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예산 감축 반발하면 대통령 지시라고 해라"

역대 최저 총지출 증가율
배경엔 尹대통령 강력 의지
정부가 내년도 지출 예산 증가율을 역대 최저 수준인 2.8%로 책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사자의 반발이 거세면 나를 팔아서라도 불필요한 예산은 확실하게 줄여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28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 전후까지만 해도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을 4%대 중반으로 맞추려 했지만, 윤 대통령의 강력한 당부에 두 달 만에 2%대 후반으로 조정했다.

3일 여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재정당국의 비공개 보고 및 국가재정전략회의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건전 재정으로 기조 전환을 추진하라”고 독려했다. 윤 대통령은 “예산 감축 대상 부처나 해당 예산으로 혜택을 보던 이들은 거세게 반발할 가능성이 큰데, 이 경우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해도 좋다”고 말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윤 대통령은 ‘제로베이스 예산’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한다. 재정당국 관계자들은 모든 사업에 대한 예산 배정액을 더 줄일 수 있을지 다시 검토하라는 지시라고 생각했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 예산을 기준으로 증액 또는 감액하는 관행을 아예 바꾸라고 주문한 것이었다. 한 참모는 “지난해 배정한 예산이 100이었다면 이를 기준으로 삼아 10~20% 줄이거나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0이었다고 생각하라는 의미”라며 “예산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필요한 만큼 배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예산을 하나도 배정하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기재부가 다른 부처에 내년도 지출 증가율을 4%대 중반으로 맞추라고 요구한 데 대해서도 “더욱 과감하게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는 윤 대통령의 독려 이후 약 두 달 동안 더욱 강도 높은 예산 절감 방안을 마련했고 최종 지출 증가율은 2.8%가 됐다. 2023년도 증가율(본예산 기준 5.1%)의 반토막 수준이고, 문재인 정부 시절 연평균 지출 증가율(8.7%)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윤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한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도 장관들에게 “내년도 예산안은 우리 정부의 실질적 첫 예산”이라며 “장관들은 자기 부처 예산뿐만 아니라 다른 부처 예산도 잘 숙지해 반대 여론에 논리적으로 반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재정을 방만하게 쓰는 것은 미래 세대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건전 재정 기조로의 전환은 윤 대통령의 핵심 철학 중 하나이기 때문에 임기 내내 지출 구조조정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