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책방] ①'배다리 골목' 반세기 지킴이 아벨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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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개업 후 50년째 명맥…시 낭송회 등 문화활동 둥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위한 공간 오래 이어가고파" [※편집자 주 = 동네책방은 책을 유통하고 공급하는 본연의 기능뿐 아니라 누구나 푸근하게 머물며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정서적 안식처 역할도 합니다. 연합뉴스는 300만 시민이 살아가는 인천이라는 삶의 공간에서 정겨운 문화활동 주체로서 명맥을 이어가는 동네서점과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합니다.
모두 10편으로 구성된 이번 기사는 매주 토요일 1편씩 송고됩니다.
] 인천 동구 원도심에는 '배다리'라는 독특한 지명이 있다.
간척과 매립으로 지금은 바다가 3㎞ 밖으로 멀찌감치 떨어졌지만 100여년 전에는 작은 배들이 정박하는 다리가 있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동구 금곡동과 창영동 일대를 일컫는 배다리에 가면 세월의 풍파를 켜켜이 간직한 2∼3층짜리 낡은 건물들이 여전히 정겹게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동네, 배다리다. ◇ 도심 속 시간여행…1960∼70년대 옛 향수 물씬
1883년 인천항 강제개항 이후 일본인들의 요구로 제물포 해안에 개항장이 조성되자 조선인들은 배다리로 떠밀려 왔다.
이 일대엔 성냥공장·간장공장·고무신공장·양조공장 등이 들어섰고 조선인들은 이들 공장의 노동자로 일했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에는 실향민과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든 가난한 이들의 생활 터전이 됐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거리에서 수레에 책을 싣고 팔던 상인들이 하나둘 배다리에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책방 골목을 이뤘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고 사연이 담긴 책을 사고파는 헌책방은 1970년대에는 40여곳에 달했다.
궁핍했던 시절, 조금이라도 싼 헌책을 구하려는 학생과 지식인들이 몰려들었다.
배다리는 배움에 목말라했던 이들이 학문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었던 인천의 유일한 헌책방 골목이기도 했다. ◇ "누구나 외롭다"…개발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서 마을 지켜내
'아벨서점' 곽현숙(73) 대표도 1973년 11월 배다리 인근 교회 앞에 15㎡ 남짓한 헌책방을 차린 게 시작이었다.
배다리가 고향인 곽 대표는 "우리 집은 배다리에서 4대째 살고 있었는데 그냥 책이 좋아서 헌책방을 열게 됐다"고 했다.
아벨서점은 중간에 그가 다른 일을 했던 2년가량의 공백을 제외하곤 50년 가까이 줄곧 배다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헌책방을 닫은 시간 동안 공사장 잡부, 공장 노동자, 식모살이 등을 한 곽 대표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 누구나 외로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외로움을 책으로 풀어보려는 생각에 다시 책방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회상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는 다른 원도심과 마찬가지로 도시가 팽창하고 신도시로 중심이 옮겨가자 빠르게 쇠락했고 번화했던 옛 모습은 토박이들의 추억으로 남았다.
곽 대표는 "인천 곳곳이 개발되면서 배다리에서 책을 구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분산되고 헌책방 주인들도 학교 앞에서 새 책을 팔기 위해 흩어졌다"고 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는 현재 아벨서점을 비롯해 오래된 책방 5곳과 새로 문을 연 서점 3곳이 서점거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인천시가 배다리를 관통하는 산업도로 건설을 추진하면서 이 마을은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헌책방 거리 등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공간을 지키기 위한 반대운동을 벌였고 곽 대표도 인천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결국 시는 해당 도로를 지하화하는 것으로 선회했고 나이 지긋한 기성세대에는 향수를, 젊은이들에게는 기성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인 배다리도 보존할 수 있게 됐다. ◇ "40년 단골은 나의 힘"…16년째 시 낭송회 진행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18일 아벨서점을 찾았을 때 서점에서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과 부지런히 책을 손질하는 곽 대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손님들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5만권의 책이 빽빽하게 채워진 서점의 좁은 통로에 서서 옆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보물'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인터넷으로 책을 사고 도서 대여점도 적지 않은 시대에 여전히 중고책을 찾는 수요는 존재한다.
