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칼로 도려낸 물감, 소멸 아닌 희망" 4년 만에 돌아온 이미애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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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부터 25일까지 인사동 돈화문갤러리서 개인전꾸덕하게 쌓인 겹겹의 층들을 조각칼로 하나 하나 깎아내는 작업. 도예나 조각에서나 볼 수 있는 작업 방식을 캔버스 위에서 구현해 온 작가가 있다. ‘꿈꾸는 겁쟁이 시리즈’를 선보이며 활발히 활동해 온 서양화가 이미애다. 하지만 지난 2019년 개인전을 끝으로 그의 전시를 만날 수 없었다. 4년 간 자취를 감췄던 그가 긴 공백을 깨고 내달 6일부터 8번째 개인전을 인사동 돈화문갤러리에서 연다.
그가 4년 전 화단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춘 데엔 이유가 있었다. 원인 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이 바이러스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운이 좋았고, 다시 작업에 뛰어들 수 있었다. 이미애는 퇴원 후 오래도록 방황했다. 그는 이 기간을 ‘성찰의 시간’으로 표현한다. 이 작가는 “때론 먼 길을 돌아갈 때 그 길에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듯, 나의 작품을 보다 더 숙성시켰던 시간”이라고 말했다.이 작가는 캔버스에 붓이 아니라 조각칼을 들이댄다. 색과 흙 등을 20겹~30겹 겹쳐 캔버스 위에 쌓고 그 위에 불필요한 부분들을 조각칼로 깎는다. 수십 차례에 걸쳐 깎아내고 파내다 보면 진정 원하는 부분만 남는다. 회화와는 조금 동떨어진 듯 보이는 그의 작업방식은 도예의 상감기법과 닮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에서는 평면적 이미지가 아닌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이번에도 이미애의 전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꿈꾸는 겁쟁이’다. 이미애가 표현한 꿈꾸는 겁쟁이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당당히 살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조각칼을 사용하는 이유에도 두꺼운 현대인들의 보호막을 허문다는 의미가 있다. 사회 속에서 쌓고 채우기에만 급급한 사람들의 모습을 ‘각질이 쌓인 것’처럼 느꼈다고. 그는 “작품을 통해 편견과 평가에 상처받고 급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그는 깎아내버린 여백에는 꽃과 나무들을 심었다. 그에게 이 꽃과 나무는 자기 자신을 의미한다. 여기에 남은 공간은 반복되는 질감의 이미지로 채워나갔다.
모든 작품의 제목이 ‘꿈꾸는 겁쟁이’인데다 동일한 질감과 주제의 반복이 자칫 무미건조하다고 느껴질 우려가 있지만 노련한 그는 모든 작품에 채색과 형상의 변화를 가했다. 작품마다 다른 색채 이미지와 형상 은 시각적인 차별성과 독립성을 갖는다.
“캔버스에서 걷어낸다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으로 이어진다”고 말하는 이미애의 개인전은 돈화문갤러리에서 9월 25일까지 열린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