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고발극은 '빤해도' 용서되는가-넷플릭스 <페인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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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다루는 진실함 또는 요란함에 대하여“이 시리즈는 실화 기반이지만 극적 연출을 위해 일부 각색됐습니다. 드라마와 달리 제 아들은 실제 인물이에요. 15살에 옥시콘틴을 처방받아 중독됐고 32살에 사망했습니다.”
미국을 악몽으로 몰아넣은 마약성 진통제 스캔들 다뤄
분노의 대사보다 더 흥미로운 건 '악인의 고요함'
담담하게 안내 문구를 읽어가던 중년 여성이 울컥한다. 1999년 이후 ‘죽음의 진통제’ 옥시콘틴은 미국인 45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넷플릭스 시리즈 <페인킬러>의 6개 에피소드는 매번 유족의 실제 증언으로 시작된다.말기암 환자를 위한 마약성 진통제가 어쩌다 흔하디 흔한 길거리 마약이 됐는가. 또 다른 진통제 펜타닐 남용으로 악몽을 겪고 있는 미국에선 중대한 이슈다. <페인킬러>는 이 비극을 초래한 제약사, 의학계, 당국의 거짓말과 무책임을 고발한다.
그 중심엔 제약사 퍼듀파마가 있다. 그들은 1990년대 후반,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을 안전한 약으로 포장해 대거 판매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약에 중독되고 사망했다.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희생자들의 고통을 들여다봐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드라마가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돼야 할까. <페인킬러>는 진솔함과 요란함 사이에서 때때로 방황한다.스토리의 시작은 퍼듀파마의 수장인 리처드 새클러다. 이 시리즈의 '넘버원 악인'인 그는 정체모를 소음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시퀀스의 뜻은 미묘한데, 그를 단순한 악당으로 그리지 않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읽힌다.그에 맞서는 인물은 연방 검사실의 조사관, 이디 플라워스다. 새클러 가문과 소송전을 준비하는 변호사들 앞에서 그녀는 옥시콘틴 사태를 증언한다. 그녀의 낮은 목소리는 시리즈 전체를 이끌어간다.
비극의 무게 때문인지, <페인킬러>는 신랄한 풍자에 집중하진 않는다. 다만 새클러 일가 사람들에겐 예외다. 이들은 유산을 다투면서 침을 튀기거나, 맥락을 놓쳐 헛소리를 하곤 한다. 돈에 미친 자이거나 우둔한 겁쟁이다. 이디는 리처드 새클러에 대해 ‘그는 왜 그렇게 돈에 집착할까’라고 절망적으로 묻고 또 묻는다. 관객이 악인의 내면을 궁금해하기 전에, 그녀의 질문은 다소 성급하게 던져진다.<페인킬러>의 흥미로운 지점은 다른 곳에 있다. 젊고 매력적이며 남자 의사들과 ‘대화가 통하는’ 여성 영업사원들. 퍼듀파마는 의사들이 더 많은 옥시콘틴을 처방하도록 그녀들을 적극 활용했다. 그녀들이 샤넬과 포르쉐를 외치며 열심히 뛸수록, 중독과 사망은 늘어난다. <페인킬러>는 이 아이러니를 충실하게 담아낸다.퍼듀파마의 사원들과 그 협력자들이 돈과 약물에 빠져드는 과정은 숨가쁘다. 가끔은 쾌활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같은 톤은 후반의 파티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페인킬러>는 여기에 피해자의 고통을 대조시킨다.
‘극적 연출’의 의도는 분명하다. 나쁘게 표현하면 살짝 ‘빤하다’.
옥시콘틴 사태는 2021년 시리즈 <도프식:약물의 늪>에서 다룬 적 있다. 디즈니플러스에 공개된 이 9부작은 리처드 새클러와 기업 내부인들, 협력자와 고발자들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이에 비해 <페인킬러>는 더 격정적이고, 덜 교묘하다.그래도 리처드 역을 맡은 매튜 브로더릭의 연기는 절제된 느낌을 준다. 그의 고요한 표정은 이디의 분노한 목소리보다 더 흥미롭다. 명징한 대사보다, 침묵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 때가 있다.
김유미 객원기자
▶이 글과 관련된 칼럼(미술관들이 거액의 기부금을 거절한 까닭) 최근 런던 국립초상화 갤러리는 새클러 가문(家門)이 제안한 130만달러의 기부금을 거부했다. 테이트 모던, 뉴욕의 구겐하임, 파리의 루브르와 런던의 브리티시 뮤지엄 등도 새클러의 기부금을 사절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파티를 중단하겠다는 것인가. 마약성 진통제 판매와 관련이 있다. = 서울대 교수 심상용의 ‘이토록 까칠한 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