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나요? '히로시마 폐허'에서 나타난 첫번째 생물은 송이버섯 [책마을]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현실문화
544쪽│3만5000원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송이버섯은 인류가 만든 폐허에서 번성했다. 원자폭탄으로 파괴된 히로시마에 처음 등장한 생물이 송이였다고 한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후에도 균류가 가장 먼저 고개를 내밀었다. 중국의 대약진운동, 일본의 메이지유신으로 곳곳이 민둥산이 됐을 때도 오히려 송이는 창궐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본의 연구기관들이 수백만엔을 들여 최적의 생육조건을 갖춰도 결국 해내지 못한 게 송이버섯 인공 재배다. 인간의 가장 정교한 손길에도 길들지 않던 송이가, 역설적으로 인간이 자행한 파괴와 오염으로 번성하게 된 셈이다. "몇 가지 실수를 했다. …그리고 버섯이 등장했다." 최근 한국어로 번역된 <세계 끝의 버섯>은 세계에서 가장 귀한 버섯으로 통하는 송이의 상품 사슬을 총망라한 책이다. 미국 오리건에서 채집된 송이가 선별·분류·운송을 거쳐 일본 도쿄의 경매시장에 도달하는 과정을 조명한다.

무역이나 유통에 관한 책으로 보이지만, 굳이 따지면 문화인류학 서적에 가깝다. 송이버섯이라는 비인간적 존재를 통해 현대인들이 '자본주의의 폐허'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저자가 세계적인 인류학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이번 책으로 빅터 터너상과 그레고리 베이트슨상 등 인류학계의 주요 상들을 휩쓸었다.
인간이 만든 폐허에는 무엇이 살아남는가. 저자는 송이야말로 "불안정성에서 창궐하는 생물"이라고 말한다. 송이는 소나무와 공생관계에 있다. 소나무는 인간의 '교란'이 있어야 더 잘 자랄 수 있다. 자연 상태 그대로 두면 생장이 더 빠른 활엽수림에 의해 밀려나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이유뿐만이 아니다. 송이버섯은 채취와 유통 과정에서도 '자본주의의 폐허'에 뿌리를 둔다. 송이의 유통은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가나 글로벌 무역회사가 주도하지 않는다. 수확량이 불안정한데다 가격 변동 폭이 커서 규모의 경제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7년 동안 인터뷰한 채집업자와 중간업자들은 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멀어진 사람들이다. 도시사회를 거부하는 자연인,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난민과 아메리카 원주민 등 자본주의의 주변부가 주체가 된다. 이렇게 시장의 외곽에서 창출된 가치는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는 과정에서 다시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된다.

저자는 송이가 "오늘날 인간에 의해 황폐해진 세상에서 살아갈 지혜를 준다"고 말한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부터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신자유주의의 문제까지. 저자는 이러한 오염과 불안정성에서 협력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간과 비인간, 중심부와 주변부가 공생하는 '세계 만들기'를 통해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