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밤하늘에 오로라가 펼쳐졌다… 미디어아트 거장들의 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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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DDP서 전시하는 미구엘 슈발리에 & 댄 아셔'천사의 커튼', '영혼의 샤워'. 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빛의 스펙트럼인 '오로라'를 일컫는 말이다. 위도가 높은 북극 지역, 거기다 최상의 기상조건을 딱 맞춰야만 선명하게 볼 수 있는 탓에 오로라는 누군가에겐 평생의 '버킷리스트'로 꼽힌다.
'佛' 거장 슈발리에, DDP 222m 벽면에
생성형 AI로 만든 꽃·나무 선보여
"AI는 예술의 문 여는 도구 될 것"
댄 아셔는 서울 하늘에 오로라 연출
"기술이 자연 대체할 수 있는지 고찰"
이렇게 보기 드문 오로라가 지난 3일 저녁 7시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잔디언덕 위에서 펼쳐졌다. 은은한 음악과 함께 초록색, 보라색 빛깔이 어우러지며 서울 하늘을 단숨에 북극 하늘로 바꿔놨다. 이뿐만이 아니다. 저녁 8시부터는 길이 222m에 달하는 DDP의 거대한 서측 외벽이 빛으로 만들어낸 꽃과 나무로 물들었다.국내 최대 미술행사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 기간을 맞아 DDP가 선보인 디지털 아트 작품들이다. 꽃과 나무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미디어아트 거장 미구엘 슈발리에가, 인공 오로라는 스위스의 유명 설치미술가 댄 아셔가 디지털 기술로 구현했다. 두 작품 모두 KIAF-프리즈가 끝나는 10일까지만 볼 수 있다. 서울을 캔버스 삼아 작품을 선보인 두 디지털 아티스트를 지난 31일 직접 만났다.
◆프랑스 거장 "AI, 예술의 문 여는 도구 될 것"
"DDP처럼 거대하고 멋진 건물을 활용해 작품을 선보이다니, 내 꿈이 이뤄진 것 같다." 슈발리에는 기자와의 인터뷰 자리에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올 1월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 때 "서울의 야외 건물을 배경으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8개월 만에 그 소원을 이뤘다는 것이다.슈발리에는 프랑스의 '국가대표급' 예술가로 꼽힌다. 아무도 미디어아트를 '예술'로 인정하지 않던 1980년대부터 꾸준히 '자연과 기술의 공존'이라는 주제로 미디어아트를 선보였다. 케임브리지대 성당 내부, 지하철역 등 전시 장소도 이색적이었다. 그는 이런 작품들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수여하는 문화예술훈장을 받았다. '사람들의 지탄에도 꾸준히 예술을 해온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백남준'을 언급했다. "당시만 해도 디지털 기술로 예술을 한다고 하니, 모두들 '미쳤다'고 했어요. 외로운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 때도 편견을 깨는 동료 예술가들이 없진 않았어요. 한국의 백남준처럼요. 그런 예술가들을 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나갈 원동력을 얻었죠."그렇게 40년 넘게 미디어아트를 이끌어온 그가 이번엔 또 하나의 새로운 시도를 했다. DDP에서 선보이는 작품에서 처음으로 인공지능(AI)을 적용한 것. DDP 건물에서 피어오르는 꽃과 나무, 잎사귀 등은 모두 생성형 AI 프로그램이 창조해낸 그림이다. 작품 제목이 '메타-네이처 AI'인 이유다.그는 "AI가 예술을 위협한다고들 말하지만, 결국 AI는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에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는 도구"라며 "AI를 잘만 활용하면 예술가뿐 아니라, 일반 대중도 조각 설치미술 등 그 어떤 분야에서든 예술을 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게 될 것"이라고 했다.
◆스위스 설치미술가, "기술에 대한 고찰 계기 됐으면"
슈발리에가 거대한 건물 외관을 배경으로 작품을 선보였다면, 아셔는 도시 하늘을 캔버스로 삼았다. 그의 대표작은 전세계 38개 도시에서 선보인 인공 오로라 '보레알리스'다. 라틴어로 오로라가 있는 '북쪽'이란 뜻이다. 이번에 서울에서 11일간 선보이는 보레알리스는 그가 39번째로 만든 인공 오로라다.그는 보레알리스를 두고 "난 상황만 디자인하고, 환경이 완성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야외에서 연출하는 작품이다 보니 온도, 습도, 풍속 등에 따라 완전히 달라보여서다. 그는 "사람 눈엔 보이지 않는 광선을 층층이 겹친 후 그 위에 안개를 뿌려서 가시광선이 되도록 만든다"며 "바람이 너무 강하지 않고, 구름이 끼지 않은 맑은 날일수록 실제와 가까운 오로라를 즐길 수 있다"고 했다.보기에는 마냥 아름답고 신비로워 보이지만, 그 밑에는 진지한 고찰도 깔려있다. 아셔는 "기술은 인류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지만, 기술이 발달할수록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고, 환경이 파괴되는 문제도 있다"며 "인공 오로라를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도 좋지만, 관객들이 '정말 기술이 자연을 대체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슈발리에 작품은 DDP 서측 앞면에서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아셔 작품은 잔디언덕에서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볼 수 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