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시간 일 안 하고 돈 타갔다"…노조 '근로시간면제' 뭐길래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제조업을 운영하는 B사는 조합원 수가 2100명으로 최대 근로시간 면제 한도가 1만 시간이고, 최대 사용 인원은 5명이다. 하지만 실제 사용자가 이 노조에 부여한 근로시간면제 시간한도는 3만2681시간, 면제자 16명이었다. 회사가 노조에 2만2000시간 정도를 회사 일을 하지 않고 임금을 타갈 수 있도록 허용한 셈이다.

IT 서비스사업 등을 운영하는 B사는 조합원 수가 2백여명으로 최대 면제 한도 인원이 6명임에도 실제 145명(파트타임 145명)을 인정해 면제 한도를 위반한 사실이 밝혀졌다. 최소 139명이 법을 위반해서 노조로부터 임금을 받은 셈이다.

3일 고용노동부는 올해 8월에 유노조 사업장 521개소(근로자 1000인 이상 유노조 사업장)에 대해 근로시간면제와 노동조합 운영비원조 현황 전수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고용부 실태 조사 결과 사용자가 급여를 지급하는 △근로시간 면제자는 총 3834명(사업장 평균 8.0명, 최고 315명), △연간 면제시간은 총 450여만 시간(사업장 평균 9387시간, 최고 6만3948시간). 풀타임 면제자의 월평균 급여 총액은 112여억원(1인당 평균 637만6000, 최고 1400만원)으로 조사됐다.

노사가 법령에 위반해서 근로시간 면제제도를 운영하는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조사 결과 ‘법상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초과한 것으로 조사된 사업장이 63개소(13.1%)로, 공공부문은 110개소 중 9개소(8.2%) 민간은 370개 중 54개소(14.6%)로 조사됐다. 이 중 법상 허용되는 면제 시간을 약 2.9배 초과해 6만3948시간을 운영하는 사업장도 확인됐다. 고용부 실태조사 결과 근로시간면제 위반 사업장을 사례별로 분류하면 총량 시간 한도 초과가 43개소(9.0%), 면제 인원 한도 초과가 38개소(7.9%), 시간·인원 모두 초과가 18개소(3.8%)다.

즉, 시간 한도 자체를 초과해서 노조에 임금 지급의 혜택을 부여한 기업은 43개라는 의미다. 반면 인원 한도 초과는 면제시간 총량 자체는 위반하지 않았지만 파트타임 전임자 숫자를 과도하게 두는 등의 방식으로 면제 한도를 위반한 사례를 뜻한다.


○근로시간 면제란?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 time-off)’란 단체협약 또는 사용자의 동의 하에 노조 간부 등이 노조 대표활동을 위해 쓰는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원활한 노조 활동을 보장하는 차원에서다. 이에 따른 ‘근로시간 면제자’는 사용자로부터 급여를 받을 수 있다. 다만 노조의 규모에 비례해 타임오프 ‘총 시간’과 쓸 수 있는 ‘인원’의 한도가 정해져 있다. 그 시간과 인원 한도에서 사용자가 면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게 가능하지만, 이를 초과해서 임금을 지급하면 노동조합법 상 부당노동행위로 간주해 사업주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대상이 된다.

이 '근로시간 면제한도'는 고용부의 '근로시간 면제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3년마다 그 적정성 여부를 재심의해 의결할 수 있으며 결정된 사항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해야 한다.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조합원 규모다. 조합원 규모가 99명 이하인 사업장은 최대 2000시간 이내, 100명 이상 199명 이하는 3000시간 이내, 이런 식으로 조합의 인적 규모가 커질수록 면제한도가 이에 비례해 늘어난다. 1만5000명 이상의 조합원이 소속된 사업장의 경우 면제 가능한 근로시간은 최대 3만6000시간이다.다만 전체 조합원이 1000명 이상인 경우엔 기업의 지역 분포에 따라 면제 한도가 추가 부여되는 경우가 있다. 전체 조합원의 5% 이상이 특정 광역자치단체에 근무하는 것을 기준으로, 사업장이 속한 광역자치단체 개수가 2~5개인 경우는 기존 면제한도의 10%, 6~9개는 20%, 10개 이상이면 30%가 추가 부여된다. 전국단위 공공기관의 경우 면제한도가 더 늘어날 수 있는 셈이다.

이날 민주노총이 보도자료를 내 "정부가 작성한 실태조사 설문지는 근로시간면제 고시 한도에 추가하거나 가산해야 할 사항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해당 노조별 사업장 분포 상황은 근로시간면제한도 가산 기준임에도 노동부는 실태조사 설문에 이를 누락했다"고 주장한 건 이 점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파트타임 면제자를 둘 경우 인원 한도가 늘어난다. 면제자는 ‘풀타임’과 ‘파트타임’으로 구분되는데, 풀타임은 연간 소정근로시간(대략 2000시간) 전체를 면제 받아 1년 내내 전임자처럼 활동 가능하고 업무에서도 제외된다. 반면 파트타임은 미리 타임오프 일자를 신청해 특정 시간만 조합활동을 하고, 그 외엔 사업장에 정상적으로 출근하는 경우를 말한다.

다만 파트타임을 무한대로 둬서 '나눠쓰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풀타임 면제자의 두배 수까지 파트타임 면제자가 인정된다.

○"사용자 꾸짖지만 타깃은 노조"…칼 빼든 정부

현행 노조법은 사용자의 노조에 대한 개입, 지원은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지만 노조가 사용자에게 법적 근거 없이 지원을 요구하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노조가 ‘노사 협의’를 명목으로 과도한 타임오프나 지원을 요구해도 회사는 거절하기 어려웠다. 적발되더라도 노조가 아니라 사업주가 처벌받는 것도 문제다.

이러다보니 노사 자치, 노사 화합을 빌미로 일부 노조들이 사용자에게 공공연하게 과도한 지원을 요구해온 바 있다는 게 경영계의 하소연이었다. 그간 노사 자치를 존중한다는 명목 아래 전 정부가 제대로 단속하지 않은 것도 이런 '부당노동행위'를 조장했다는 게 경영계의 주장이다.

이날 정부는 상시 점검 감독 체계 통해 부당관행을 근절하겠다며 강력한 단속 방침을 내놨다.

법 위반 의심 사업장 등 약 200개소를 대상으로 기획 근로감독을 실시할 생각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그간 노사 합의란 미명 아래 엄연한 불법임에도 허용되고 있던 부당노동행위를 이번에 근절해 내겠다는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위법으로 적발된 사업장에선 어떤 법적 쟁점이 발생할까.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위법한 단체협약은 무효가 된다"며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초과해 급여를 지급한 부분은 반환 소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 임금 반환 소송으로 사업장이 추가 노사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과도한 타임오프 부여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경우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뿐만 아니라 업무상 배임 등의 형사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노조는 처벌 받지 않는 부당노동행위와 달리 노조가 처벌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해당 단협을 체결해 준 사용자가 1차적으로 업무상 배임죄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이를 함께 공모한 노조도 공동정범의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강력한 단속에 나설 경우 기업들의 노조 지원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도 처벌해야 한다는 경영계의 주장도 힘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 조치는) 수십 년 동안 내려온 노사 짬짜미와 비공식적인 담합 구조를 깨겠다는 의미”라며 “기업이 근로시간면제 내역과 운영비, 금품 지원 내역까지 공개할 경우 노조에 대한 부당 지원 규모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