곽 대표는 "평생 헌책방을 하면서 어려운 때도 많았지만, 책을 빨리 많이 팔아서 얼른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했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책방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눈을 맞춰서 책 하나 골라가는 공간"이라며 "책 앞에서 아주 편안해하는 손님들을 볼 때 이 일을 하는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희귀서적을 파는 책방이 아니지만, 50년 된 아벨서점에는 자신만의 추억을 간직한 단골손님들이 많다.
국내 다른 지역에서 옛 기억을 더듬어 찾아오는 이들은 물론 외국으로 이민을 간 오래전 손님들도 1년에 20팀가량 찾는다고 한다.
운동권으로 활동하다가 독일로 이민을 떠나 30년 만에 왔다는 노신사, 책을 100권 정도 꺼내 펴 본 뒤 한권을 사가는 백발의 할머니도 모두 곽 대표의 반가운 손님들이다.
"얼마 전 단골 어른이 가게에 오셨는데 올해 100세가 되셨대요.
한 시간 넘게 책을 골라 값을 치르면서 '책을 보면 사람 안에 빛을 키우는 비밀이 있다'고 말씀하긴 게 평생 책을 판 저에게 큰 울림을 주네요.
"
곽 대표는 아벨서점 옆에 문화예술 서적·자료 전시실과 시(詩) 다락방을 갖춘 문화공간 '아벨전시관'을 2007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배다리의 오랜 문화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시 낭송회'가 16년째 이어지고 있다. 곽 대표는 "배다리에는 헌책방 말고도 한약방·철물점·이발소·문구점·체육사·중국음식점 등 수십년 된 노포들이 아직 많다'면서 "책을 좋아하고 책방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이 공간이 오래도록 이어지고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위한 공간 오래 이어가고파" [※편집자 주 = 동네책방은 책을 유통하고 공급하는 본연의 기능뿐 아니라 누구나 푸근하게 머물며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정서적 안식처 역할도 합니다. 연합뉴스는 300만 시민이 살아가는 인천이라는 삶의 공간에서 정겨운 문화활동 주체로서 명맥을 이어가는 동네서점과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합니다.
모두 10편으로 구성된 이번 기사는 매주 토요일 1편씩 송고됩니다.
] 인천 동구 원도심에는 '배다리'라는 독특한 지명이 있다.
간척과 매립으로 지금은 바다가 3㎞ 밖으로 멀찌감치 떨어졌지만 100여년 전에는 작은 배들이 정박하는 다리가 있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동구 금곡동과 창영동 일대를 일컫는 배다리에 가면 세월의 풍파를 켜켜이 간직한 2∼3층짜리 낡은 건물들이 여전히 정겹게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동네, 배다리다. ◇ 도심 속 시간여행…1960∼70년대 옛 향수 물씬
1883년 인천항 강제개항 이후 일본인들의 요구로 제물포 해안에 개항장이 조성되자 조선인들은 배다리로 떠밀려 왔다.
이 일대엔 성냥공장·간장공장·고무신공장·양조공장 등이 들어섰고 조선인들은 이들 공장의 노동자로 일했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에는 실향민과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든 가난한 이들의 생활 터전이 됐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거리에서 수레에 책을 싣고 팔던 상인들이 하나둘 배다리에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책방 골목을 이뤘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고 사연이 담긴 책을 사고파는 헌책방은 1970년대에는 40여곳에 달했다.
궁핍했던 시절, 조금이라도 싼 헌책을 구하려는 학생과 지식인들이 몰려들었다.
