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사칭했던 그 앱…"블라인드 의사 계정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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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서 계정당 2만~10만원“블라인드 의사 계정 팝니다. 가격은 200만원.”(온라인 커뮤니티 A 게시글)
전문직은 수백만원까지 거래돼
상당수 신분 속이고 이성 만남
협박·성폭행 등 범죄 악용 우려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사진)의 계정을 사고파는 은밀한 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블라인드는 직장 이메일 주소 등을 통해 직장·직업을 인증해야만 가입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익명성을 무기 삼아 신분을 사칭하는 통로로 이용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2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경찰을 사칭해 블라인드에 살인예고글을 올린 30대 남성은 해당 계정을 외부로부터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인드 계정을 사고파는 글은 온라인상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블라인드 계정의 가격은 2만~10만원 선에 형성돼 있다. 의사 등 일부 전문직 계정은 200만~300만원에 올라와 있다.
블라인드 게시글인 ‘솔직히 계정 팔아본 적 있는 사람’이란 게시글 투표에선 총 183명 중 21명(약 11.5%)이 계정을 사고판 경험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계정을 구매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구매자가 계정 판매자에게 자신의 메일을 넘기면 판매자는 해당 메일 주소를 회사 사내 메일 주소로 덮어씌운다. 이후 구매자는 자신의 메일 주소로 블라인드에 접속해 해당 회사의 직원 행세를 할 수 있다.
업계에선 주로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계정 사칭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블라인드에선 키와 나이, 직업 등을 소개해 소개팅을 주선하는 행위가 보편화돼 있다. 유명 대기업 혹은 전문직이 인증됐을 경우 상대의 호감을 얻는 데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블라인드 내 자체 데이팅 앱 ‘블릿’은 블라인드 계정과 연동돼 있어 자연스럽게 직업이 노출된다. 블릿 등 데이팅 앱과 관련된 후기에는 ‘직업을 속였다’ ‘유부남·유부녀였다’ 등의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데이팅 앱을 통한 불법행위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21년 한 남성은 전문직 인증을 거친 뒤 데이팅 앱으로 여성들을 만났다. 여성 두 명에게 ‘물뽕’으로 불리는 마약류 GHB의 원료를 술에 타 먹인 뒤 성폭행을 시도하기도 했다. 경찰을 사칭해 수사받고 있는 남성 역시 블라인드에 ‘누드사진 찍어보고 싶은 훈남 경찰관이다’ ‘친구비 월 20만원 줄 테니 만나서 놀자’ 등 조건만남과 같은 범죄 관련 게시글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계정 사칭 글 게시가 위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태연 법무법인 태연 변호사는 “경찰을 사칭해 살인예고글을 올린 사례는 기본적으로 협박 행위에 해당한다”며 “이와 동시에 공무원 사칭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경범죄 처벌법 위반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