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제는 도자기만 굽다가 늙어간 도공에게 머리를 숙였다

[arte] 박종영의 아트차이나
도자기의 고향 중국 장시성 경덕진(景德鎭, 중국 발음으로는 징더전).

이곳의 역사는 1600년 전 동진(東晉)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덕진은 창강(昌江)의 남쪽에 있어서 이곳을 ‘창난(昌南)’ 이라고 불렸다. 북송(北宋) 때 어용(御用) 도자기가 진종(眞宗)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아 황제는 자기의 연호인 ‘경덕’을 하사하면서 이곳을 경덕진이라고 칭했고, 중국 도자기의 명소가 되었다.경덕진에 있는 고령산(高嶺山)에 풍부한 광물의 백색 점토가 많아서 이곳이 질 좋은 도자기의 고장이 되었다.

이곳은 춘추전국시대부터 도자기를 굽기 시작했고 당나라 때 도자기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송나라 때부터 황궁에서 사용하는 도자기를 구워 이곳에 어요(御窑)가 지어졌다. 원나라 때 중국에서 도자기 기술이 가장 앞선 곳으로 부상했다.

경덕진 도자기의 특색은 자태가 우아하고 자질이 우윳빛의 옥과 같으며 얇고 빛에 비추면 투명하고 영롱하다. 또한 부딪치면 맑은 경쇠 소리가 난다.경덕진의 4대 명(名)도자기로는 푸른 꽃무늬의 도자기 청화자(靑花瓷), 누조기법으로 도자기에 투명한 눈을 만든 영롱자(玲瓏瓷), 채색의 도자기 분채자(粉彩瓷), 색유약의 도자기 안색유자(顔色釉瓷)를 말한다.

도자기의 고향 경덕진에서 대형 실경(實景)공연(실제 자연경관을 무대로 한 공연) ‘차이나’가 공연되고 있다.

당, 송, 원, 명, 청의 시대별 도자기를 구성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인데 ‘瓷’의 운치와 정신을 말하고 사람을 말하고 나라를 말함으로써 중국 문화와 세계 문화 사이에서 도자기의 독특한 의미를 표출한다.1막: 당나라, 창난의 도공 도옥(陶玉) 이야기

당나라 창난의 도자기 장인 도옥은 젊은 견습생에서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한평생을 쉬지 않고 도자기만을 만들었다. 이미 정품의 경지에 오른 그의 도자기는 당나라의 국빈 예물이 되어 비단길을 따라 세계 각지로 나갔고, 외국 사람들은 창난의 도자기에 매료되었다. 외국 사람들에게 창난은 ‘차이나’로 들렸고, 이 차이나는 도자기뿐만 아니라 나아가 중화(中華)의 이름이 되었다.
2막; 송나라 영청(影靑)의 전기송나라 진종은 태산으로 가서 봉선(封禅)하고 칙령을 내려 하늘에 제사 지낼 자기를 굽도록 했다. 한 어리석은 도공 노인이 목숨을 걸고 경덕진의 천년 도자기의 이름을 지키겠다고 맹세하였고, 그는 사랑하는 손녀 영청의 피부색을 본떠서 일품 도자기를 구워 공납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하늘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했고, 도공은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영청은 할아버지의 뜻을 알아차렸고 자신의 몸을 가마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고, 마침내 경국경성의 온화한 영청자기로 탄생했다. 영청자기는 경덕진의 명예를 살린 송대 최고의 미학적 도자기가 되었다.
3막: 원나라 청화(靑花)자기

원나라 때는 국토가 서아시아를 덮고 교역로가 아시아와 유럽으로 이어졌다. 당시 유라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역상품은 황금만큼 비싼 청화자기였다. 많은 양의 청화자기가 장강 부두에서 출발하여 세계로 뻗어 나갔다.

원나라의 몽골 관리인 부량자국(浮梁使局)은 칸국의 사신으로 임명되었는데, 떠나기 전에 상인 왕귀의 딸 샤오왕(小王)을 아내로 맞아 함께 출사하고자 했다. 샤오왕은 혼사에 응하는 대신 몽골 도자기국에서 그녀를 위해 청화자기 세트를 만들어 증표로 삼아 달라고 요청했다.

무대에선 두 사람의 마음이 극적으로 합쳐지자 청화자기로 된 큰 접시가 탄생되고, 서아시아 각국의 상인들이 모여 있는 원나라 청화자기 시장의 모습이 환하게 드러난다. 그중에는 유명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의 모습도 있다. 많은 양의 청화자기가 원나라의 사절단, 그리고 각국으로 향하는 상단을 따라 서아시아로, 유럽으로, 세계로 뻗어 나가는 모습이 연출된다.
4막: 명나라 백유천은 (白釉天恩)

명나라 영락제의 ‘남방 대항해’의 꿈에 따라 환관 정화(鄭和)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간다. 그는 28년 동안 일곱 차례나 세계를 향해 나아갔고 도자기와 비단 교역에 성공하였다. 세 번째 서양 항해 때, 여러 번 출항을 시도했지만, 계절풍이 오랫동안 불지 않아 선단이 출항할 수 없었다.

열 살 때 어머니를 여읜 정화는 어려서부터 관음보살을 어머니로 삼았고 선단의 원활한 출항을 기원하기 위해 직접 그림을 그려 경덕진 요공장에 가서 복을 기원하는 백자관음조상을 만들게 하였다. 백자관음상이 타오르고 정화가 백관을 거느리고 제사를 지내며 독경하는 소리 속에서 정화는 마치 어릴 적 보살의 어머니와 대화하는 듯한 따뜻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보살님이 보우하셔서 계절풍이 크게 일었다. 그리고 정화도 강대한 중화를 대표하는 함대를 이끌고 세 번째로 서양으로 내려가 황하문명과 세계문명을 소통시킬 수 있었다.
5막: 청나라 성세분채(盛世粉彩)

건륭제 시대에 경덕진 어요공장 책임도관 당영은 건륭제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경덕진 도자기는 너무 청결하고 단아하기만 하니 당시의 국운에 걸맞는 성세의 채색이 있는 도자기를 만들라는 요구였다.

당영은 20년 동안 도자기 만드는 기법에 몰두하고 <도야도설(陶冶圖說)>을 저술하여 도자기를 굽는 기술과 도자기 운수, 즉 국운을 원천적으로 정리했다. 드디어 대청성세(大淸盛世)를 대표하는 각종 유약색 ‘자기 모병’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건륭제에게 바쳤다.

건청궁에서 건륭은 자기 모병을 보고 감탄하여 당영을 불렀고 오직 도자기를 만들며 늙어간 당영의 모습을 보고 그의 장인 정신에 머리를 숙였다.
6막: 마지막 무대무대에는 유럽에서 창난까지, 실크로드에 있는 각국의 고전 건축물이 도자기 빛으로 떠오르고, 이야기 속에서 한 인물의 대사가 울려퍼진다. 한 치의 흙과 한 치의 도자기 조각은 세계 문명이 교류한 기억입니다. 차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