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장수 공산주의 중국… 저항의 세력은 무력화됐다 [WSJ 서평]

동방의 흥망성쇠(The Rise and Fall of the EAST)

야솅 후앙 지음
예일대학교
330쪽│32달러
중국의 국가공무원 시험 '궈카오(國考)'에 응시하기 위해 대기 중인 응시자들. 사진: 게티이미지
중국만큼 '명줄이 긴' 나라가 있을까. 오는 10월 1일 수립 74주년을 맞는 중국은 소련을 넘어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공산주의 국가' 기록을 갱신한다. 중국 공산당은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 천안문 사태 등 정치적 격변을 버텨냈고, 여러 차례 글로벌 경기침체를 거치면서도 몸집을 불렸다.

최근 출간된 <동양(EAST)의 흥망성쇠>는 중국의 독재 체제가 유독 끈질기게 유지되는 이유를 설명한 책이다. 제목의 '동양(EAST)'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중국을 뜻하면서도 과거제(Exam)와 독재(Autocracy), 안정성(Stability), 기술(Technology)의 앞 글자에서 따왔다. 책은 지난 1500년간 이런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며 현대 중국 사회를 구성하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책을 쓴 야셍 후앙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교수는 과거제를 통한 관료제도를 핵심으로 꼽는다. 6세기 수(隋) 왕조부터 시작된 과거제는 개인의 사상과 규범, 관습을 균질화한다는 점에서 현대 중국 공무원 시험인 '궈카오(國考)'와도 유사하다고 본다. 이러한 획일성은 안정성을 가져다줬지만, 때론 개인의 창의성과 혁신을 억눌렀다.
광활한 영토와 방대한 인구를 통제하는 일은 통치자의 주요 관심사였다. 과도한 다양성은 제국의 붕괴로 이어졌기에 어느 정도 통일된 인사제도가 필요했다. 과거제는 '집단주의와 상명하복, 일관성'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장치였다. 최고의 인적 자본은 국가가 독점했고, 종교나 상업 등 사적 분야에서의 인재 유입은 위축된 사회구조가 형성됐다.

저자가 내놓은 분석의 축은 크게 두 가지. '관료제의 크기'와 '사상의 다양성'이다. 둘 사이의 균형이 유지된 경우 중국은 안정과 번영을 동시에 누렸다. 저자는 당 왕조나 20세기 후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시기를 그렇게 평가한다. 문제는 늘 균형이 깨진 경우에 발생했다. 국가의 통제가 과도하게 사상을 억누른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회 발전이 저해됐다. 과거제가 처음 도입되며 중국이 서양에 기술적 우위를 내준 6세기 전후, 2018년 연임 제한 규정을 철폐하며 1인 지배를 공고화한 시진핑 집권기 등이 저자가 지목한 대표적인 침체기다.

저자는 오늘날 중국의 과거제와 독재, 안정성의 지표가 전례 없이 높다는 우려를 건넨다. 시진핑 주석의 독주 앞에 다른 세력은 무력할 뿐이다.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정치적 추방을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 당국의 강경한 방역 정책에 항의하고 나선 '백지 시위'도 공안에 의해 재빠르게 수습됐다. 중국 공산당 체제 안정성의 비결에 대해 저자는 말한다. "국가 외 어떤 조직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사회로 거듭났을 뿐"이라고.

정리=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이 글은 WSJ에 실린 툰쿠 바라다라얀의 서평(2023년 8월 26일) ‘The Rise and Fall of the EAST Review : China's Conformity Crisis'를 번역·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