치닫던 양국이 대화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관급 그룹 매년 두 번 만난다

28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이날 미국과 중국이 수출 통제 시행에 관한 정보 교환을 시작하고 무역(상업) 문제를 다룰 새 실무그룹을 구성하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을 이틀째 방문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베이징에서 왕원타오 중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나왔다. 러몬도 장관은 실무그룹과 관련해 “미국의 국가 안보 정책에 대한 오해를 줄일 수 있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양국은 정부 관료 및 민간 기업들이 참여하는 차관급 실무그룹을 구성해 매년 두 차례 회의를 열 계획이다. 29일 베이징에서 첫 회의를 개최한 뒤 내년 초 미국에서도 회의를 여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양국은 영업 비밀 등 정보 보호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주제별 전문가를 소집하기로 했다. 러몬도 장관은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라며 수출 통제 관련 논의를 서두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러몬도 장관은 회담에서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안정적인 경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세계가 미·중의 안정적인 경제 관계 유지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왕 장관은 “중국과 미국의 경제 관계는 양국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중요하다”며 “양국 기업에 더 유리한 정책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양국 장관은 이날 두 시간 넘게 회담한 뒤 두 시간가량 오찬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 시진핑 만나나

이번 합의를 통해 첨단산업 주도권을 둘러싸고 ‘치킨게임’을 벌여온 양국이 최악의 국면은 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국 관계는 최근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작년 10월 첨단 반도체 기술과 제조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중국은 올해 들어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의 제품 수입을 제한하고 반도체 핵심 소재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을 통제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이달에는 미국이 반도체·인공지능(AI)·양자컴퓨팅 분야를 대상으로 대중 투자 규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그러나 중국은 이달 초부터 불거진 부동산 위기와 디플레이션 등 전례 없는 경기 불황에 빠지며 출구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중국이 안보 문제를 이유로 지난달 1일부터 시행한 반간첩법 등으로 인해 외국인 투자도 급감했다.

미국 역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러몬도 장관은 “미·중 간 관광이 2019년 수준으로 돌아간다면 미국에 300억달러의 경제 효과와 5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러몬도 장관의 방중 일정 발표 전인 지난 21일에는 27개 중국 기업·단체를 ‘잠정적 수출통제 대상’ 명단에서 제외하는 등 유화적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다만 러몬도 장관은 회담에서 “국가 안보 문제는 타협·협상의 여지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디리스킹(위험 제거)은 불가피하다는 미국의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으로 풀이된다.일각에선 러몬도 장관을 비롯한 미국 고위 인사들의 방중이 오는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담을 하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러몬도 장관은 중국 정부의 공식 초청을 받아 방문했다”며 “관계 안정화에 대한 양측의 공감대가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징=이지훈 특파원/신정은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