배다리는 배움에 목말라했던 이들이 학문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었던 인천의 유일한 헌책방 골목이기도 했다. ◇ "누구나 외롭다"…개발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서 마을 지켜내
'아벨서점' 곽현숙(73) 대표도 1973년 11월 배다리 인근 교회 앞에 15㎡ 남짓한 헌책방을 차린 게 시작이었다.
배다리가 고향인 곽 대표는 "우리 집은 배다리에서 4대째 살고 있었는데 그냥 책이 좋아서 헌책방을 열게 됐다"고 했다.
아벨서점은 중간에 그가 다른 일을 했던 2년가량의 공백을 제외하곤 50년 가까이 줄곧 배다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헌책방을 닫은 시간 동안 공사장 잡부, 공장 노동자, 식모살이 등을 한 곽 대표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 누구나 외로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외로움을 책으로 풀어보려는 생각에 다시 책방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회상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는 다른 원도심과 마찬가지로 도시가 팽창하고 신도시로 중심이 옮겨가자 빠르게 쇠락했고 번화했던 옛 모습은 토박이들의 추억으로 남았다.
곽 대표는 "인천 곳곳이 개발되면서 배다리에서 책을 구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분산되고 헌책방 주인들도 학교 앞에서 새 책을 팔기 위해 흩어졌다"고 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는 현재 아벨서점을 비롯해 오래된 책방 5곳과 새로 문을 연 서점 3곳이 서점거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인천시가 배다리를 관통하는 산업도로 건설을 추진하면서 이 마을은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헌책방 거리 등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공간을 지키기 위한 반대운동을 벌였고 곽 대표도 인천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결국 시는 해당 도로를 지하화하는 것으로 선회했고 나이 지긋한 기성세대에는 향수를, 젊은이들에게는 기성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인 배다리도 보존할 수 있게 됐다. ◇ "40년 단골은 나의 힘"…16년째 시 낭송회 진행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18일 아벨서점을 찾았을 때 서점에서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과 부지런히 책을 손질하는 곽 대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손님들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5만권의 책이 빽빽하게 채워진 서점의 좁은 통로에 서서 옆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보물'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인터넷으로 책을 사고 도서 대여점도 적지 않은 시대에 여전히 중고책을 찾는 수요는 존재한다.
곽 대표는 "평생 헌책방을 하면서 어려운 때도 많았지만, 책을 빨리 많이 팔아서 얼른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했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책방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눈을 맞춰서 책 하나 골라가는 공간"이라며 "책 앞에서 아주 편안해하는 손님들을 볼 때 이 일을 하는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희귀서적을 파는 책방이 아니지만, 50년 된 아벨서점에는 자신만의 추억을 간직한 단골손님들이 많다.
국내 다른 지역에서 옛 기억을 더듬어 찾아오는 이들은 물론 외국으로 이민을 간 오래전 손님들도 1년에 20팀가량 찾는다고 한다.
운동권으로 활동하다가 독일로 이민을 떠나 30년 만에 왔다는 노신사, 책을 100권 정도 꺼내 펴 본 뒤 한권을 사가는 백발의 할머니도 모두 곽 대표의 반가운 손님들이다.
"얼마 전 단골 어른이 가게에 오셨는데 올해 100세가 되셨대요.
한 시간 넘게 책을 골라 값을 치르면서 '책을 보면 사람 안에 빛을 키우는 비밀이 있다'고 말씀하긴 게 평생 책을 판 저에게 큰 울림을 주네요.
"
곽 대표는 아벨서점 옆에 문화예술 서적·자료 전시실과 시(詩) 다락방을 갖춘 문화공간 '아벨전시관'을 2007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배다리의 오랜 문화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시 낭송회'가 16년째 이어지고 있다. 곽 대표는 "배다리에는 헌책방 말고도 한약방·철물점·이발소·문구점·체육사·중국음식점 등 수십년 된 노포들이 아직 많다'면서 "책을 좋아하고 책방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이 공간이 오래도록 이어지고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